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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쁜파크 Nov 19. 2023

희망의 길에서 만나게 될 판단.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는 닉의 어린 시절 아버지 충고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생각하며 닉은 판단을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닉의 집안은 미국 중서부 도시에서 삼대에 걸쳐 꽤나 알려졌고, 아버지와 닉은 모두 예일대학을 나왔다. 초기의 행동과 말로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충분히 겪어 보는 관대함을 지니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런 배경에서 자란 닉이 타인의 내면을 우월한 시선으로 보지 않으려는 책의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Reserving judgements is a matter of infinite hope.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도 영원하다.

p.7. <The Great Gatsby> / p.12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닉은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동부로 옮겨와 nobody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old money 톰과 new money 개츠비의 삶을 no money 닉이 옆에서 지켜본다. 그는 이곳에서도 아버지의 조언대로 신중하고 관대하게 주변인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톰과 그의 내연녀 머틀과 함께 뉴욕의 아파트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겪고, 데이지를 다시 만나려는 희망을 품은 채 5년의 시간 동안 엄청난 부를 준비 해 온 개츠비를 만나 데이지와의 관계를 도와준다. 남편의 계속되는 바람을 알고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데이지가 개츠비를 만난 후 겪은 심경 변화까지 닉은 다양한 주변인들을 옆에서 경험했다.


인물들이 겪는 여러 사건들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닉이 판단을 유보하는 모습은 소설 마지막으로 갈수록 아쉬움을 남겼다. 머틀이 차에 치어 죽은 날 밤, 집 밖에서 데이지를 지키기 위해 서 있는 개츠비를 돕겠다며 닉은 톰과 데이지를 살피고 왔다. 톰이 열심히 얘기를 하면서 데이지의 손을 감싸고, 데이지는 그런 톰을 올려다보는 모습에서 무슨 일을 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츠비에게 그런 느낌을 알리지 않고 차에 치인 머틀이 톰의 정부였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다음 날 단지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고 유일한 칭찬인 듯한 말을 남기고 출근했다. 


닉이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개츠비에게 전달했으면 어땠을지, 결국 개츠비의 장례식에 데이지의 꽃 한 송이, 조전 한 줄 없었다는 사실을 분노 없이 떠올리는 그의 마음이 아쉽다. 중요한 순간에 상대방 행동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세우지 않고, 그저 판단을 유보함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준다.


무엇보다 판단 유보는 개츠비에게서 더 많이 느끼게 되었고 그럴수록 아쉬움도 컸다. 그가 17살의 제임스 개츠로 지내던 시절,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바닷가를 배회하다가 밤마다 터무니없는 발상을 떠올렸다. 


한동안 이런 몽상들은 상상력의 배출구가 되어주었다. 이는 현실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이 세계의 기반이라는 것이 요정의 날개 위에도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증 같은 것이었다. 

p.123,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Unreality of reality. 밤마다 머릿속에서 똬리를 튼 환상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현실을 이상으로 그려 간다. 그러나 그 이상은 플라톤의 철학처럼 누구나 다 그러기를 바라는 이데아 같은 것이 아니라, 가난을 벗어나고픈 개인의 욕망 그리고 그것의 집착에 더 가까워 보인다. 17살의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야망, 자신의 가난한 생물학적 아버지를 벗어나 매일 환상을 꿈꾸다가 세상의 모든 화려함을 가진 듯한 댄 코디의 요트를 보고 미소 지어 보이며 Gatsby(개츠비)로 새롭게 시작했다. 더욱이 데이지와 처음 키스 했을 때는 늘 꿈꾸었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남을 느꼈다.


이처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벗어나 화려한 세계와 데이지라는 사교계 최고의 여자를 맛보면서 그것은 어쩌면 개츠비의 infinite hope(무한한 희망)가 되었을지 모른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p.13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희망! 그 무한한 희망을 닉은 개츠비의 천부적 재능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판단을 유보하고 그 희망만을 쫓아가는 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법고시 준비로 수년간 공부하다가 결국 시험 합격도 대학 졸업도 놓친 채 힘겹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이야기, 공무원 시험을 10년 넘게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 아이의 대학을 부모가 정해 놓고 그것이 희망인 양 공부시키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희망'이라는 반짝이는 빛이 삶의 중요한 요소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정해 놓은 간질간질한 빛을 향해 옆과 뒤 보지 않고 무턱대고 달려만 가는 과정에는 안타까움도 함께 한다.


이런 모습은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다단계'에서 연봉 수십억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다이몬드 급이 될 수 있다는 환상에 잡혀 판단 없이 그저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물건을 살 필요도 없어 돈이 들지 않는 선한 뜻을 가진 단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니 사람들의 봉사와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함께 가면 좋은 일도 하고 성공도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자신의 상황에서(예; 육아, 업무 환경 등) 자신이 소화 가능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지, 그 이상의 노고로 일상 자체가 힘들어지진 않는지, 내 희생에 대한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나는 어느 선까지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나아가는 과정도 필요할 것 같다. 종교, 모임 등 생활 어느 면에서든. 


한계선. 그것을 넘어서는 용기가 중요하다. 다만, 때로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멈추어 생각할 한계선도 중요하다. © polarmermaid, 출처 Unsplash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도 영원하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삶에서 영원할 수만은 없는 희망이기에 개츠비를 보며 판단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잠깐 빠져나와 생각해 볼 수 있는 힘, 중간에 멈추고 돌아설 수도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5년 동안 희망을 품고 데이지를 다시 찾을 준비를 해 왔던 개츠비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이런 질문과 자신을 멈추게 해 줄 주변인은 아니었을까?


"Are you happy?"


(<화씨 451>의 몬태그에게 던진 클라리쎄의 질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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