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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박사 마이오스 Sep 29. 2024

점성학과 사주명리학


현재 우리사회의 대중적인 인식으로 운세나 미래예측에 관한 일상에서 이용하는 것들이 ‘사주’에 기반하는 것이다. 이용하는 사람들이야 딱히, 사주의 역사나 원리에 관해 생각해 볼 이유는 없지만 최근에 주로 젊은 층이 애용하는 ‘타로’의 유행과 더불어 점성학에 대한 관심이 인터넷을 통해서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타로’의 열풍에 힘입어 ‘타로’를 이용한 운세부터 시작해서 점의 형태로 미래를 예측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타로’의 역사적 근거를 추적해보자면, 고대 이집트 기원에서부터 출발해서 중국 기원, 인도 기원, 수피 기원, 카발라 기원까지 다양하게 추측하지만, 증명된 것은 없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타로’가 어느정도 지금의 원형적인 형태를 갖춘 것은 14세기 프랑스의 신비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많이 작용하였다. 1392년 화가이자 점술가인 '자크맹 그랭고노'가 그렸다고 확인된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통해서 증명된 역사적 기원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귀족들의 다양한 이야기의 놀이 형태로 시작된 '타로'가 운명이라는 점의 형태로 바뀐 것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당시의 불안한 환경이 미래에 어떻게 전개가 될지 모르는 궁금증 때문에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면서, ‘타로’는 이제 놀이에서 점술 형태로 변하게 된다.

1880년경에 '에라르 앙코스(Herard Encauss)'라는 사람이 ‘위르트 타로카드’에 히브리 문자와 신화의 인물을 대응시키고 ‘타로’와 별자리를 연관 짓는 방법을 시도하여 그 외연을 확장하였다. 이 형태를 기반으로 개발자들은 현대사회에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 종교적 특성의 주관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재해석한, 독창적이고 다양한 타로 카드들을 개발하였고 지금도 계속 다른 형태와 이름의 타로 카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타로’들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현재 타로 해석 테크닉의 상당부분은 점성학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로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점성학과 병행된 내용들과 연관된 설명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점성학의 관심은 이러한 이유가 원인이다. 그런데 주로 젊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동안 사주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미래 예측에 관한 ‘점’들 이외에는 다른 것은 접해볼 기회가 없었기에, 심플하고 세련된 내용과 현대적 이미지를 통한 알아듣기 쉬운 해석이, 한자를 기반한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과 형이상학적인 해석의 내용들에 비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타로’가 대중화되면서 ‘타로카페’가 ‘사주카페’를 넘어서고 사주가 경쟁력의 상실을 우려해서 ‘타로’에 사주해석을 이용한 사주카페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점성학과 사주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무시한 내용이나 설명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왜곡되어 나타나는 현상에서, 운명학이라는 근본적 학문 마저도 미신이라는 영역에 전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사회적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지금부터 천문학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근원을 찾아가 보자.

중국은 황하문명의 태동기에 이미 고대 음양학을 중심으로 한 도가적 성격의 철학적 형이상학이 음(달)과 양(태양)이라는 현상계를 구현하는 개념과 우주적 본질을 도(道)라고 정의하고 태극과 무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철학적 사상의 포괄적 집단의 의미로 ‘도교’하고 불렀고, 그 원조는, 본명은 ‘노추’지만 ‘노자’라 불리는 사람으로 ‘도덕경’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의 철학은 황화문명으로부터 지금의 중국까지 사상적 원류를 차지하고 있다. 유교가 동아시아의 주류 철학으로 알고 있지만, 유교의 철학적 사상은 도가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양의 최고 경전인 주역은 앞에서 말한 음과 양의 원리로 세상사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이 심오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철학서에 해당되지만, 운명학의 관점에서는 占(점)을 치는 ‘점서’이기도 하다.

주역의 정확한 역사적 근거는 추정하기가 힘들지만, 문자가 생기기 이전 황화문명의 태동과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나타난 홀수와 짝수라는 부호의 조합을 음과 양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을 쾌()라고 하였다. 이렇게 나타난 조합의 결과에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하여 나타난 최종 설명을 상(象)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해석은 한자를 4자씩 조합하는 방식인데, 이 4자의 해석은 철학적 사유를 동원해서 해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인 요소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동양의 운명학은 이 방식의 원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쉬운 예를 들자면, 지금까지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동양의 철학은 ‘주역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표현해도 큰 무리는 없다.

현재 우리가 애용하는 사주는 주역을 바탕으로, 후대(한나라 이후)에 오행(목, 화, 토, 금, 수)을 더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통틀어 ‘음양오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동양의 운명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주명리학’도 사실은 일관된 체계를 갖춘 때가 청나라 이후다. 즉 주역의 역사는 길지만, 사주명리학의 역사는 짧다는 것이다.

사주가 이러한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친 이유는 동양의 운명학이 행성(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시간 천문 관측을 통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예측이라는 개념의 태양계 행성 움직임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고, 각 행성들에 기(氣)라는 개념을 부여한다. 이렇게 기가 부여된 행성들은 움직임(운행)의 원리가 되고, 그 조합에 따라서 원하는 해석의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 시간은 태어난 순간의 생년월일시가 딱 한 번만 사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되는 시간 마저도 하루 24시간을 느슨하게 12개로 나누어 사용한다. 즉 하루에 태어난 사람은 12분의 1의 확률로 모두가 같다. 그리고 해석은 동양철학의 형이상학적 해석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천문 실측을 기본으로 한 점성학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점성학은 시간을 초단위까지 나누어서 볼 수가 있다.

사주가 점성학과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그러나 최근 ‘타로’를 포함한 점성학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사주의 오행을 점성학과 연결시켜 해석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실 원칙을 벗어난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주와 점성학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다른 이유는 동아시아의 과학적 발달이 상대적으로 뒤쳐졌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문화의 차이에서 온 결과다. 그래서 사주의 해석방식은 이런 단순한 문화에는 적합했으며 잘 들어 맞았다. 그러나 시대가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이런 식의 해석방식이 한계를 보인 것 뿐이다.

동아시아의 문화는 주로 정착지에 정주하는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농경문화의 인간 개인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태어나면 태어난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간적으로 태어난 곳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농경문화라는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시간의 흐름을 관측하는 것은 농사와 관련된 것 이외에는 딱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대체로 정확한 시간적 개념을 가졌다는 조선시대 시간 개념을 잠깐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농경사회도 낮시간은 태양을 보면 태양의 그림자를 통해서 어느정도는 정확하게 알 수는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하늘의 별자리를 통해서만이 정확한 시간을 산출해 낼 수가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정확한 밤시간을 알 필요가 없다. 그래서 동지 때와 하지 때의 밤시간과 낮시간이 서로 다르다고 해도 딱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낮시간은 태양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면 되지만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 시간을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종소리와 북소리로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일단 해가 지기 시작하면 종을 28번 쳐서 밤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데, 이것을 인정(寅正)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밤이 끝나면 북을 33번 쳐서 알렸는데, 이것을 파루(罷漏)라고 불렀다. 인정과 파루를 5등분 한 것을 경(更)이라고 불렀고 이 경을 다시 5등분 한 것을 점(點)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처음과 끝만 알려주면 나머지 세부적인 분할은 개인의 주관적 감각에 맞추어서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지와 하지의 밤길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무줄과 같은 시간개념도 농경사회에는 나름대로 적합한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서구나 다른 문명은 왜 천문관측을 통한 정확한 시간 문화를 가지고 있었을 까다. 그들은 문화가 주로 목축의 이동문화와 항해를 주로 하는 해양문화에 속한다. 정확한 이동을 위해서는 별자리의 관측은 필수다. 마찬가지로 항해를 위해서는 정확한 별자리 관측은 목숨과도 같다. 즉 그들의 필요가 만들어낸 문화의 시간개념이 가져온 결과다. 한 가지 더 유리한 점이 있다면 지중해성 기후가 대체로 날씨가 화창하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집트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문명 그리고 인더스문명까지 그들은 시간이 서로 달라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황하문명권은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발생하는 오차와 부정확한 시간 개념 때문에 책력이라고하는 달력의 기준점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기준점을 계속 다시 잡았다. 조선시대 농가월령가도 중국의 별자리 관측점을 그대로 가져와서 생긴 오차를 우리나라의 관측점에 맞추어서 농사의 절기를 놓치지 않게하기 위해서 만들어서 보급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농사의 절기를 맞추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러한 문제점이 없었다. 그래서 하늘의 별자리가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주는 등대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에 별자리 문화가 과학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서구나 인도는 이러한 문화적 차이점이 가져온 시간개념은 천문관측이 생활화되어서 점성학이 발달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시간개념을 무리하게 천문관측과 연관시켜서 사주를 점성학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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