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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May 28. 2023

향수 없이 살기


향수를 쓰지 않는다. 선물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해 난감했고, 선물로 고를 때는 시향 하는 게 힘들었다.


향수를 써 본 건 딱 한 번. 선물을 고르면서 받은 유명 브랜드의 향수 샘플이었다. 그동안은 향수에 반감이 강했기 때문에 향수를 사용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번 써 본 그 향이 제법 마음에 들어서 그 제품의 이름까지 외웠는데 지금은 한 글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때 잠시 향수를 써 볼까 싶었지만 결국은 사지 않았고 앞으로도 쓸 생각이 없다.


예전부터 향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강한 향수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팠다. 은은한 정도는 괜찮아도 어쨌든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컸다. 화장품도 향이 나는 걸 싫어해서 기초 제품부터 핸드크림, 바디 로션까지 무향 제품만 골라 썼다. 피부에 닿는 것은 되도록 순한 제품을 선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취향의 문제였다.


이제는 향수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평소 자연식에 가까운 음식을 먹다 보니 일반 치약, 비누, 샴푸 냄새도 맡기가 힘들어졌다. 자극적인 냄새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공 향료가 들어간 것들은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더욱이 향료의 진실을 알고 나니 피할 수밖에 없다.


향수에 사용되는 인공 향료는 피부와 호흡기에 자극을 줄 뿐만 아니라 장기간 체내에 축적되면 내분비계에 영향을 끼쳐 호르몬 교란을 일으킨다. 말 그대로 '독성 물질'이다. 오로지 순간의 향을 발산하기 위해 감수하기엔 너무 잃어야 할 것이 많지 않은가. 너무 손해 보는 장사 아닌가. 그것도 나의 건강을 내걸고 하는. 인공 향료의 안정성에 대해서 너무 관대한 소비 시장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스칠 때 좋은 향기가 나면 그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마법 같은 물건. 냄새가 사람의 인상과 매력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것도, 그게 사람들이 더 특별한 향기를 원하는 이유라는 것도 잘 안다. 한때는 나도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향기로운 사람보다 차라리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어떻게 무색무취일 수 있겠냐마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고 개성 있는 향보다 그냥 나대로 있는 그대로의 체취가 좋고, 나의 향기에 다른 무언가를 씌우고 싶지도 않다.



인위적인 건 오래가지 못한다.
향수를 계속 뿌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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