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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Jan 12. 2024

음악 없는 삶


음악을 듣지 않았다는 점에서 2023년은 남달랐다. 음악 없이 살기에서 음악을 자주 듣지 않게 되었다는 변화를 언급한 바 있지만, 이 기간이 이렇게까지 길어질지는 몰랐다.


미리 밝히지만 재미없는 이야기다. 왜냐면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음악이 없는, 이 고요한 일상이 주는 평화에 대해 호기심이 돋거든 읽어도 좋다.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 음악이 곧 삶인 이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당신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당신들이 빚어낸 선율이 지금 내 삶에는 필요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서론이 참 우습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언제 또 음악을 가까이하게 될지 모르면서 음악 없는 삶을 찬양하다시피 구는 게. 원래 어설픈 자가 말이 많은 법이다. 그래서 전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 없는 삶’에 대해 어설프게 떠들어 볼까 한다.


내 손으로 음악을 재생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벨 소리,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끔 영상을 보다가 듣게 되는 배경음악 말고 순수하게 음악을 듣고 싶어서 찾아 듣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말이다. 왜 그럴까? 스스로도 궁금했다. 나는 원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음악도 소음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음악이 듣기가 싫었다. 특히 가사가 슬픈 노래가. 그래서 피아노 연주곡 같은 가사 없는 음악을 주로 듣게 되었다. 그러다 클래식을 듣게 되었고 한동안 드뷔시의 음악에 빠졌었다. 그러다 모든 음악을 꺼 버렸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내 음악 취향을 모르겠다. “어떤 음악을 좋아해요?” 묻는다면 “음악을 안 들어요” 답할 테니까. 음악을 안 들으니까 취향이란 것도 사라진 느낌이다.


물론 모든 음악이 완전히 차단된 환경은 아니었다. 하물며 바람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생에서 음악이 필요한 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음악이 필요하지 않는 순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음악이 듣고 싶다는 욕구가 없는 상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놀라운 발견은 음악을 듣지 않아도 혹은 음악을 듣지 않아서 감정의 기복이 없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이 없어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외부 자극이 줄어들면서 감정이 쉽게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음악을 들으며 기분 전환을 한다. 슬플 땐 슬픈 노래를 듣는 것처럼 때로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더 깊게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음악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간은 처음부터 음악을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킨다고 보고 금기시하던 문화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음악에 녹여 내는 것과 같이 반대로 우리에게는 음악에 빼앗긴 마음, 무심코 음악에 내맡기던 감정들이 있지 않을까.


음악을 듣지 않아서 좋은 점 또 하나는 머릿속 주크박스가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입력된 목록 중에서 임의로 재생된 노랫말은 예고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입력이 줄어드니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수험생들에게 위험한 수능 금지곡이 있는 것처럼 중독성 강한 노래에 주의력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 일 년간 어떤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신경 쓰였던 적이 없다. 손에 꼽을 만한 횟수로 짧은 음절이 찰나에 스쳐가기만 했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멋대로인 주크박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만약 음악을 안 들어서 아쉬운 게 있었다면 진즉 음악을 찾아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아쉬울 만한 점을 꼽아 보자면 추억의 노래가 없어질 가능성. 흔히 당시 즐겨 들었던 노래를 통해 훗날 그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음악을 듣지 않는 기간이 연 단위로 길어진다면 이것도 아쉬운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그 대신 그때 봤던 책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내가 쓴 일기와 시와 글, 무수한 기록을 펼쳐 보면 되니 그리 아쉽지는 않을 테다. 어떻게 보면 추억 장치가 바뀐 셈이다.


음악을 안 들으면 최신곡을 몰라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공감대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악이 있어서 즐거운 사람, 음악이 없으면 공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악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음악에 몰입을 잘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 그리고 감정의 동요를 줄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음악이라는 자극을 먼저 줄여 보는 게 어떨까?


습관적으로 틀던 음악을 잠시 꺼 보는 것. 가끔은 고요 속의 나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음악 없는 삶이 결코 결핍된 삶은 아니다. 생각보다 좋다. 음악이 꺼진 일시정지의 시간 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을 목격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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