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막을 수 있어도 불안은 막을 수 없다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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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는 막을 수 있어도 불안은 막을 수 없다



이번 겨울에는 혹한이 한달 내내 이어지고 있지만, 12월에 새로 장만한 패딩 덕에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옷을 껴입고 보일러를 켠다. 추위라는 외부의 자극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은 다르다. 아무리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가도 불안은 어느샌가 영혼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불안을 아예 안 느끼며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안의 파도를 멈추려 애쓰는 대신, 내가 잡을 수 있는 '키(Key)'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이것이 바로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우리를 깊은 불안의 늪으로 빠뜨리는 주범은 대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다음 것들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셈이다.

타인의 마음과 시선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행동을 오해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부질없다. 타인의 생각은 그들의 영역이며,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어난 과거도 그렇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미래로 향해야 할 에너지를 과거에 묶어둔다. 과거는 수정 불가능한 박제된 데이터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미래의 결과는 내 영역이 아니다.

열심히 준비할 수는 있지만, 최종적인 합격 여부나 투자의 대박 여부는 세상의 변화와 타이밍 등 무수한 변수가 작용한다. 최근에는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아닌 AI로 업무가 대체되는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불안의 소음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시선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돌리는 것이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불안은 비로소 구체적인 '과제'가 된다.

나의 루틴과 행동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날지, 오늘 어떤 음식을 먹을지, 누구에게 친절한 말을 건넬지는 온전히 나의 결정이다.

준비의 과정도 그렇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오늘 1시간 동안 자료를 검토하거나 운동장을 세 바퀴 도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느 정도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비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비 오는 창밖을 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길지, 투덜거릴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불안의 신비로운 법칙 중 하나는 '통제 가능한 영역의 영토를 넓히면,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 주는 위협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 시대에 내가 일자리를 잃게 될까 불안해하기보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면 AI 시대로의 변화가 덜 불안할 것이다.

또 노후 건강이 걱정되어 불안하다면, 오늘 당장 스쿼트 30개를 하고 설탕이 든 음료를 끊는 것을 실천하며, 몸을 움직이고 계획을 실천하는 순간, 뇌는 "내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라는 효능감을 느끼게 된다. 이 효능감은 막연한 미래의 공포를 밀어내는 가장 강력한 천연 항불안제다.

"불안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을 때 가장 거대해지고,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장 작아진다."

내가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추위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추위가 오면 옷을 입듯, 불안이 오면 우리는 '행동'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두툼한 겨울옷을 준비하고, 난방용품도 준비해 놓은 사람은 추위가 오는 것 자체를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통제권이라는 무기를 들고 불확실성의 바다 건너는 지혜가 필요하다.

막연한 공포를 구체적인 체크 리스트로 바꾸는 순간, 이미 내 안에 불안은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계획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 불안을 가져오는 통제 불가능한 것이 내 마음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불안을 이기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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