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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Aug 14. 2023

술의 나라, 금주령을 선언하다.

무거운 일상, 소소한 역사 한 잔

술 없이는 잠 못 이루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고,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의 삶 속에 술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필자 역시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왜 술을 먹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술 생각이 간절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술의 유혹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만 적용되던 것은 아니었는데, 과거에도 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술꾼들은 많았다.  

조선의 대표 애주가는 세종 때의 ‘윤회’로 세종의 신임을 받는 신하였으나 이와는 별개로 술로 인한 문제가 늘 많던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세종이 윤회에게 술을 절제하라고 꾸짖는 내용을 실록에서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다. 

실록에 남아 있는 윤회의 술과 관련된 기록

야사에서는 세종이 윤회에게 하루에 술을 세 잔 이상 마시지 말 것을 엄명했는데, 이에 윤회는 작은 술잔이 아닌 대형 놋그릇에 술을 세 잔 따라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윤회의 술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위의 이야기야 웃고 넘길 수 있던 하나의 야사이지만, 실제 술로 인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생일날, 여러 대신들이 모인 축하연이 베풀어졌고 다들 즐기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후 잔치가 끝나자 거나하게 취한 신하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이때 사고가 터지고 만다. 판문하부사였던 홍영통이 만취상태로 말에 올라 귀가하던 중 낙마하여 죽고 만 것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생일잔치 후 일어난 사망사고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이성계는 신하들에게 대나무로 만든 작은 가마인 요여를 하나씩 하사한다. 술을 마신 뒤 말에 오르지 말고 요여꾼을 불러 요여를 타고 가라는 의미였다. 즉 술을 마시면 절대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당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빈번히 일어났다. 세종의 학문적 스승으로 잘 알려진 이수 역시 만취상태로 말에 올랐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실록에 남아 있는 이수의 술에 관련된 기록

시간이 지날수록 술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지자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는 특단의 대책을 내리게 된다. 바로 금주령을 선언한 것이다. 실제 영조의 재위 기간 52년 중 금주령이 행해진 시기는 도합 40년이 넘었다. 금주령이 선언되자 ‘중국에서 사신들 오면 접대는 어떻게 할것이냐?’,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냐?’등 반발이 많았지만, 영조는 ‘술 대신 감주를 쓰면 되잖아.’라는 명쾌한(?) 해답과 함께 금주령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게 어느정도 였냐면 윤구연이라는 관료의 집에 술 냄새나는 항아리가 발견되자 그를 바로 사형시키는 수준이었다. 당시 ‘술 마시는 걸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증거도 부족한데 사형까지 시켜야 하는가?’라는 만류도 있었지만 영조는 윤구연의 사형집행을 백성들이 많이 오고 가는 남대문 앞에서 행했다. 금주령을 어기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삼기 위함이었다.

그럼 영조는 왜 이리 금주령에 진심이었을까? 조선후기로 오며 흉년이 점점 잦아졌고 생계수단 역시 농업에서 상공업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곧 농업인구가 감소를 가져왔고 농업인구의 감소는 식량부족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쌀로 술을 빚는다는 것은 사치가 아닐 수 없었다. 즉, 영조의 금주령은 생계의 안전에 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영조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주령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금주령이 내려진지 1년 만에 금주를 어겨 섬에 유배된 자가 무려 700명이 넘었다고 하니 단속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단속을 하여 벌을 주더라도 그 효과가 미비했던 것이다. 

결국 실패로 돌아안 금주령

앞에서도 언급했듯 언젠가부터 술은 우리의 삶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강제로 음주를 금지할 수도 억지로 술을 못 먹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본인 스스로의 절제가 중요하다. 술을 금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술이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윤구연처럼 될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홍영통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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