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깨끗한 히키코모리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저녁에는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긴 머리를 치렁치렁 달고 있지만 하루라도 머리를 감는 일을 거르는 법이 없다. 감기 몸살이 나서 드러누워도 몸을 일으켜 머리는 감고 자야 직성이 풀린다. 2년이 넘도록 머리를 안 감은 날은 아마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젠 머리를 안 감으면 못 참는 몸이 되었다.
양치도 부지런히 한다. 밥을 먹고 난 직후에 바로 칫솔질을 하면 치아에 좋지 않다고 해서 식후에는 가볍게 물로 여러 번 헹군 다음 몇 분 후에 양치를 한다. 기다리기 귀찮으면 바로 양치를 할 때도 많다. 일단 무슨 음식을 먹든 간에 먹고 나면 물로 먼저 가볍게 입안을 헹구는 습관이 있다. 치아 관리는 필수다. 평생 가져가야 할 치아의 건강을 지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언제부터 이랬냐고? '아, 이대로는 살기 싫다' 싶었을 때, '나를 좀 갱생하자' 싶었을 때, 내 몸을 깨끗이 씻기기 시작했다. 매일 씻기, 매일 머리 감기. 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청결함은 내가 스스로를 바닥으로 끌어내리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이 작은 움직임이 오늘도 살게 했다. 내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은 가장 먼저 나를 돌보는 일이다.
원래 잘 씻은 거 아니었냐고? 아니, 나는 그렇게 깨끗한 인간은 아니었다. 외출할 때는 잘 씻었지만 집에 있을 때는 잘 안 씻었다. 특히 긴 머리 탓인지 머리 감는 걸 무척이나 귀찮아했다. 그런 인간이 방구석을 나가지 않는데 잘 씻었겠는가? 상상해 보라. 대체 며칠 안 감은 머리인지 알 수 없는 머리를 달고 있었다. 귀찮을 땐 이도 잘 안 닦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환경 보호에 기여한 듯싶다. 허접한 농담이다. 나 하나 돌보지 못하는데 무엇을 보호하겠는가. 아무튼 더러웠다는 얘기다.
내게 '씻는다'라는 말은 '귀찮다'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지금은 '씻는다'에 '귀찮다'가 끼어들지 않는다. 그냥 씻는다. 나란 인간은 씻는 걸 싫어하는 인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씻는 일은 기호나 성향이 아닌 습관이었다. 매일 씻는 사람들은 씻으면서 별생각을 안 한다. 씻기 전엔 귀찮아할지라도 일단 욕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으면 씻게 되어 있다. 씻는 행위에는 별생각이 필요 없다. 그냥 '씻는다'만 생각하라. 다른 생각은 필요 없다. 씻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새들도 물을 보면 목욕을 한다. 씻는 기술이란 없다.
일단 씻자. 씻고 보자. 하루는 씻는 걸로 시작된다. 씻어야 한다. 당신이 물이 아까워서 씻지 않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샴푸랑 비누랑 치약이 없으면 물로만 씻어라. 씻지 않고서야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다. 씻는 순간 당신은 바뀔 것이다. "대충 씻어라." 이렇게 말해도 당신은 분명 깨끗이 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한 번 맛본 상쾌함이 당신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다 줄 테니까.
당신은 이제 깨끗한 히키코모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