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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Aug 24. 2023

명품 없이 살기


10대들도 명품을 소비하는 한국. 미성년의 아이돌이 명품 브랜드의 모델이나 글로벌 앰버서더로 활발히 활동하고, 명품에 대한 10대들의 열망도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이 나라의 청소년을 잠재적인 소비자로 키우려는 명품 브랜드의 전략인 걸까. K-POP 아티스트의 위상에는 갈채를 보내지만, 아이들이 일찍이 사치에 눈을 뜨는 세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평범한 10대 청소년이 명품을 소비한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명품 소비 세계 1위라는 한국 땅에서 나는 가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뉴스에서 명품 매장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그 행렬에 껴 있는 나를 상상하기란 도무지 어려운 일이다. 신용카드를 써 본 적이 없는 나는 수중에 있는 돈으로 사지 못하는 건 내 소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 호가하는 물건을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갖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해서 구입하는 건 내겐 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런 욕구도 없을 뿐더러, 필요한 물건만 구입한다는 소비관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명품은 없다. 여기서 명품이란 이름난 명품 브랜드의 값비싼 물건을 말한다. 명품 가방도, 신발도, 옷도, 시계도 없다. 내가 평생 소비한 명품이라곤 몇 년 전 립스틱과 향수 등 화장품 선물을 지인들과 한두 번 주고받은 게 전부다. 그 사이 가치관이 바뀌었고 이제는 쇼핑도 화장도 하지 않으니 명품 매장 근처에도 갈 일이 없을 것이다.


이건 내가 매달 명품 백 하나쯤은 고민 없이 결제할 수 있는 돈을 번다 한들 달라지지 않을 터. 내가 막대한 부를 쌓게 된다면, 그건 내 능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닐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얻게 된 것일 터, 그렇다면 더욱이 나를 위한 사치에 그 값진 돈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의 가정은 이쯤 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돌아오자.



경조사용 가방과 신발





명품 소비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명품에 대한 욕구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거기다 무슨 말을 보탤까. 그저 소비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명품 백 하나로 행복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비싼 가방 하나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것도 썩 괜찮은 인생이지 않을까.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명품 백 하나로 행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명품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내 행복은 비싼 옷과 신발, 가방에 없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다. 어떤 물건을 가져야만 충족되는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그것을 소유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소유는 또 다른 욕구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 욕구에 갇히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


한국에서 명품 소비가 대중화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게 합리적인 소비라는 인식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러나 한 물건을 오래 쓰려고 하면 명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가의 물건이 아니라도 잘 만든 물건은 많으니까. 좋은 물건을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 비싼 명품을 산다는 말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실상은 이름값과 허세 값을 치르기 위한 경우가 많다.


명품 백 하나 없어도 잘만 산다. 가벼운 에코백 하나면 출근도 외출도 여행도 문제없다. 동물 가죽을 벗겨 화려하게 덧칠한 가방보다 언제든 깨끗하게 세탁해서 쓸 수 있는 천 가방이 깔끔 떠는 나에겐 최고의 가방이다. 구멍이 나면 손수 꿰매면 되니 비싼 수선 비용도 들지 않는다. 값비싼 가죽 가방이 비에 맞을 새라, 흠집이 날 새라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뺏기는 건 피곤하기만 하다. 몇 년 전부터 매일 들고 다니는 3만 원짜리 에코백은 비싸고 이름난 명품은 아니지만 나에게만큼은 뛰어난 물건, 즉 명품이다. 나는 이 가방의 구멍을 메워 가며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다. 내가 만약 명품을 소유하게 된다면 오래도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물건이어야 할 것이다.




허영과 과시욕으로 명품을 소비할 일은 앞으로도 없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몸에 명품을 두르고 싶지도 않다. 차림새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이가 있다면 그런 태도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 많이 가진 것에 대해 가벼이 떠들어 대는 사람과도 어울릴 필요가 없다. 진정한 부자는 부를 자랑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공감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고 싶다.


자신과 가족의 능력 이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사치야말로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열에 하나만 알고 아홉은 모르는 소리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도 존재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과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 그 사실만 깨달아도 적어도 자신이 가진 행복까지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명품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애써 명품 같은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그냥 나로서 충분한 사람이 되면 그만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비싸고 좋은 물건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바쁘고,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겉치레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분수와 만족을 알고 살아가는 이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저 나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나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사치라 느껴지곤 한다. 깨끗한 물과 음식부터 입고 자는 것까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능력을 쏟고 힘을 낭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검소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일상을 지탱하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원하는 삶의 방식이다.





없이 살기 46.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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