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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박사 마이오스 Sep 29. 2024

인도 점성학의 까르마


인도 점성학은 ‘카르마’가 많이 언급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어야 한다. 힌두 철학에서 ‘카르마’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카르마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행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행위는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말하는데, 원초적인 의미는 고대 신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행위에서 유래했지만, 자신의 현재의 모든 상황은 행위의 결과라는 뜻으로 대충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에 관한 문화와 그들이 철학에 상당히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거의 무지의 수준에 가깝다. 

한반도의 문화적 정서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가 서로 융합되어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즉 불교에 관해서도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잠재된 무의식 속에 불교적인 문화적 DNA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잠재된 원형의 무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칼 융’은 이 무의식의 원형이 태어난 사람의 지역적 문화에 각인된 무의식이라고 했다. 

힌두 철학은 베딕철학이다. 베다 경전에 뿌리를 둔 이 철학은 2500년 전 부처의 깨달음을 가져다준 지식의 원천이다. 부처는 바로 이 베딕철학에서 지식을 얻었고 이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도 점성학은 바로 이러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설명되는, 현생의 물질적 형태인 육신이 세상에서 마주치는 일들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도 점성학에서 말하는 개념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불교에 관한 지식과 유사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 베딕철학에서는 ‘카르마’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는 개념쯤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카르마를 쉽게 설명하자면, 원인에는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와 유사하다. 

인도 점성학은 태어난 사람의 사주팔자와 같은 ‘차트’가 카르마의 결과라고 한다. 이 말은 이성적 합리주의, 물질적 과학주의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를 자유의지의 결정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철학적 입장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도 점성학의 개인별 출생 차트는 전생에 원인이 현생의 결과로 주어진 나의 ‘카르마’ 즉, 업이라는 것이다.

인도 점성학의 개인 출생 차트는 윤회 과정의 하나인 현생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나에게 주어진 연극의 역할과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현생에서 개인의 존재는 무한한 자유의지를 펼치는 장이 아니라, 주어진 카르마를 충실히 이행할 권리만이 주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부처가 말한 것처럼 현생의 업장 결과가 다음 내세를 선택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을 밖으로 나온 ‘나’라는 개인 존재는 제비뽑기하듯이 복불복의 형식으로 세상에 던져졌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주어진 환경과 주어진 부모는 내가 받은 무작위가 아니라, 과거의 집착이 쌓은 업의 결과로 부모가 아닌,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 윤회론의 기본 내용이다.

이렇게 말하면 인도 점성학은 삶이 완전히 운명이라는 사슬에 묶인 인간의 비애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재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과응보의 과정에서 원인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다음의 결과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하루하루의 행동이 결정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행(行)이라고 했으며, 이 행동이 자신을 구원할 수도 있고 다음 생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해서 천국보다도 현생의 가치를 더 강조했습니다. (불교의 천국 개념의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신이라는 천국의 개념과 차이가 있음)

'행'의 중요성은 '노자'도 '도(道)를 말(語)로는 표현 할 수는 없지만 행(行)으로는 가능하다'라고 똑같이 언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행동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고 그 생각은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감정은 다시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수행법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바로 ‘마음 챙기기’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불교철학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런 단순한 원리를 막상 실천하려면 정말 어려우므로 그것에 관한 내용을 이해시켜서 실천적 내용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복잡하여서 어려워 보이는 것이지 원리는 오로지 ‘마음’이라는 단 두 글자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는 단 하나의 글자, 즉 마음 심(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십계명처럼 ‘정언명령’이라는 유일신의 이념 종교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해서는 관념적인 신 자체를 부정해야만 하는, 그래서 자신만이 구원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수행 종교입니다.

점성학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오늘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구를 점령하고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너무 오만해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비약적인 과학의 발전은 신의 존재마저도 그 실체를 밝혀낼 것처럼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더욱더 발달한 과학이, 단지 이론의 영역에서만 머물던 양자물리학을 과학의 당연한 법칙으로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인식 범위 밖의 우주를 넘어서는 존재에 관해 갑자기 겸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인도 점성학이란, 이런 작금의 과학적 현상과 현 세태가 가진 물음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이해의 도구였기에 이 같은 매력에 빠져서 7년 넘게 배우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인도 점성학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한 이유는, 이 학문이 가진 가치가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구에만 한정된 술수학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과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점성학의 올바른 이해로 접근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삶에 있어서 자신의 올바른 가치를 향한 영성을 일깨워, 이 물질 세상이 왜 나에게만은 가혹하게 돌아가는가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상담자이자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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