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까워지는 중
귀를 부여잡고 조수석 글로브 박스만 바라보던 녀석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귀를 쫑긋거린다. 녀석은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눈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녀석은 고통을 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한 시간 내내 혼자 떠드느라 입에서 단내가 났다. 잠깐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이 고새를 못 참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하고 묻는다.
네비게이션의 남은 시간이 5분을 가리킨다. 저 멀리 어둠 한가운데 병원 불빛이 보인다.
후배의 자취방에 들린 이후 그녀는 나와 함께 했던 일상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전과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자퇴를 했다는 말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녀의 집을 찾아가 봤지만 이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빈집이 되어있었다. 그로부터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감당하지 못할 큰 시련이 나를 찾아왔다.
‘깨진 유리창’
2년 전 후배가 말한 그 상처 받은 마음을 이해하게 될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나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는 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 일. 그때의 그녀는 그 길위에 서 있었나보다. 나는 그녀가 종이 상자를 만지며 한 말을 떠올렸다. ‘이거 수백 알 사서 먹으면 수면제처럼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말을 아꼈다.
“얘기는 다음에 해줄게. 병원 다 왔다.”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으면 내리지 않겠다는 녀석을 쫓아내다시피 차에서 몰아냈다. 나의 학생들에겐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주고 싶었다.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모진 나의 과거 이야기는 절대 금지다.
새벽 늦은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오랜만에 열린 5일장보다 더 바쁘고 혼잡했다.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쯤이야 나물 파는 노점상쯤으로 여겨도 될 법했다. 아니, 그래도 됐다. 여기저기 붕대를 묶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큰 사고가 있었던 것 같다. 고통을 이기는 또 다른 방법은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녀석은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자기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이윽고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우리는 적막함이 가득한 공간으로 분리되어 치료를 받았다. 예상했듯이 녀석의 고막은 찢어져 있었다. 특이한 점은 고막 중앙에 정확히 작은 점처럼 동그랗게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데친 시금치처럼 지쳐 보이는 의사는 조용히 나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그런 게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다. 의사는 나의 억울한 절규를 차갑게 외면했다. 나는 순식간에 송곳으로 귀나 찌르고 다니는 잔인한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렸다. 녀석은 치료를 받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는 왜 항상 환자보다 더 아파 보이는 걸까?
의사는
“부탁 좀 드립니다. 찌르지 마세요.”
라는 말과 함께 실눈을 뜨고 무심하게 처방전을 건네주었다. 졸지에 송곳 살인마가 되어버린 나는 체념하고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억울한 누명을 벗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고막이 찢어지지 않고, 구멍 난 상처라 회복 기간이 짧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영어 듣기 평가를 걱정하던 녀석은 회복 기간이 짧다는 말을 듣고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녀석은 처방전을 무슨 훈장처럼 받아 들고는 감격에 겨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도 이제 좀 괜찮아 졌나보네.’
마음이 놓였다. ‘휴...’ 나는 놀란 가슴을 차분히 쓸어내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녀석이 농담을 던지는 모습을 보니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다. 가장 철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녀석의 미소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왔다.
“선생님 배고프지 않습니까?”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녀석을 째려보았다.
저런 능글맞음은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
“제가 나중에 성공하면 꼭 맛있는 거 사드리겠습니다.”
당장 돈이 없다는 말이다.
“맛있는 건 됐고, 내일부터 귀 관리나 잘해 이놈아.”
병원 앞 편의점에서 햄버거와 소시지, 삶은 달걀과 탄산음료를 샀다. 새벽 4시경이었다.
“늦었으니까 차에서 먹으면서 가자”
“넵!”
짧게 대답을 마친 녀석은 조용히 달걀을 까더니 나의 입에 윤기 나는 훈제 계란을 들이밀었다.
“연장자 먼저”
‘그래도 배운 놈이군’
나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깐 달걀을 기분 좋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반쪽짜리 훈제란을 들고 있기 귀찮았던 건지 녀석이 나의 입술에 남은 반쪽을 억지로 우겨넣었다. 나는 ‘어, 어?’하며, 하는 수 없이 퍽퍽한 달걀을 입에 가득 물고 우걱우걱 씹었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자레인지에 갓 돌린 햄버거를 거칠게 물어 뜯었다. 그러곤 게눈 감추듯 햄버거 먹방을 시작했다. ‘그래, 아직 배고플 나이지.’ 햄버거를 입에 문 녀석이 물었다.
“선생님 보셨습니까?”
“뭘?”
“편의점 알바생이요.”
“편의점? 알바생?”
나는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알바생이 왜?”
녀석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귀찮음 반, 궁금함 반을 섞어 물었다. 녀석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관찰력을 가졌다. 가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말을 하기도 했다. 녀석의 표현이 서글프고 예뻐서 가끔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녀석은 뭘 본 걸까?’ 새벽, 푸른 빛 속에서 고통을 이겨낸 녀석의 눈이 무언가 특별함을 찾아낸 것일까? 사실상 새벽 4시는 학원생 모두 잠든 시각이었다. 나도 이 시간에 밖에 있긴 오랜만이었다. 새벽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 이질감과 잔잔한 활기에 졸음마저 달아날 참이었다.
“예쁩니다.”
“뭐?”
“알바생이 예쁘다고요.”
나는 한숨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계란 노른자와 함께 삼켜버렸다.
“제가 성공하면 꼭 이곳에 다시 와서, 그녀에게 고백할 겁니다.”
녀석의 눈에 광(狂)채가 흘렀다.
“고통이 끝난 순간에 만난 뮤즈. 멋지지 않습니까?”
‘안 멋져. 요녀석아!’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할 수만 있다면 꿀밤을 한 대 씨게 때려주고 싶었다.
녀석은 배고픈 늑대가 먹이를 사냥하는 것처럼 남은 햄버거의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어 놓았다.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아픈 건 어느 정도 나았나 보다. 입가에 미소가 잡힌다.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숙학원이 지옥 같지 않냐는 질문에 녀석은
“선생님~지옥이 힙합입니다~”
하고 너스레를 떤다. 녀석의 너스레가 나를 웃긴다. 이 녀석은 꼭 잘 됐으면 좋겠다. 남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 잘 되면 좋으니까.
학원에 돌아오니 으악! 새벽 5시다.
‘오늘은 몇 시간 못 자고 바로 출근하겠구나. 에효, 내 신세야.’
몸과 정신이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린다. 나는 침대에 폭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의 귀는 수능 전에 완전히 회복됐다.
녀석의 친구들이 “너는 귀가 두 짝다 들려도 영어 듣기 점수는 별반 다를 거 없다.”며 놀려 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수능 전날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랩을 흥얼거렸다. 녀석의 말처럼 래퍼 베토벤의 귀는 내 기억 속에 전설로 남았다.
그날은 노예로서 일한 느낌이 아니었다.
노예로 인간을 창조한 신에 대한 배신감은 고된 일상으로 무뎌져 갔다.
무뎌진 감각만큼이나 내 안에선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고 있었다.
인간은 서로를 도울 때 비로소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다.
녀석의 철 없음에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떠오른 순간,
나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기적 같은 희망을 바라본다.
일상의 풍요로움을 꿈꾼다.
신은 우리를 노예로 창조한 적이 없다.
신은 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었을 뿐이다.
인간은 신과 같이 무한한 자유의지를 갖는다.
우리의 인생이 노예로 끝날지 신의 형상으로 기억에 남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친구의 배신과 연이은 실패들로 신을 떠난 지 오래다.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아끼지 않겠는가?
도망친 아버지는 그날 저녁 돈까스를 사오셨다.
병원에서 막으니, 새벽에 몰래 불러내 컴컴한 병원 로비에서 돈까스를 먹이셨다.
잘 웃지 않는 아버지는 내가 돈까스를 먹는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나도 돈까스를 입안 가득 물고 해맑게 웃었다.
나는 지금 신을 공부할 때보다 더
신과 가까워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