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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찾는 거 있으세요?

우리는 무엇을 찾는 중일까?

by Mira Kang Ma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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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가게에 오는 고객들은 각자의 방문 이유가 있다. 궁극적인 이유는 화장품을 사러 온 거지만,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방문 이유를 살펴보면 크게 3가지이다. 그 브랜드에 그 제품을 찾는 고객, 브랜드와 상관없이 특정 제품을 찾는 고객, 뭐 새로운 게 있나 구경 온 고객이다. 원하는 브랜드의 특정 제품을 찾는 고객은 가게 문을 여는 동시에 휴대폰 화면을 켠다. 화면을 내 쪽으로 보이며 "이거 있어요?"라고 묻는다. 찾는 제품이 있으면 그 제품을 짚어서 바로 계산대로 향한다. 불과 3분 컷! 실속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현명한 소비이다. 찾는 제품이 없는 경우에도 신속하게 가게를 떠난다. 같은 성능을 가진 다른 제품을 추천해주려고 해도 듣지 않는다. 원하던 '그' 브랜드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매의 성공 여부를 떠나 첫 번째 방문 이유를 가진 고객들이 가게에 머무는 시간은 짧다. 심지어 문을 반만 열고 얼굴과 한쪽 어깨만 가게에 들여놓은 채로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고 10초 만에 떠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방문 이유를 가진 고객들의 체류 시간은 조금 더 길다. 폼 클렌징, 보습 크림, 립글로스처럼 특정 기능을 가진 제품을 찾는다. 여기에 속하는 고객은 우선 가게에 들어와서 두리번거린다. 이런 행동이 포착되면 나는 잽싸게 묻는다. "뭐 찾는 거 있으세요?" 십중팔구 원하는 제품을 말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원하는 제품군이 자리 잡고 있는 매대로 안내한다. 이런 분들은 브랜드는 상관하지 않는다. 간혹 특정 브랜드 제품이 있는지 물어보는 고객이 있지만, 없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브랜드든 고객님이 원하는 기능만 수행할 수 있으면 환영한다. 우리 매장에 있는 제품 중에 테스터를 사용해 보거나 내가 해준 조언을 토대로 구매 결정을 한다. 대략 5분에서 10분 동안 방문 목적을 성취하고 돌아간다. 고객과 사장 모두 만족도가 높고, 판매 과정이 물 흐르듯 수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 번째 방문 이유를 가지고 우리 가게에 오시는 고객에게 가장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 이 분들은 보물을 찾는 트레저 헌터(Treasure Hunter)다. 화장품 러버(Lover)이다.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다. 들어올 때부터 눈이 반짝거린다. 새로운 화장품이 있나 차분하고 꼼꼼하게 살핀다. 전에 무심코 지나가며 봤던 화장품도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화장품이 마치 아기라도 되는 것처럼 발라보고 읽어보고 비교해 보고 신중하게 입양 절차를 밟는다. '오늘은 너다. 집에 가자.' 최종 결정을 내릴 때까지 조용한 흥분상태를 유지한다. 평균적으로 20분 이상 가게에 머문다. 그 시간 동안 화장품을 구경하고 테스터를 사용하며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 매 순간이 행복해 보인다. "이거 새로 들어왔네요?" 혹은 "이거 다시 나왔네요?"라며 아주 작은 변화 뒤에 숨은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분도 바로 세 번째 방문 이유를 가진 고객들이다. 이 고객들은 우리 가게에 자주 와서 오래 머문다. 그렇게 단골이 되어 간다.




화장품을 사러 오지만,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우리 가게에 방문하는 고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방문 목적을 이루고 간다. 찾던 특정 브랜드의 '그' 화장품이 우리 가게에 없더라도 그 고객은 '이 가게에는 내가 찾는 그 화장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목적은 달성한다. 모든 고객들에게 "뭐 찾는 거 있으세요?"라고 직접 묻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각자 그 질문을 가지고 우리 가게에 오는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며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꼭 짚어 말할 정확한 '그'게 있을까? 그렇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 내가 원하는 '그'게 뭔지 몰라 이것저것 탐색하며 나에게 꼭 맞는 그것을 찾고 있을까? 내가 찾는 그것으로 인해 찾아올 인생의 변화는 알고 있을까? 어쩔 때는 선명해 보이고 어쩔 때는 도저히 감이 안 잡힐 때도 있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살아가는 매일이, 그리고 찾아가는 그 과정이 좋다. 어디 있는지 몰라 헤매기도 하고, 잘못 골라 후회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보물을 발견해 기뻐하기도 한다. 당시는 버겁고 어려웠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순간이 좋았다. 앞으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실패하기도 하고 작은 성공에 기뻐하기도 할 거다. 그러기에 우리 가게를 온 고객들에게 건넨 말은 나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뭐 찾는 거 있으세요?" 나도, 고객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인생의 의미 있는 '그 무엇'을 찾는 과정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꼭 찾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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