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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박사 마이오스 Sep 29. 2024

베딕 점성학의 시간


인도철학은 서양의 합리적 이성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을 추구한다. 

그들의 철학적 사유는 지식을 위한 탐구가 아니라, 대우주적 유일한 실체의 본질을 묻는, 삶과 생활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생활 철학이다. 

소우주가 인간이 인식하는 우주라고 한다면, 대우주는 인간 인식 너머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말한다. 후자를 상대적으로 객관적 성격의 ‘브라만’이라는 개념으로, 그리고 전자를 상대적으로 주관적 성격의 ‘아트만’이라는 개념으로 존재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

대우주의 브라만은 창조 이전의 궁극적이며 원천적인 존재를 말한다. 여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본질적 존재인 하나만 존재한다. 

동양철학에서는 이것을 '일자(一者)'라고 칭한다.

인도 점성학은 물질적 존재에 관한 설명이기 때문에 '브라만'을 물질적 비존재라는 개념으로 상정하고 '브라마'라는 명칭으로 존재적 개념으로 따로 분리해서 부르기도 한다. 

이어질 다음 장에 설명할 신화의 이야기에는 '브라마'가 최고의 신으로 계속 등장하는데, 양자물리학에서는 이것(시간은 없다) 이 시간 너머의 비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의 속성상 의인화된 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낸 개념적 신이 '브라마'이다.

이처럼 창조 이전의 궁극적, 원천적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의 범위가 너무 한정되어 있기에 사족 같은 명칭이 계속 생긴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양자물리학은 이러한 설명을 간단하게 '시간은 없다'라고 정의하고 우리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현대인들의 교육적 인식 수준이 고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물리학은 소우주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했다면, 양자물리학의 대우주는 시간도 공간도 없지만, 정해진 시간에 대한 존재의 가능성은 무한한 우주 너머의 불확실성에 관해 수학적 논리로 정의한다. 

쉽게 말해서,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저 '슈외딩거의 방정식'이라는 확률로만 말하는 것이 현재의 과학 수준이다.

인도 점성학은 현재의 존재를 말한다. 즉, 빅뱅과 더불어 탄생한 현재의 우주, 소우주를 말한다. 그러나 베딕 점성학은 베딕 철학과 함께 대우주로부터 브라만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소우주의 수호신인 '비슈누'라는 화신이 대우주의 '브라만'으로부터 물질세계의 역할을 물려받는다.

이때의 '브라만'은 점성학에서 이제 '브라마'로 변형되어 신화적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왜냐하면 '브라만'은 비존재이기 때문에 존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딕신화는 빅뱅 이전 '브라만'의 시대에는 '비슈누'가 잠들어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신화를 알아야만 베딕 점성학의 심오한 철학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신화에 나오는 비슈누가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베딕 철학과 신화에 나오는 삼신(브라만, 쉬바, 비슈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브라만은 창조의 신’쉬바 ‘파괴의 신’, 그리고 비슈누를 ‘유지의 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쉬바'라는 파괴의 신에 대해서 생소한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윤회론의 속성상 재탄생은 반드시 파괴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타로에서 메이저 타로 카드 13번 'DEATH' '죽음'의 카드가 의미하는 것으로써, '새로운 시작'과 '윤회'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안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베딕 철학에서 신이라는 개념은, 궁극의 존재는 단 하나라는 일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원론적인 관점으로 나누어서 철학적 전개를 펼친다. 

그래서 베딕 철학의 세계관을 일신론적, 혹은 범신론적 이원론이라고 부른다. 

고대 동양의 현자인 노자는 이러한 개념을 알고는 있었지만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그냥 ‘道’라는 한 글자로 정의하면서,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 설명할 수는 없다'고만 표현했다. 

그러나 고대 인더스 문명의 아리아 현자들은 궁극의 존재에 관한 물음을, 인간이 최대한 생각할 수 있는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붙이며 치열하게 사유하였다. 

그러한 대표적인 증거가 ‘우파니사드’라는 경전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복잡하면서도 난해한 설명을 동원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인식의 한계 때문이다. 

지금이야 첨단 과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양자물리학이 이해 가능한 범위로 현재 우리의 인식을 확장해 주었지만, 고대 이런 어려운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범신적 세계관의 ‘속성’과 물질적 세계관의 ‘비속성’이라는 이원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신 중에서 브라만과 쉬바는 인간의 인식 범위 밖에 있기 때문에 '비속성'적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관념도 깊게 내포되어 있어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물질을 관장하는 비슈누는 '속성'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힌두교에서는 가장 선호도가 높은 신이다. 

삶의 근본적 욕구를 일상의 실천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설명보다는 일상적이며 실증적인 개념이 직감적으로 더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로 인도 점성학은 비슈누와 관련되어 있다. 즉, 베딕 점성학은 신화에서 비슈누 화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 신화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주는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 즉, 비슈누의 잠을 깨운 것은 우주의 빅뱅이다. 이때 비슈누 화신이 가진 정확한 명칭은 산스크리트어로 ‘칼라루파’라고 한다. 이 이름의 의미는 ‘시간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빅뱅과 함께 생겨난 우주 물질이 공간을 창조하며 상대적인 시간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렇게 드러난 공간 부여의 형태가 천구의 별자리를 기준으로 하늘을 나누어서 보는 ‘조디악(인도 점성학에서는 '낙샤트라'라고 한다)’이다. 

그리고 약 93억 년 후, 태양계의 형성과 함께 지구가 만들어지고 인간이 아직 탄생 직전의 상태는 ‘칼라푸르샤’라고 부르는데, 이때의 이름이 갖는 시간의 의미는 ‘시간이 인물화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든 창조 신화가 그러하듯이 인간의 탄생에는 의인화된 창조주가 있어야만 신화의 서술적인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다.

인도 점성학도 바로 이 지점에서 드디어 의인화된 창조주로써 비슈누가 ‘칼라푸르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시간이 의인화되었다는 것은 점성학적으로는 하늘의 영토인 천구, 즉 조디악의 12(인도 점성학에서는 27) 개 구역에 각자의 행성 주인이 비슈누의 지배 아래 영주로써 자리하였다는 뜻이 된다. 

바로 이 12자리에 배치된 태양계 행성의 영주들이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개인적 특성을 부여하게 되면, 이러한 개별적 특성이 인간 각자에게 포괄적인 기질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기질에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운명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인도 점성학의 원리다. 

바로 이 순간에 비슈누에게 부여된 화신의 이름은, ‘인간을 자극하고 두려움과 걱정을 일으키는 이’라는 뜻의, ‘자나르다나’이다. 이때가 인간이라는 생명체로 엄마의 자궁을 통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 순간 태양계 행성들의 배열 상태로 인한 에너지들의 상호 역학 관계로 형성된 최종 에너지의 조합이 나의 신체적, 정신적, 기질적 특성들의 요소로 작용하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결합하게 된다. 

이러한 개별적인 특성은 한 인간이 세상과 마주하는 현실에서 부여된 특성대로 삶의 순간에 대응하게 된다. 

이렇게 대응되어 나타나는 현실의 궤적을 우리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현실로 드러난 궤적은, 아침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밤이 되면 저무는 것처럼, 다양한 인간사에 적용하여 해석해 내기가 다소 복잡해 보이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원칙은 우주가 돌아가는 질서의 단순한 원리가 드러내는 패턴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천적 기질과 태양을 비롯한 태양계 행성 운행의 상호작용으로 개인이 삶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그려낼 궤적이 행성의 운행 원리처럼 예정된 궤적을 따른다는 것이 베딕점성학의 원리다.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이 생명의 근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우주 물질이 95%나 된다면 이러한 물질들에 포함되어 있는 태양계의 다양한 에너지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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