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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Aug 29. 2023

하이힐 없이 살기


높은 구두를 신지 않는다. 결혼식이라도 참석하는 날에는 단정한 모양의 검은색 단화를 꺼내어 신는다. 격식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신발이다. 평소에는 운동화만 신는다.


한때는 하이힐을 선망했다. 일찍이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10대 소녀는 아가씨 흉내라도 내듯 짧은 치마를 입고 굽이 있는 롱부츠를 신었더랬다. 발은 아프고 걷는 폼은 어설펐을지 모르나 마냥 예뻐서 좋았다. 발끝에서 또각또각 울려 퍼지는 소리에 기분이 들뜨곤 했다.


성인이 되어 검은색 펌프스 힐을 하나 장만했다. 그 힐을 처음 신었던 날을 기억한다. 사촌의 결혼식이었다. 9cm 높이의 하이힐. 그렇게 높은 신발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욱신거려서 온 신경이 발로 쏠렸다. 신다 보면 늘어날 것을 고려해 한 치수 작은 사이즈를 골랐던 게 화근이었다. 발은 꺾일 때로 꺾였고 속에서는 비명을 질러 댔다. 그 상태로 걸어 다닐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용감한 일이었다.


아무리 착화감이 좋은 구두라 해도 잠깐 착용하는 게 아니라면 결코 발이 편할 리 없다. 구두를 신을 때면 항상 먼저 발에 밴드를 붙여야만 했다. 그래도 어김없이 물집이 잡히거나 발이 까졌다. 힐을 벗고 나면 퉁퉁 부은 발에 허리까지 아팠다. 하이힐은 오로지 예뻐 보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발 건강은 안중에도 없다. 자고로 신발이란 발을 보호하고 걷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하이힐은 어떤가. 역으로 발을 공격하고 있다.


그렇게 하이힐에 대한 아픈 추억들을 뒤로하고 운동화만 애용하게 되었다. 몇 년 간 같은 브랜드의 흰색 스니커즈만 줄곧 신었다. 그리고 재작년까지 남아 있던 부츠 하나를 끝으로 불편한 신발을 모두 정리했다. 발이 불편한 신발은 더 이상 신지 않기로 했다. 정말 필요가 없어졌다. 짧은 치마도 하이힐도. 불편한 옷과 신발은 이제 안녕이다. 몸에 걸치는 것은 무엇이든 편해야 한다. 내 몸을 더는 구속하고 싶지 않다.


좋아했던 부츠도, 갖고 싶었던 예쁜 구두도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 내 몸이 더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소홀히 하기 쉽지만 발은 어느 신체 부위보다 중요하다. 발의 컨디션이 하루를 좌우한다. 불편한 신발은 피로도를 가중시킬뿐더러 이동에도 제약이 된다. 신발이 편하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예뻐 보이는 것보다 몸이 편한 게 제일이다. 예뻐 보이기 위해 하이힐을 신고 발에 난 상처를 뒤늦게 살피기보다 먼저 내 발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나를 소중히 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 그런 용기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 준다. 하이힐에 올라타서 얻는 잠깐의 아름다움과 알량한 자신감을 버렸더니 내가 더 소중해졌다. 깨끗한 발과 건강까지 지켰다. 사뿐사뿐 걷는 조용한 발걸음에 오늘도 가벼운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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