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인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나서 잘 걷지 못하는 어색한 내 모습과 매 순간 마주해야 했다. 다친 순간은 짧았고 순간적으로 아팠지만 주춤주춤 일어나 걸을 수 있어 뼈가 괜찮은가 보다 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로 다친지도 모르고 그대로 출근을 해서 뭔가 아프지만 일도 며칠 했다. 시간이 갈수록 참기 힘든 통증이 몰려와서 큰 병원을 찾게 되고 입원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중에 보니 다리뼈도 실금이 가 있던 거였고 인대와 힘줄도 다쳤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회복이 잘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나는 그 당시에도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아마 그만큼 내 건강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것 같다.
몇 달이 지나 급성으로 찾아오던 심한 통증은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잘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나아지기는 하는 건지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져 갔다.
병원에서는 수술은 마지막 선택지이지만 계속 상태가 좋지 않으면 수술도 고려하자는 말도 들었다. 수술을 하면 또다시 회복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데 하던 일이 또 중단되고 일상도 중단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미 잘 걷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기도 하고 밖에 나가기 어려워 지인들과 모임이나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 아픈 거야?”
‘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어도,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재활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병원에서도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했는데..’
속으로만 생각하게 되었던 말들.
생각보다 오래 아픈 것이 의아하다는 듯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주변의 반응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나도 계속 아픈 이유는 모르는걸. 계속 염증이 도지는 이유는 의학적으로도 이유가 불분명한걸.
지인들이 괜히 걱정하거나 오해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또 내가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왠지 곤란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해 나가야 하는데 아프다는 말은 좋은 말도 아니라서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만에 안부를 나눌 정도의 사이인데 갑자기 내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고, 치료가 왜 잘 안 되고 있는지, 지금 얼마나 안 좋은지 시시콜콜 다 털어놓기도 어색했다.
많이 친한 사람들에게는 어색함을 깨고 다 털어놓기도 했지만 가족에게 이야기할 때조차도 불편한 마음이 있었으니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자세히 말하는 것이 편할 리 없었다. 게다가 아파서 여러 모임을 몇 번 못 나가게 되면서 사람들이 내가 모임에 나오기 싫어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는 것으로 느끼나 싶을 때도 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다치거나 병원을 다니게 되면 그 상황을 별 것 아니게 축소시켜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심각한 질환이나 낫기 어려운 경우는 아니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을 겪어 보니 몸소 느꼈다. 그리고 이전에 몸이 안 좋았던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고 그때는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해졌다.
병원을 다닐 때도 생각보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환자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아직 젊으니까 별거 아니라는 말, 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사실 위로가 되기보다는 젊은데 나는 왜 아픈지 자책하게 되어 오히려 힘이 들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런 말을 듣고 병원을 가야 할 때 내 통증을 무시하기도 했다.
젊어도 다칠 수 있고 아플 수 있잖아요.
아프다는 말이 어떤 자랑거리는 아닐지라도 살면서 생길 수 있고 겪을 수 있는 일인 것을, 나이와 상관없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프면 다 나을 때까지 죄책감 없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