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직 공무원의 면직, 우울증, 공황장애
최근 나는 다른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고 마주치면 긴장되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사람들과 눈을 안 맞추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멍을 자주 떄리며 배가 고픈데 입맛은 없곤 했다.
출근 할 생각을 하면 하루 전 부터 긴장되고 초조했으며 혼자서 많이 울기도 했다.
원래 밝고 사람을 좋아하며 먹을건 더 좋아하던 내가, 나의 이런모습을 자각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이번주 월요일로 예약했었다. 더 빨리 진료를 받고싶었지만 예약이 꽉 차있는 병원들이 많았으며 그나마 제일 빠른 날짜가 월요일이었다. 참 씁쓸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정신과 진료를 받는사람이 많다니 ... 일단 월요일까지는 버틸수있겠지 괜찮겠지 하며 견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번 주 금요일 , 월요일까지 못 버티고 터지고 말았다.
출근을 해서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심장이 너무 콩닥거리고 눈물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 상태에서 오후에 소화해야할 일정이 생겼다고 준비하라고하니 정말 못견디겠더라 그래서 오후 반차를 냈다.
같이 일하는 상사가 있는데 그 분께 반차를 내고 가야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눈물을 못참고 펑펑 터져버렸다.
평소 그분에 대한 신뢰가 꽤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왜그러냐고 묻자마자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많이 당황스러워 하시면서도 조언을 해주셨다.
그 조언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는데 ,,, 대충 요약하자면 , 원래 직장을 다니다보면 그런시기가 있다, 날씨가 봄이와서 더 싱숭생숭해서 그런걸꺼다 그 고비를 못 넘기면 다른일도 못한다 ... 이런내용이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2달 넘게 가지고 있다가 상황이 심각해져 정신과진료 예약까지 한건데데 고작 일에 대한, 직장에 대한 권태감에 어린나이에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정도로 생각하다니 .. 물론 나를위해 해준 말이겠지만 정말 하나도 위로가 안됐고 .. 뭐랄까 더 반감이 들었다. 그냥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하나 ..란 생각까지 했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상태가 심각했던건 아니었다.
자그마한 응어리들이 해소되지 못한채 쌓여 덩어리가 되어 나를 누르게 되었다.
응어리들을 생각해보자면
1. 처음 발령을 받고 사무실에 들어왔을때 면접관 책상같은 책상이 6개 정도 나란히 놓여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사무실의 분위기는 당연히 아니였으며 실망을 했었다.
2.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입사동기 7명의 성향은 각자 다 달랐으며 회식, 사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으며 딱 직장동료 느낌이였다. 타지여서 어느정도의 기댈 수 있는 동료들이 필요했는데 그게 충족이 안됐다.
3. 근무지의 특성상 남자가 95프로인데, 나머지 여자들이랑은 부서가 달랐으며 처음엔 잘 챙겨주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겉돌게 되었다. 선을 긋는 느낌도 들었다.
4. 인생 첫 직장, 첫 독립 쉬운게 하나도 없었다.
5. 제일 큰 스트레스 원인은 같이 일하는 1년먼저 들어온 선배(?)이다.
이사람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때문에 따로 써야할 것 같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다른사람들한테는 싹싹하게 잘 하지만 나는 어리고 후배라 그런지 무시하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6. 5번의 그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일을 제대로 인수인계안해주고 귀찮은건 떠넘기며, 유리한건 혼자한다.
7.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사회에서 도태되어감을 느끼며 여기서 나의 성장기회는 없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조그만 일들이 많지만 대충 크게 생각나는건 이정도이며 쌓이고 쌓여 한계치에 도달해버렸다.
그렇게 저번주에 금요일 오후에 병가를 내고 멘탈이 망가진채로 급하게 당일진료가 가능한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그 의사선생님께서는 공감을 해주시는게 아니고 형식적으로 환자를 대하는구나 라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일로 오셨어요?" 라는 말에 아무말 못하고 눈물부터 흘리고 꺽꺽울며며 이야기를 했는데 형식적인 "아 그러셨군요, 힘드시겠어요" 라며 "혹시 가족중에 정신질환을 앓는사람이 있냐", "일한지 얼마나 되셨냐", "아직 4개월밖에 안돼서 그렇다며 섣불리 판단하지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약을 처방해주셨는데 그 병원에 다녀온 후 마음이 더 편치가 않아서 그 약은 먹지않았다. 신뢰가 가지않는 의사선생님의 약을 먹기가 싫었다. 솔직히 괜히 다녀왔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병원을 다녀온 뒤 그 당일에 전부터 친구들과 잡아놓은 약속이 있었기에 상태가 안좋았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이 정말 보고싶었고 기대를 했던 만남이었지만, 기쁘지가 않았다.
나의 슬픔과 내 상태를 들킬까봐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일이 어떻냐는 말에 그냥 쉽지않다~ 라고만 얘기했고 짧은 만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함을 즐기지 못한게 이번만은 아니였다.
본가에 내려가면 즐겁게 놀다가도 다시 출근을 할 시간이 다가오면 표정이 굳어졌으며 그걸 느낀 가족들도 내 눈치를 봤다. 눈치를 보는걸 내가 느꼈을땐 정말 미안했지만 미안하다고 얘기하지 못했다.
난 이대로는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월요일에 예약했던 병원에 갔다.
사실 당일까지도 엄청 망설였다. 또 별 도움이 안될까봐
다행히 월요일에 갔던 병원에서는 의사선생님께 위로도 받았으며 나의 병명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고 했다. 약도 지어주시길래 금요일에 타병원에서 받은 약이있었는데 겁나서 안먹었다고 솔직하게 얘기드렸더니 걱정마시고 자기를 믿고 먹어보라고 하셨다.
병원을 다녀온 뒤 마음이 편해졌으며 잘 갔다고 생각했다.
약은 아침, 저녁, 불안할때 응급으로 3가지가 있는데 출근할때 먹어봤더니 효과가 꽤 좋았다.
심장이 콩닥거리는게 덜 했으며 차분했다. ( 근데 너무 차분해서 멍- 해진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는게 다행이면서도 걱정이 됐다. 앞으로 계속 약을 먹으며 견딜수는 없지 않는가?
솔직히 굳이 약을 먹으면서까지 견디며 여기 남고싶지가 않다. 안 남을거다.
병원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듣고 나름의 충격을 받은 뒤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내가 출근하기 싫고 힘들어한다 정도만 알고 계시던 부모님께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얘기를 하는게 쉽지가 않고 긴장되서 약을 한 알 먹고 아버지께 먼저 얘기를 드렸다.
이번달 안에 일을 계속 할지 말지 정할거라고 했더니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사실 무조건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답장이 온 걸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병원에 간것도 고백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것도 이야기 드렸더니 담담하게 큰일이네.. 라고 하셨다.
평소 나를 얼마나 걱정하신지 나는 안다. 정말 무뚝뚝한 아버지가 전화해서 본가에 내려오라고 하시고 돈줄테니 운동이라도 하라고, 맛있는거 먹으러가자며 은근슬쩍 챙기시고 걱정하셨다. 지난번에는 기차역에서 내가 탈때까지 나를 배웅해주시기도 했다.
아버지도 평소에 내가 무뚝뚝하고 끙끙앓는 성격인걸 아시기에 내가 저렇게 한 고백에 나를 믿어주시고 내 선택을 존중해주시는걸꺼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께는 더 어렵게 고백을 했다. 얼마전 카톡으로 너무힘들면 그만둬도 되냐 라는 말에 그땐 내 상태를 모르고 마냥 견디라고 했었기에 또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않았다.
그냥 아버지께만 얘기할까 고민을 하다 병원에서 내 상태가 그렇다라고 진료를 받았다고 얘기하며 이번달 안에 결정해야할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카톡을 읽고 한동안 답장을 안하시다가 다음날 아침에 밥은먹었냐며 전화가 오시더라. 내 카톡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답장을 못했다고 얘기하셨다. 힘들면 어쩌겠냐고 다른거 찾아보라고 해주셨다. 출근해서 받은전화라 눈물은 최대한 삼켰다.
부모님께 저런 답장을 받고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사람은 사실 힘들때 듣고싶은말이 정해져있는게 아닐까 ? 난 그렇다.
그만둬도 괜찮다는 말에 바로 그만둬야지 !! 하는건 아니지만 그 말을 듣고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졌다.
꼭 잡고 견뎌야한다는 부담감이 좀 덜어지니 더 이성적으로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을 느낌이 든다.
이번주에 본가에 간다.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많은 얘기를 한 뒤 결정이 날 것 같다.
어떤 결정이던 후회하지 않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