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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May 24. 2023

매직 펌 없이 살기


반곱슬 머리인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매직을 하기 시작했다.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를 동경하기라도 한 걸까. 곱슬거리는 머리가 몹시도 싫었을까.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모발에 불만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이끌고 때가 되면 미용실로 향했고 너무도 당연하게 매직을 해 줬다. 마치 곱슬머리를 물려줘서 미안하다는 듯이. 긴 머리는 더 돈이 많이 드는데 한 번도 머리를 자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건 분명한 사랑이었다.


그 어린 꼬마는 한 시간이 넘도록 얌전히 앉아 있었나 보다. 그토록 생머리를 원했나 보다. 지금은 돈 주고 하라고 해도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긴 머리 볼륨 매직은 2시간이 기본이다. 이제는 미용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지독할 것만 같다.


예전엔 주로 볼륨 매직을 했다. 일반 매직은 정수리부터 딱 달라붙고 일자로 머리가 뻗기 때문에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뿌리 볼륨은 살리고 머리끝에는 c컬이 들어가는 볼륨 매직을 선호했는데, 그건 일반 매직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기본적으로 매직은 모발이 많이 상하기 때문에 영양제까지 추가해야 된다. 게다가 항상 긴 머리를 고수했으니 돈이 더 들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없던 학생 때는 여기저기 헤어샵을 기웃거렸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을 찾아다녀야만 했으니까. 가끔 매직약을 사서 집에서 힘들게 셀프로 한 적도 있다.


습도가 높은 여름, 특히 장마철에 꿈틀거리는 곱슬머리는 정말 지저분해 보였다. 머리를 묶어도 티가 나는 곱슬기를 도무지 숨길 수 없었다. 여기저기 삐져나온 특유의 잔머리는 깔끔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작은 휴대용 고데기를 들고 다니며 머리를 연신 펴 댔다.




지금은 나의 곱슬머리를 받아들였다. 이제는 미용실을 여기저기 바꿔 다니지도 않는다. 매직도 하지 않고 염색도 하지 않으니 미용실에 갈 일이 없다. 더는 독한 약품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머리카락도 집에서 직접 자른다. 짧은 머리는 힘들겠지만, 긴 머리는 셀프 컷이 가능하다. 아무튼 미용실에 발길을 끊게 된 건 정말 큰 변화다.


매직을 하지 않을 때 매일같이 고데기로 달궈지던 내 머리에도 자유가 주어졌다. 그리고 나에게도. 머릿결을 관리하는 시간으로부터도 해방됐다.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을 시간에 책을 붙들고 있는 편이 더 좋다. 샵에서 머리를 지지고 볶고 할 시간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편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좋아하는 시간도 달라졌다.


타고난 곱슬머리. 본연의 모습은 더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비가 오면 머리를 질끈 묶으면 그만이고 더운 여름엔 머리를 가볍게 틀어 올리면 그만이다. 가벼워진 생활이 무척 편안하다. 언제든 나는 내가 원할 때 모습을 달리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대로도 충분히 좋으니까.





작년에 당근에 팔아 버린 휴대용 미니 고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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