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내가 처음 나의 직속 책임자에게 퇴사의 뜻을 밝힌 건 23년 6월이었다.
그는 나에게 이유에 대해 당연하게 물었지만, 나는 정확히 이유를 말해주지 못했다.
정말 말 그대로 정확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쪽에서 10년 차 대리가 회사를 그만두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흔하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내 퇴사의 정확한, 명백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몇몇 직원들은 아직도 육아 때문에 그만둔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다양한 사연이 있었다.
점점 노령화되는 사회에서 면소재지 금융권을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의 집은 백화점이 바로 옆에 있는 도시였지만, 직장은 한걸음 건너면 임대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빈 상가들이 줄지어진 시골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고객이 농업을 주로 했고, 주 고객층의 연령이 해가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그들은 자식에게 부탁하기 미안한 사소한 일까지 우리 직원들을 부렸다.
080, 070이 적힌 쪽지를 가지고 와 물건 주문을 해달라는 일은 아주 어이없지만 흔한 일이었을 정도였다.
그 호의를 권리로 당연하게 생각했고, 직원들이 납작 엎드리길 바랐다.
개인 정보 때문에 사적인 팩스는 안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 하나 못해주냐는 말로 우리를 무력화시켰다.
민원에 자유롭지 않고 고객유치보다는 기존의 고객을 뺏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던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모든 부당하고 하면 안 되는 일에 버젓이 노출되었다.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퇴사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그러면서 사람이 싫어졌다.
매일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특성상 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에 더불어 영업까지 해야 했지만 나는 그것이 힘들었다. 내향적이고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내가 선택하면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였다는 것을 직장인 10년 차 때 깨달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달라고 고집부리거나, 다른 사람과 차별해 대우해 주길 바라고, 조금의 이익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직원을 닦달하고, 불쾌한 일이 있으면 대놓고 막말(대부분 욕)을 서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는 사람이 정말 싫어졌다.
그것을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한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직장인이 회사를 다니며 100퍼센트 만족하고 다니는 사람이 없겠지만, 사직서를 내는 용기란 참 쉽지 않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 과정을 거쳐 회사를 그만뒀는지 여전히 신기하다.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나의 퇴사 때문에 회사에서는 작은 동요가 일었다.
같이 일했던 직원들과 책임자분들의 전화와 메시지가 이어졌고, 그 사람들 중에는 나의 퇴사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반대했다.
책임자는 점심을 사주며 나를 회유를 했고, 팀을 옮겨주겠다는 말까지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그럴 거였으면 퇴사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때는 나의 뜻이 확고했기에 나는 그들과 조율해 바쁜 연말인 12월까지 일을 하기로 했지 퇴사의 뜻을 굽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