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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n 23. 2024

전쟁은 예측할 수 없었다!

러-우 사태 직전, 본사에서 질문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칠 것 같습니까?” 그때 나의 대답은 “아닙니다.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더구나 전쟁은 중요한 의사결정이기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할 국회의원들은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해외 출장 중이기에 근간에 일어날 일은 아닙니다.” 다른 분석 내용과 함께 전쟁 가능성이 낮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 지 불과 며칠 뒤에 러-우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에는 사전 징조가 있고, 이번 러-우 사태 전에는 경고도 있었다. 사전 경고는 미리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전쟁발발 시를 대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해두란 의미이다. 사전 경고가 빈말이 될 수도 있지만 실지로 행해졌을 경우, 대비가 없다면 기업활동은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지고, 개인은 심리적, 물질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물론 대비한다고 해도 받게 될 대미지는 크다. 아무리 대비해도 전쟁으로 인한 대미지는 상당할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내가 속한 회사는 러시아에 공장과 판매 법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규모가 작지 않았다. 전쟁을 확신했다면 주재원과 현지 인력 보호에 대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했다. 또한 보유 중인 운전자금, 제품 재고 등도 국외로 이동해야 했고 제품의 경우는 완제품과 부품들이 더 이상 공급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했다. 그러나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준비들을 갖출 수가 없었다.


전쟁은 터졌고, 주재원들과 직원들은 속수무책이었고 아무것도 국외로 이동시키지 못해, 손실을 최소화하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커졌다.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제품재고는 쌓였고, 운전자금은 묶여버렸다.  

 

또한 전쟁 직후 모든 활동에 대해 긴급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판매를 계속하느냐 중단하느냐?’, ‘생산을 계속하느냐 중단하느냐?’,’ 연구활동을 계속하느냐 중단하느냐?’ 큰 규모의 활동이었기에 의사결정에 따라 (외국 브랜드의 철수로 인한) 폭발적인 매출과 이익 혹은 (우리의 활동 중단으로 인한) 저조한 매출과 손실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중대한 의사결정의 결정적 기준은 정무적 리스크였다. 정무적 리스크란 글로벌 브랜드인 우리가 전쟁 상황하에서 러시아 시장에서 평상시와 같이 비즈니스를 지속했을 때 서방세계와 타 시장 소비자들의 반응이 가져오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즉, 인도적 차원에서 러시아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우리의 러시아 사업 지속에 대해 불만이 생겼을 때 그 나라에서의 우리 브랜드 사업이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국가차원에서 우리 사업에 대한 의도적인 제제와 소비자 불매 운동도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러-우 사태에 따른 對 러시아 제재 조치를 주도하는 미국과 EU 시장에서 우리 사업이 받을 타격이 러시아 시장에서의 우리 사업규모 보다 훨씬 큰 상태이기에 이러한 정무적 리스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인도적 차원에서는 이미 러시아 반대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고 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러시아에서 비즈니스를 지속하는 회사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언론과 SNS 상에 노출시켜 압박을 하기 시작했었다.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었다. 러시아 시장을 지키지 위해 타 시장들을 놓칠 수 있는 상황과 서방세계의 보이지 않는 압박의 정무적 리스크를 감안했다. 전격적으로 판매 활동, 생산활동을 중단했다. 큰 규모의 오퍼레이션이 중단되자 직원들, 거래선들이 크게 동요했다. 그리고 공장과 연계된 협력업체들도 큰 혼란에 빠졌다. 공장에 물품을 납품하지 못하면 협력업체들은 그 자리에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와 협력업체, 거래선, 소비자들의 대 혼란에도 불구하고 생산, 판매 활동 중단이라는 의사결정을 한 것이었다.


아마도 상상이 안될 것이다. 이 의사결정이 얼마만큼의 손실과 비용을 초래하는지를, 그리고 미래 사업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결정인지를... 년간 35억 불 규모의 판매 활동이 중단된 것이고 년간 18억 불 규모의 생산 활동이 중단된 것이었다. 매출의 감소는 그렇다 하더라도, 오퍼레이션을 유지하기 위해 월평균 몇천만불의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판매 및 생산 활동을 중단하더라도 (우리의 전략적 결정으로) 인력은 유지해야 했고 기 결정한 거래선 협업 활동은 유지하기로 하였다. 판매는 없이 비용만 발생하니 매월 큰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의사결정을 하였다.


우리 회사가 진출한지 30년이 되었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사업을 영위하고 브랜드를 키웠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도 쉽게 사업철수를 선택할 수 없었다. 30년간 공들였고 키워왔던 브랜드 가치와 스토리를 전쟁이라는 예상밖의 사태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생산, 판매 활동을 중단하였지만 다른 글로벌 회사처럼 완전 철수라는 옵션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판매 중단을 통보하자마자, 거래선들은 제품을 先구매하겠다고 뭉치돈을 들고 왔다. 항해 중인 재고와 우리 창고에 보유 중인 재고는 어떠한 모델이라도 상관없으니 구매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사 제품은 시장에서 프리미엄브랜드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당사 제품이 없다면 거래 선들은 판매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품 및 브랜드 구조를 갖고 있었고 당사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또한 외국 브랜드들의 철수 상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필요한 제품 구매하려 했기에 시장 수요는 단기간에 크게 증가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보유 중인 재고와 항해 중인 재고를 거래선에게 형평성 있게 공급하고 모든 생산 및 판매활동을 중단했다. 활동 중단을 시장에 알리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시장에는 점점, 그러나 빠른 속도로 당사브랜드 제품의 고갈이 시작됐으니 곧 시장에는 제품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임을 정부도 알았기에 강한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정부는 비상상황하에서 대통령이 승인하는 경제 관련, 특별법을 만들었고 러시아에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당사에도 제품 생산, 공급을 재개하라는 내용과 정부청사로 와서 어떻게 할 것인지 플랜을 설명하라는 통보가 왔다.


러시아 정부는 웬만해서는 기업체와 직접접촉을 하지 않는다. 특히 정부 각 부처 장관, 차관을 기업대표가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게 통상의 관행이었다. 비상조치하에서는 더더욱 정부의 권한이 크기에 기업대표와의 미팅은 국장급에서 담당하였다. 그런데 우리 회사와의 미팅은 산업통상부 차관, 정통부 차관이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우리 회사 브랜드의 상징성 때문일까? 아니면 공장 규모와 사업규모 때문일까? 왜 보자고 하는지, 정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향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도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평소 안하던 프로토콜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타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선 강경한 조치를 취한 정부가 이렇게 미팅을 주선한 저의는 무엇일까? 이들은 무슨 요구를 할까? 우리는 정무적 리스트를 감안하여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까? 등등 에정된 미팅과 그 이후에 전개될 상황들에 대한 부담감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정부 협상 내용은 다음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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