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덩이 Apr 04. 2023

신입행원의 첫 단추

퇴사 썰의 시작

"감히 주임 따위가"


내 사수에게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내 첫 지점은 비통함 그 자체였다. 솔직히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인데, 첫 지점 첫 동료들은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회의 쓴맛을 넘어서 성악설까지 믿게 하는, 그야말로 나쁜 사람들이 존재했다. 네가 잘못했으니 그 사람들이 그랬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쎄다. 그 사람들은 내가 은행을 퇴사한 마지막까지도 주변에서 평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래 글을 읽고 평가해 주길 바란다.


내가 배정받은 지점은 꽤나 좋은 위치에 있었다. 서울 강북에 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방송사 1층 정문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크고 영업도 잘 되는 편이었다. 보통은 수익이 일정 이상 나는 지점들을 '금융센터'라고 불렀는데 여기도 몇 개 안 되는 금융센터 중 하나였다. 내 왼쪽에는 내 사수가, 내 오른쪽에는 나랑 나이대가 비슷한 여자행원이 앉았다. 금방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사수는 前임원의 아들이었고 그녀는 부행장(현 행장)의 딸이었다. 부정입사는 아니겠지?라고 의심이 들만한 구도였다.


그들은 나에게 차가웠다. 나는 인생에서 노골적인 적대감을 느껴본 적이 얼마 없기에 계속 그들이 왜 나에게 차가운지 계속해서 고민해야만 했다. 지점 대부분은 신입행원이 온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자기 일도 바쁜데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니 막막한 심정들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내가 처음 일주일에 들었던 말들은 대부분 신입행원이 와서 짜증 난다였다. 순식간에 존재 자체로 짜증 나는 사람이 된 나는 초반부터 이만치 작아져있었다.


내 사수. 그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내 옆에 있는 여자행원이자 부행장의 딸에게 실력이나 애정 면에서 많이 밀려 있어서 많이 쪼그라든 상태였다. 그러니 그 작아진 열등감을 채우려 나를 이용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 물어봐도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내가 계속 못하니 그가 돋보이니까가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혼자 알아가야만 했다.


보통 신입행원이 처음 오면 예금 업무부터 시킨다. 통장 입출금에 통장 이월. 그것부터 해야 기본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점 특성상 나는 바로 대출 창구로 차출됐다. 거기서 입출금도 모르는 애가 대출 상담을 해야 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온 지 일주일 만에 사수가 일주일 휴가를 갔다. 우리 팀장은... 더 얘기해도 입만 아프다. 백 하나로 은행원 인생을 끌고 나간 어떻게 보면 현명하지만 동시에 아주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부지점장인데도 통장이월을 모른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대출 관련된 건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셨다. 그 상태에서 나는 일주일을 버텼다. 한글도 못 뗀 애가 영어 유치원에 간 꼴이었다. 도움을 구할 곳도 없었다. 고객들은 실망하며 돌아섰고 나는 능력이 없음에 죄송할 따름이었다.


지점에 배치되는 순간 내 개인정보가 열린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내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이 종이 한 장에 뽑힌다. 원래는 서무와 지점장만 열람이 가능한데 내가 지점에 와보니 모두가 나에 대해 알더라. 종이가 모두에게 돌려진 것이다. 내 사수는 내가 나온 대학에 대해 떠들어댔고 그 후로도 내가 무슨 일만 하면 "역시 ㅇㅇ대" 또는 "무슨 일이야, ㅇㅇ대까지 나왔으면서"를 남발했다. 그리고 그 여자행원은 우리 아버지가 ㅁㅁ회사에 다니던데 카드 해오기 좋겠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내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나에 대해 안다고 떠들어댈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아무 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작가의 이전글 나와는 다른 사람을 원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