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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Apr 25. 2023

룸메이트를 구하려는 자, 룰의 무게를 견뎌라

두 번째 하우스메이트와의 만남

아윤이 떠나고, 나는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혼자 살 것인가 VS 누군가와 함께 살 것인가. 서울 집값이 여전히 부담스러웠기에 후자를 택하고 나와 같은 동반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던 친구, 지유가 홍대에 살고 있으며 그녀 역시 곧 이사 시기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네 같이 살다가 싸우면, 중학교 친구 1도 없어"  

"나도 지유랑 싸우면 친구 없어"


중학생 때는 6명으로 몰려다녔지만 흐르는 세월과 함께 발생한 이탈자로 인해 4명으로 줄어버린 '우정팸'으로 묶여있던(?) 나와 지유는 나머지 두 친구의 걱정을 뒤로 한채 함께 사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어떤 집을 구해야 할까?"


집을 구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지만, 자취 경험이 훨씬 적었던 그때는 집 보는 눈이 아예 없었다. 낮았냐고요? 아니요 없었어요. 볼 줄 몰랐나요? 아니요 그냥 없었어요. 덕분에 우리는 지어진지 꽤 된 빨간 벽돌 2층 집을 단순히 방이 두 개가 있다는 이유로, 세탁기와 냉장고가 옵션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선택하였고, 달마다 70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월세로 서울 살이를 연명하게 되었다. 이 집을 이후로 다시는 빨간 벽돌집에서! 월세인 집에서는! 살지 않게 되었다.




이사 전, 우리에게는 복병이 두 가지 있었는데 바로 이사 날짜였다. 아윤과 함께 살던 집의 계약만료일이 지유 집 만료일 보다 2-3주가량 빨랐고, 때문에 나는 지유의 원룸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윤과 살던 원룸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였지만 좁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다니던 회사가 매우 바빴기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 있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 복병은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일본 출장 가는 나에게 일본 과자 주고 간 지유의 흔적


두 번째 복병은 이삿날, '출장'으로 인해 '일본'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일본 출장은 진즉에 잡혀있던 것이었지만, 이사 날짜를 조정할 수 없었기에 결국 지유 혼자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에게는 가구라고 할 것이 행거 밖에 없었기에 봄-여름옷, 이불로만 이루어진 나의 짐들을 지유에게 부탁하고 훌쩍 출장을 떠나버렸다.

이사 후 주문한 첫 화장대 (아직도 쓰고 있음)




사실 우리와 같은 이성의 감정이 1도 없는 친구, 하우스메이트, 동거 2인이 함께 살기에는 대한민국 투룸의 구조는 적합하지 않다. 투룸은 대부분 안방과 옷방으로 사용하는 방 크기가 약 2배 이상 차이가 났고 우리의 보금자리 또한 그러하였다. 


"누가 큰방을 사용할래? 나는 상관없어!" 


큰방과 작은방의 장단점은 확실했다. 큰방은 공간이 넓다는 것 하지만 온수 조절 버튼이 그 방에 있기에 문을 열고 지내야 한다는 점이었고, 작은방은 잠그지 못하는 문으로 모두가 생각하는 평범한 방문이 아닌 사람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이는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미닫이 문이라는 것과 방이 좁다는 것이었다. (오. 이렇게 보니 작은방의 장점은 1도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질문의 답은 간단했다. 나에 비해 맥시멀리스트였던 지유는 침대, 소파, 티비, 옷장 등등 갖고 있는 가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작은 방에서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2년 뒤, 다음 집을 기약하며 지유가 큰 방을 내가 작은 방에서 지내는 것으로 원만하게 합의를 보았다.       


지난 원룸보다 더욱 아늑해진 크기를 자랑했던 방이었지만, 문으로 내 공간을 분리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장점이었다. 사실 이 집은 바로 위층에 거주하는 집주인인 할머니의 손녀가 살았던 집으로, 내가 지내게 된 방은 '옷방'으로만 사용되었고 때문에 미닫이 문으로 제작했다 하였다. 때문에 언젠가 돌아올 손녀를 위해(공부를 '잘' 해서 미국인가 유럽 어딘가로 공부하러 갔다는 tmi까지 방출해 주셨다) 방문을 고칠 계획이 없다는 집주인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나는 흐릿한 유리문에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포스터를 붙이고 살았다. 단점만 가득할 것 같은 그 작은 공간 덕분에 나는 타고난 집순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일주일은 거뜬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룸메이트의 경험이 있던 나는 그녀에게 규칙을 새울 것을 제안하였고 지유 또한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집을 찾아 헤매던 수많은 날들 중 하루, 우리는 홍대 한 카페에서 규칙들을 세웠고 그 룰은 이러하였다. 

당시에 작성했던 한글 파일


우리는 규칙서를 뿌듯하게 생각했고 냉장고에도 붙여두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룸메이트와 규칙을 세우려고 하거든, '수시로'-'한 달에 한 번씩 담당변경'과 같은 막연한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구체적으로 적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달력에 표시까지 해놓는 게 좋을지도. 여름이면 땀으로 인해 세탁물이 빠르게 늘어났고, 배가 부르면 설거지는 내일로 미루고 싶어지는 인생의 섭리에 따라(?) 우리는 함께 살기 시작한 지 한 달쯤이 되었을 때, 패기 넘치게 작성해 두었던 규칙서를 고이 접어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좋게 말해 수더분하고, 어찌 보면 무심한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다. '함께'라는 것이 8년 넘게 이어질 상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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