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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여름 Aug 05. 2024

08. 고마운 사람

부모님

남편과 퇴사를 하기로 확정을 짓고 회사에 이야기하는 것보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나는 가장 두려웠다.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누구보다 경제력이 있는 여성이 되길 바랐던 부모님에게 나의 선택으로 경제력을 상실하는 주부가 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고민고민하다가 이제는 정말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내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게 될지도 모를 나의 퇴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일상처럼 흘러가는 저녁이었다. 그날은 아빠가 집에 오셔서 우리 집에서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나 회사 그만두려고."

"........."

"오빠랑은 다 이야기 끝냈어."


그게 다였다. 사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딸이 남편과 상의해서 퇴사를 결정했다는데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유도 묻지 않으셨다. 엄마, 아빠는.

그게 나는 더 미안했다. 


퇴근하면 회사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 웃겼던 일, 화나는 일 재잘재잘 잘 말하던 나였기에 엄마는 나의 말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동안 그럴 기미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왕복 2시간이 넘는 출퇴근으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안개가 끼면 안개가 껴서, 사고가 나면 사고가 나서, 길이 너무 막히면 길이 막혀서 항상 걱정이었던 우리 엄마.

눈이 오면 그날은 어김없이 나를 출퇴근시켜 줬던 우리 아빠.


회사에도 퇴사를 알렸고, 의견을 조율해서 12월까지 마무리를 하기로 결정한 뒤, 주말 어느 날.

엄마랑 통화하면서 이야기했다. 불안하고 궁금하면서도 나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는 엄마를 위해 내가 먼저 이야기해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만 하려고 회사 그만두는 거 아냐.

집에서 할 수 있고, 아이들 케어하면서 할 수 있어."


수입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나도 나로서의 주체적인 무언가를 할 거라는 말에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됐어.

그리고 아무래도 아이들 옆에 엄마가 있는 게 훨씬 좋지!"


남편, 아이들과 함께 차로 이동 중이었는데 엄마의 그 말에 눈물이 날뻔했다.

아빠, 엄마가 나를 이렇게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첫째 딸이지만 첫째 딸답지 않게 모든 걸 엄마 손을 거쳐했던 나.

결혼 전, 부모님과 떨어져 산 건 대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갔을 때가 전부였다.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밥도 안 먹었던 나.


크게 사고친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도 많이 하고, (고3 때는 갑자기 대학을 안 가고 사업을 한다고 하기도 했었다.) 이래저래 자잘 자잘하게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던 나를 이렇게 믿어주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퇴사하는 그 과정에서 많을 걸 얻었다.


내 아이가 나처럼 그렇게 했을 때,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선택을 온전히 믿어줄 수 있을까?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지금으로서는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맙다.

아니, 고맙다는 말로는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는 아빠,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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