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운동이 저녁 8시에 끝나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둘, 둘 나뉘어 식사를 해결한다.
나는 둘째의 저녁 도시락을 챙기고,
남편은 퇴근 후 첫째와 먹을 메뉴를 고민한다.
단톡방에서 남편이 큰딸에게 뭘 먹을지 묻는다.
짧은 순간에도 남편은 유머 한 스푼 넣어 웃음 포인트를 챙긴다.
결국 저들은 집에서 초밥을 먹었다.
회사 다닐 땐,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오전을 보냈던 것 같다.
카톡이 없던 당시엔 회사 인트라넷으로 메뉴를 정했다.
요리를 해야 하는 주부가 되니 고민은 더 크다.
20만 원어치 장을 봐 와도 고기 굽고 나면 다음 끼니 먹을 게 없고 (왜 이렇게 비싸...)
아이들은 저녁 먹으면서 내일 아침 메뉴를 묻는다. (내가 어떻게 알아...)
등교 전 식탁에 앉은 딸은 어제 아침과 메뉴가 같다는 말로 시작한다. (세끼 같지 않은 게 어딘데...)
최근에 <흑백 요리사>를 재미나게 봤다.
나도
에드워드 리처럼 경이로운 메뉴를 만들어 내는 요리회로가 있으면 좋겠으나, 현실은 집밥주부 문.
이모카세처럼 다양한 메뉴를 맛깔나게 뚝딱 차리면 좋겠으나, 현실은 엄마카세.
트리플 스타처럼 맛은 물론 재료 크기까지 일정하게 자르는 과학까지 갖추면 좋겠으나, 현실은 평점도 없음.
갑자기 울 엄마 생각이 난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면서
세끼는 물론, 새참에, 손님들 오면 술상까지 매일 준비했던 엄마.
방 걸레질 하다 한숨 쉬며,
"저녁은 또 뭘 해 먹냐." 하시던 모습.
메뉴 고민은 시대를 넘나 든다.
고전 같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