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20대 고객들에게
"아이고, 예뻐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고객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너무 대놓고 예쁘다고 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나이가 드니 푼수가 되어간다. 민망해하는 고객에게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네요."라고 사과 같은 변명을 한다. 고객은 쑥스러워하며 나를 용서해 준다. 이후로 나는 예쁜 고객이 왔을 때 더욱 긴장한다. 제발 주책 떨지 말자! 살짝만 긴장을 놓치면 일은 이미 벌어져있다. 내가 이렇게 참을 수 없이 예뻐하는 고객은 바로 20대 고객들이다. 물론 그들의 팽팽한 피부와 얼굴이 예쁘다. 그런데 진짜 예쁜 것은 그들의 젊음과 가능성이다. 아주 오래전(생각해 보니 정말 오래되었다.) 나도 길을 지날 때 어른들께 예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었다. 지금 내 마음이 그 어른들과 같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고객님들을 응대할 때는 유의할 점이 있다. 바로 그들의 공간과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20대 고객들은 화장품 가게 사장인 나보다 화장품에 대해 더 잘 안다. SNS의 영향으로 유행하는 화장품 브랜드, 활용법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때론 20대 고객들을 통해 화장품 정보를 얻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한글을 못 읽는 외국 고객들의 경우는 질문을 하지만, 한국인 고객들은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고민이 되면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화장품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안부나 날씨, 일정과 같은 평이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만 오간다. 웃긴 상황이지만(화장품 가게에서 화장품 얘기를 못하다니! 현대판 호부호형이 따로 없다.) 이게 20대 고객들을 배려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몇 번 말을 걸어봤다. 몹시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느껴서 그 후로는 먼저 묻지 않는 이상, 화장품 이야기는 안 한다.
그들은 최저가 검색에도 달인들이다. 우리 가게는 오프라인 매장이지만, 아마존(Amazon.com) 보다 싼 집으로 알려져 있다. 신발과 화장품은 직접 써봐야 한다는 나와 동업하고 있는 친구의 철학(?)을 바탕으로 와서 직접 발라보고 바로 사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가게의 특색이다. 체험 후 구매까지 이어지려면 금액이 착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그 기준을 미국의 최대 거물 기업인 아마존으로 정했다. 아마존은 불가능해 보였던 무료배송과 당일배송을 미국 내에서 실현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내가 미국에 왔던 15년 전만 해도 배송료가 무서워서도 온라인 주문을 못하고, 배송이 너무 오래 걸려서도 온라인 주문은 안 했다. 그 사이 강산이 한번 하고도 반이 변해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해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니 가격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엔 오프라인 매장이 조금 비싸더라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살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젠 온라인도 거의 바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체험'과 '가격'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예쁜 고객들이 우리의 전략을 좋게 봐주었다. 20대 고객은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스마트폰부터 켜서 검색을 한다. 눈에 띄게 놀라는 표현을 하는 고객도 있다.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있어요?"라고 칭찬을 해주는 고객도 있다. 우리의 노고를 알아봐 주는 20대 고객이 반갑고 고맙다.
나는 고객들의 마음을 받아 고마움을 묵언으로 갚는다. 20대 고객이 들어오면 딱 한 마디만 한다. "편하게 보세요." 다른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 참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싶어서이다. 이 말로 고객은 자유를 얻는다. 편하게 화장품을 체험하는 고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성능과 기능, 가격을 비교하며 집중하는 고객을 보면 흐뭇해진다. 어쩜 이런 조합을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야무지게 화장품을 골라오는 고객을 보며 속으로 '역시!'라고 감탄한다. 계산을 하며 별 의미 없는 안부를 주고받으며 샘플을 챙겨준다. 좋아하며 "다음에 또 올게요." 말해주는 20대 고객들을 보며 나는 한번 더 결심한다. 다음에도 "편하게 보세요." 한마디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