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병원 쇼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한 군데 병원을 믿지 못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는 환자의 이미지가 생각났다. 더 풀어서 말하면, 병원을 한 군데만 다녀도 치료가 잘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병원을 알아보면서 바꾸는 사람이 연상된다. 물론 여기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병원 쇼핑의 문제점을 다룬 신문 기사를 본 기억도 난다.
나도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병원이 많고 의료비가 비싸지 않은 편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 면이 있다. 치료를 진득하게 끝까지 받아야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왜 그런 현상이 있을지 궁금했던 적도 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대학생 때 실습을 할 때부터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에 세컨드 오피니언을 들으러 다시 오는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암이나 중한 질환일 경우에는 다른 병원을 찾는 것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깊이 있는 이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생활까지 많이 바뀌게 되는 상황에서 진단명을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어서 그럴 수 있겠구나.'
이 정도로 이해를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이유는 내가 교통사고로 다친 후에 다시 보게 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나고 보니 나도 병원 쇼핑을 하러 다닌 셈이다. 다만 내가 예전에 생각한 것과 달리 쇼핑하듯 즐겁거나 제대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간 상황과는 달랐다. 오히려 원하지 않았지만 병원을 옮기며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 나는 한 군데 병원에서 쭉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바로 종합병원급의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아닌 동네의 일차급 의료기관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혹시 더 큰 병원을 가도록 권하면 그때 2,3차 병원을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체계적으로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에 갔던 곳은 퇴근 후인 저녁 시간까지 하는 정형외과였다. 이곳도 처음 알아보고 간 곳이 문을 닫아야 하니 내일 오라고 해서 겨우 겨우 옆 건물에 다른 병원을 찾아서 간 것이었다. 비 오는 날에 절뚝이며 간 것이라 뭔가 더 서러웠다. 엑스레이를 찍고 뼈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통증이 있으니 석고 부목으로 반깁스를 해준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도 문을 닫는 시간대가 다 되어 가서인지 데스크 직원분이 곤란해하면서 마지막 환자로 겨우 받아주었다.
그날 이후로 통증이 더 심해져서 참다가 병원을 가려했지만 당시에 퇴근을 하고 집 근처로 가자니 처음 갔던 곳은 시간대가 도저히 맞지 않았다. 결국 급히 조금 더 늦은 저녁 시간대까지 운영하는 동네 병원을 검색했고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를 모두 운영하는 곳을 찾았다. 계획에도 없이 빨리 병원을 옮긴 셈이다.
두 번째로 간 곳에서는 엑스레이도 다시 찍었고 통증이 심해져 있는 상태라서 물리치료도 받았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사 치료를 처음부터 권하지는 않는다고 하셔서 믿음이 갔다. 어쨌든 연차를 아무 때나 쓸 수는 없는 상황이니 나를 받아주는 곳이라 반가운 것도 있었다. 몇 번 더 진료를 가도 통증이 있으니 주사도 놓아주셨고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주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번 가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 이 병원은 항상 사람이 많아서 진료를 볼 수 있을지, 진료 후 물리치료까지 할 수 있을지 매번 불안했다. 바빠서인지 데스크 직원도 불친절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통증도 계속되고 있으니 mri 같이 정밀 검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의뢰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에 다녀오셔야 해요. 다녀와서 확인되기 전에는 진료를 더 봐주기 어렵습니다."
친절했던 선생님의 처음 보는 강한 말투에 당황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보였다.
사실 병원에 더 오지 말고 큰 병원으로 가라니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내 증상에 대해 가벼운 걸로 생각했던 면도 있던 것 같다. 계속 물리치료를 받고 하다 보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디를 가야 할까. 갑자기 막막했다.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은 바로 예약을 잡기도 어려울 텐데. 꼭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걸까... 내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았던 걸까?'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다른 병원을 가야 하는 건 확실했다.
그렇게 다른 병원, '더 큰 병원'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