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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un 01. 2023

네일 아트 없이 살기


네일 아트를 하지 않은 지 2년이 넘었다. 네일 샵에 다니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혼자 집에서 가끔 매니큐어를 바르는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관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쉬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을 골라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쉽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확실히 돈 쓰는 재미도 있었다.


네일 샵은 보통 예약제로 운영된다. 기술이 좋아져서 과거에 비하면 시술 시간이 짧아지긴 했지만, 손톱을 다듬고 *젤 네일을 바르고 굳히고 디자인까지 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래서 꼭 예약을 해야 한다. 특별히 원하는 샵에서 원하는 디자이너에게 시술을 받으려면 예약은 필수다. 지점과 디자이너마다 가격은 천차만별. 몇 개의 색상을 사용하는지, 큐빅을 몇 개 붙이는지, 디자인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바쁜 와중에도 네일 샵을 뒤져가며 예약을 하곤 했다.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관리를 받으러 다녔다.


*젤 네일 : 젤 상태의 아크릴을 손톱 표면에 바르고, UV 경화로 시술하는 네일 아트. 오래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드시 전문 기술로 제거해야 한다.


손톱 관리를 받는 걸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손톱이 상하는 게 싫었다. 뭐,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 다 있나.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일이거늘. 그래서 손톱 건강은 포기한 채 예쁜 손만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네일 샵에서 앉아 있기만 하면,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내 손을 한층 더 곱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관리받는 게 좋았고 그것이 곧 나를 가꾸는 일이라 여겼다.


물론 만족감이 컸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대가가 있는 행복이라면, 그 대가가 나의 건강이라면? 과연 그것을 지불하고 얻을 가치가 있는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게 진짜 만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손톱. 그 아래에는 처참하게 벗겨진 손톱만이 남아 있었으니까.


네일 아티스트의 근무 환경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네일 샵은 지속적으로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곳이다. 최근에는 네일 제품에서도 독한 냄새가 나지 않고, UV로 단시간에 건조하기 때문에 유해 물질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유해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다. UV 경화기를 사용하는 것도 건강에 해롭다. 손톱 주변의 큐티클을 제거할 때는 피를 보기도 한다. 손톱을 좀 더 예쁘게 칠하기 위해 도화지를 깔듯이 큐티클을 잘라내는 건 가장 기본적인 시술이다. 그렇게 뜯겨나간 피부는 붉어지고 연약해질 수밖에 없다.


멀쩡한 살과 손톱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더는 몸에 해로운 것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고 싶지 않다. 애먼 살을 잘라 가며 피를 보고 싶지도 않다. 건강한 손톱을 기계로 갈고 뜯어내고 싶지도 않다. 너무도 부자연스럽다. 너무 가혹했다. 나 자신에게. 손톱도 얼마나 숨을 쉬고 싶었을까?


이제는 손톱을 깎고 다듬기만 한다. 뭉뚝한 손톱이지만 어느 때보다 깔끔하고 단정하다. 애써 손톱을 기르지 않아도 되고, 손톱이 부러질까, 큐빅이 떨어질까, 젤 네일이 깨질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내 손에도 자유가 주어졌다. 마음껏 숨 쉬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손, 억지로 색을 갖다 붙이지 않는 손이 그저 정답고 예쁘기만 하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니 참 편안하다.



순수함이 아름다움이란 걸 몰랐다.





없이 살기 21. 네일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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