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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덩이 Apr 04. 2023

신입행원과 사수

퇴사 썰의 시작

"감히 주임 따위가"


이 멘트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보겠다. 내 사수는 걸핏하면 열등감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여자행원에게 밀려 쌓아 왔던 분노, 억울함을 약한 자에게 풀었다. 사실 일을 잘하시는 편은 아니었다. 항상 실수해 고객에게 사과했고 알려줬던 정보는 틀렸던 적도 많았다. 실제로 소득을 잘못 계산해 상담을 잘못했고 은행을 속이기 위해 소득자료를 임의로 수정한 적도 있었다. 본인이 작고 무능하다는 것을 어린 행원에게 들킬 때마다 그는 화를 냈다. 


어느 날 4시 문 닫기 직전, 그의 고객 중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눈치를 보며 번호표를 뽑았고 그 고객은 나에게로 왔다. 그 고객은 나에게 상담받았던 것이 아니라 내 사수에게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한 번 상담했던 사람에게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래서 나는 넌지시 그에게 그의 고객이 왔음을 알렸다. 그는 나에게 해보라고 하더라. 영업시간이 지나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그 고객의 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그는 화가 나 있었다. 그의 고객이 왔다는 말이 일을 넘기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을까? 사과를 드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그는 종이를 내 책상에 던지고 일을 미루는 등의 일을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사수의 행동에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들리는 그의 말. "감히 주임 따위가."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날 저녁 사수에게 잠시 밖으로 나가 얘기를 드릴 수 있냐 물었다. 그리고 그는 거절했다. 이 자리에서 그에게 모욕감을 줬으니 사람들이 있는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라 했다. 나는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이 퇴근할 때까지 병풍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가 화난 이유들을 설명하는데 사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대부분 추측성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내가 그를 무시한다라는 결론을 혼자 내리셨다. 아무리 아니라 설명하고 사과드려도 그의 결론을 바꾸지는 못했다. 동아줄이 그 하나뿐인데 내가 어떻게 그를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가당치도 않았다.


그렇게 가능하면 혼자 실력을 쌓으려 노력했고 일 년이 지나 그가 지점을 떠날 시점에는 그의 실력만큼 따라잡을 수 있게 됐다. 도움을 받을 일을 없애니 확실히 업무 측면에서 그의 무시와 조롱을 받을 일이 줄었다. 그가 실수를 할 때마다 옆에서 모르는 척했고 심지어 몇 번은 나에게 이게 맞냐 질문을 하더라. 혼자서 업무에 대한 힘을 키우니 내가 그만치 작아지는 일은 없었다.


결론은 그는 지점을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에게 사과했다. 본인이 돌이켜보면 너무한 순간들이 많다 하더라. 그럴 거면 애초에 그러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얘기하려다 또 그의 열등감을 건드릴까 싶어 말았다. 그 때문에 그만둬야겠다 생각한 적이 수십 번이었다. 지금의 난 퇴사 상태지만 더 이상 내 사수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첫 단추를 잘못 끼웠구나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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