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러-우 사태에 직면한 글로벌 기업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주 일요일 발행한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417061919d91410/99
* 이 글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긴장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일부 추가된 내용도 있습니다.
오늘은 R 정부와의 중요한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 평상시에는 정부와의 미팅 기회가 드물어, 정부 고위 관료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렇게 정부 고위직인 장관과 차관을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크고 중요함을 의미한다. 더욱이, 정부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대통령 특별법 아래에서, 이번 미팅은 분명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미팅이 상호 호혜적인 관계에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일원으로서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기업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 베풀기보다는 요구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베푸는 것은 비정상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따라서 평상시에 이해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전시 상황에서 정부와의 미팅 요청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정부와 기업 관계는 공통의 관심사를 제외하고는 우호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특히 외국 기업이 전시 상태에 있는 국가에서 정부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질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건 기업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겠지.
모스크바의 중심, 모스크바 시티, 그중에서도 중심 빌딩에 위치한 정부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정부가 초대한 미팅이라 할지라도, 사전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제출하고, 최종적으로 출입 승인을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다음 단계는 건물 입구 보안검색대에서 제출한 서류를 다시 확인하고 출입 승인 장부와 대조한 후, 인솔자와 함께 미팅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엄격한 과정들은 정부 건물에 들어가는 외부인들에게 시작부터 위축감을 주거나, 출입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회사를 대표하여 나와 대외협력팀장, 지원팀장, 통역인력 등 4명은 인솔자가 안내한 미팅룸에 자리를 잡았다. 대개의 경우 손님에게 커피나 차, 또는 물을 권하는 것이 예의이나, 1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미팅룸에 출입하지 않았고, 음료도 제공되지 않았다. 대외협력팀장에게 차관 비서에게 전화해 왜 안 오는지 상황을 파악해 보라고 했다. 차관 비서 맥심(Maxim)은 장관과의 미팅이 늦어져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들은 분명 우리의 기를 꺾고 긴장감을 높여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였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시선에서도 긴장감이 여전했다. 영화를 많이 본 탓인지 미팅룸 안에 녹화 카메라가 있는지 나와 동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기 시작했고, 회의 테이블 밑에 녹음기가 있는지 고개를 숙여 쳐다보고 사각진 곳은 손으로 더듬어 살폈다. 카메라도 녹음장치도 찾지 못했지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었다. 침묵 속에서 기다림이 길어졌지만, 서로를 쳐다보고 지은 동료들의 멋쩍은 미소는 우리 마음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기다림 속에서도, 짧은 미소가 주는 위안은 컸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난 후에 산자부 차관 드미트리(Dmitry, 애칭으로 디마(Dima))와 비서 맥심이 들어왔다. 드미트리는 러시아 전형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짧은 목, 사각형 얼굴, 진한 눈썹, 날카로운 눈매, 선이 굵은 얼굴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양복 아래 숨겨진 몸은 운동으로 단련된 듯 매우 단단해 보였고, 악수할 때 내민 손은 굵고 악력이 강했다. 미리 제공된 약력 정보로 파악한 나이는 1976년생으로 나보다 훨씬 어렸지만, 얼굴은 50대 후반처럼 보였다. 러시아 남자들이 빨리 늙고 나이 들어 보인다는 통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 우리 측 참석자들을 소개했다. 그는 각 소개를 유심히 들었고, 밝은 눈인사로 통성명을 대신했다. 순간, 기다리며 느꼈던 긴장과 딱딱함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전형적인 방식으로 긴장을 유도하고, 그들의 차가운 분위기 연출에 우리가 스스로 움츠러든 것이었다. 차관의 첫인상에서 느껴진 거친 느낌과 달리, 통성명 시간 동안 보여준 행동에는 매너와 진중함이 있었다. 이제 본격 협의에서 R 정부 관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 간디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진정한 강함은 친절함에서 나온다."
차관은 소개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고, 그는 영어를 할 줄 알지만 R 언어로 대화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돌아서 가는 방법은 성격에 맞지 않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
정부의 대변인 격으로 미팅을 주도하는 차관의 입에서 나오는 문장은 신문에서 듣던 거칠고 단호한 내용이 아니었다. 정부의 결정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원하는 내용을 기한 내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었다. 협의를 통해 최선의 안을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당초 예상한 시나리오는, 디마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의 결정 사항을 요구할 것이고, 원하는 답이 아니면 일주일 기한 내에 최종 결정 사항을 문서로 제출하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나리오에 맞추어 답을 준비했던 것이다.
나는 디마의 우호적인 태도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우리가 준비한 안을(보안 내용이라 이 지면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함에 대해 깊은 양해를 구하며) 차분히, 또박또박 설명했다. 디마는 제안에 대해 일체의 제동 없이 유심히 듣고, 그 자리에서 내 제안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협의체에는 우리의 안을 자신이 설명하여 설득하겠다고 했고, 내 제안을 신뢰하니 약속한 기한 내에 필히 진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역시 신뢰는 모든 관계의 기초이다.
서로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첫인상을 통해, 오가는 대화내용을 통해, 경청하는 자세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것을 느꼈다. 정치적인 상황에서 불편한 관계는 있지만,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감대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깨달았다. 칼 로저스는 "공감은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한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디마는 비서에게 준비한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우리 고향에서 만든 것입니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우리 고향의 전통이니 좋은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랍니다."
돼지기름 한 병과 말린 과일이 선물용 종이가방에 담겨 건네졌다. 직접 집에서 만든 것이라 했다. 이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정부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준비한 제안도 어쩌면 엉뚱할 수 있었기에 미팅이 부담스러웠다. 미팅이 험악하게 끝나, 정부의 강제적인 통보를 받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진행한 미팅이었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 마음의 선물을 받는 순간, 미팅에 대한 부담으로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들은 우리와는 생각하는 것이 달랐고, 내가 이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음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들었던 R 정부 각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다. 사람의 차이인가, 아니면 우리에 대한, 아니 우리 회사에 대한 우호적인 제스처인가, 아니면 우리가 정부 각료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무엇이 답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디마에 대한 정보도, 정부 각료에 대한 정보도, 미팅 전에 있었던 긴장감도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마와의 미팅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난 민망한 경험이었다.
중요한 교훈을 다시 확인했다. 잘못된 정보와 선입견이 자칫 중요한 결정에서 심각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크게 보고, 다르게 보고, 깊게 보고, 넓게 보는 관점이 없다면 어떤 협의나 협상에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윌리엄 유리는 협상에서의 성공은 공감과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했는데 나는 이미 공감도, 이해도 부족한 상태였기에 협상에서는 디마에게 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들을 자주 맞닥뜨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사례를 떠올리며, 내가 보는 것과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