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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없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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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30. 2023

택배 없이 살기


20일 만에 택배를 시켰다. 먹는 것 말고는 택배를 시킬 일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도 1~2주에 한 번은 고구마나 과일을 주문하곤 하는데 제법 공백이 길어지려던 참이었다. 열흘 전 다 먹은 단감이 또다시 눈에 아른거려서 배송을 시켰다. 가까운 과일가게에서 사 먹을 수도 있지만 과일은 보통 직거래를 이용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농가에서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집에서 편하게 산지 직송을 받을 수 있는 시대,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런데 정말 좋은 걸까? 나 하나 먹이겠다고 과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꽤 지난 일이다. 단지 외면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야 편리하니까. 이왕이면 좋은 것, 저렴한 것,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고 싶으니까. '택배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와 '먹을 건 먹어야 된다'는 목소리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빚곤 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하지 않느냐고, 사치 부리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에 쓰는 건데 괜찮지 않느냐고 내면의 소리가 반기를 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는 생필품 외에는 쇼핑을 하지 않는다. 욕실 용품으로 유일하게 사용하는 비누는 가까운 매장에서 산다. 인근에서 수급할 수 없는 생필품만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있다.


고정적으로 온라인 주문을 하는 건 두 가지, 고무장갑과 세탁비누다. 매일 설거지와 손빨래를 하는 나는 흔하디 흔한 빨간 고무장갑이 싫다. 매일 하는 집안일을 이왕이면 더 기분 좋게 하고 싶다. 좋아하는 색깔의 고무장갑을 끼고 싶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똑같은 베이지색 고무장갑을 구입해서 쓰고 있다. 세탁비누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주방 비누 겸용으로 쓰는데 가끔 맨손으로 사용해도 괜찮고 원재료가 단순한 수제 비누이기 때문이다.


고무장갑과 세탁비누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주문하는 것이니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충분히 오프라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특정 제품을 고집해야 하는지 고민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택배 이용을 줄이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택배 상자를 비롯한 포장 쓰레기. 둘째, 택배 배송 중 발생하는 탄소 배출. 셋째, 택배업 종사자들의 노고. 이왕이면 줄일 수 있는 건 줄이는 게 여러모로 좋은 일일 테니.


택배 쓰레기는 말하지 않아도 심각하다. 깨지기 쉬운 과일이나 스티로폼 망, 에어캡으로 포장된 식품은 구입을 자제하고, 물건을 살 때도 포장재를 최소화하고 종이 포장을 한 곳에서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비닐이나 에어캡, 스티로폼 등을 줄여도 종이 상자는 나올 수밖에 없다. 종이 상자도 쓰레기는 쓰레기다. 재활용이 된다고 해서 쓰레기가 아닌 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 과일은 시장에서 사다 먹기도 했다.


매번 택배를 시키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이 때문만은 아니다. 주로 5kg, 10kg의 무거운 과일이나 감자, 고구마 박스를 시키다 보니 택배 기사님들께 신세를 지고 있다. 당일 배송, 익일 배송, 발 빠른 배송에는 수많은 인력들의 노고가 녹아 있음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가 지불하는 배송료에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택배 쓰레기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한 번에 몰아서 주문하면 무게가 늘어나 택배 기사에게 부담이 된다.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다. 그래서 안 시키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안 먹고 말지' 그런 적도 많다. 결과적으로 따진다면 택배를 이용하지 않는 것, 온라인 주문을 오프라인으로 대체하는 게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이쯤에서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하는 집 앞 배송이 진짜 편리하고 좋은 일인지 의문이 드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 택배가 도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고려하기는 힘들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도 택배가 오면 주문한 물건이 잘 도착했는지만 관심을 기울일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친환경 비누를 탄소 배출을 하는 택배를 이용하여 구입해도 친환경일까? 유기농 식품을 쓰레기와 탄소를 배출하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게 건강한 먹거리일까? 친환경과 유기농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확실한 건 얼마든지 택배를 이용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익숙한 편의성과 소비 습관, 특정 취향만 버린다면. 좀 더 '좋은' 걸 취하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결국 도돌이표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선은 자급자족으로 생활방식을 전환하는 방법이다. 당장은 실현하기 어렵겠지만 오래전부터 숙고해 오고 있다. 우선은 택배 이용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여 봐야겠다. 머리만 굴리고 있는 것보다야 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더 하는 게 나으니까.





없이 살기 87.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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