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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n 16. 2024

신뢰와 배신: 부정의 충격과 대응

비즈니스 얘기


이태리밀라노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자정에 조금 못 미친 시간, 여전히 나는 밀린 업무에 이 시간까지 메일을 열며 내일 아침 업무에 반영할 메일을 체크중이었다. 하루에 확인해야 할 메일이 200통이 넘는다. 본사로부터의 메일을 시작으로 ~~~


저녁을 먹고 난 10시, '꼭 읽어달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메일의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였고, 밤 깊은 시간에 보내는 메일이니 더욱 궁금증을 유발하였다. 이메일 발신자가 누구인지 먼저 확인하니 내가 잘 아는 인물인, 이벤트를 대행해 주는 에이전시 회사의 대표 ‘파비오’였다. 그는 이태리 사람치고는 말 수가 적고, 매사에 긍정적, 적극적이고 이벤트 운영 수준이 늘 만족스러워 신뢰를 하고 있던 대표였다. 업계에서도 아이디어에 군더더기가 없고, 이벤트를 진행할 때 항상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효율적인 방법으로 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밤 깊은 시간에 개인 친전 메일을 보내온 것이었다.


내용은 우리 회사의 코퍼레이트 마케팅 책임자, 마르코의 부당한 행위를 고발하는 것이었고 나로서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부당한 행위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 결혼기념 여행 경비, 집 뜰 및 거실 리노베이션 경비, 해외 및 지방 휴가 경비, 고급 식당 석식 비용, 선물 구입 비용 등등을 요구

. 지난 1년 6개월 동안 개인적인 요구를 많이 했고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이러한 요구를 들어준 나의 잘못이 크기에 귀사의 이벤트 파트너십을 잃더라도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대개의 경우, 에이전시가 거래 단절의 리스크를 지고 이렇게 투서를 하는 이유는 부정을 저지른 둘 사이이 관계가 심각히 틀어졌기 때문이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결코 아니다)  


이 메일을 여러 번 읽었다. 정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르는건가? 밤늦은 시간이지만 당장 마르코를 호출해서 진위여부를 따지고 싶을 정도로 치미는 충격과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파비오와 마르코 두 사람이 나를 배신한 것이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고 시장에서의 평판과 높은 이벤트 퍼포먼스 수준, 비용의 적정성이 있었기에 작은 의심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신뢰하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다. 사람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대하라. 그러면 그들은 위대함을 보여줄 것이다.” – 에머슨 -  


 “상호 신뢰가 없으면 리더십은 말 자체가 모순이다.” - 워렌 베니스 –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신뢰하고 한번 신뢰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나의 기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인가?’ 배신의 충격은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1년 반 동안 철저하게 나를 속인 직원과 이 요구를 받아준 에이전시 대표에 대한 화는 치밀어 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격한 감정은 나를 주체하지 못했고 배신감은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빨라진 심장 박동 소리는 가슴을 뚫고 나오는 듯했다.


부정과 비리에는 관용이 없다. 회사도 그래야 하고, 회사의 규정을 떠나 나 스스로 부정, 비리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고 부정을 저지른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삶의 원칙이 있었다. 하여, 평상시에도 부정, 비리에 대한 교육과 무관용 원칙에 대해 무척 강조했는데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 내 코앞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무척 중요하였다. 이 사건을 공론화하여 직원들에 오픈하고 재발방지를 단속하는 순간, 회사 밖으로 소문은 퍼져나가 시장에서는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고 다소의 회사 이미지 손실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실을 유발하는 선택이 되더라도 부정, 비리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는 평상시 의지대로 이 사건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모든 부서장들을 불러 모아 투서 메일 내용을 알리고 사실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본격 조사를 하라 일렀다. 그리고 본사에도 사실을 알렸고 본사는 내부 조사 결과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하겠다는 나의 결정을 존중했다.


파비오와는 직접 대면으로 투서 내용을 하나하나 재확인을 하였고, 마르코 집까지 가서 사실 확인을 하였다. 파비오가 밝힌 모든 내용이 사실로 판명이 되었다. 파비오 메일 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믿고 신뢰했던 사람들의 부정 사실 확인 결과는 배신에 대한 분노만 더 키웠다.


사실 확인에 따른 조치는 냉정하게 그리고 머뭇거림 없이 신속하게 진행하였다. 파비오 에이전시와는 거래를 즉시 단절하였고 마르코는 해고하였다. 이 조치는 입소문으로 시장에 퍼져 마르코와 이벤트 에이전시에 심각한 평판 손실을 입혔다. 그리고 당사와 관련된 모든 에이전시 회사 대표 혹은 오너들 약 100여 명을 불러 모았다.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고 부정, 비리에 대한 무관용 원칙과 부정, 비리 발생 시는 영원히 당사와 거래를 할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또한 3년 단위로 에이전시는 공개 입찰 경쟁하여 재선정할 것임도 선언하고 참여한 대표, 오너들의 동의 사인을 받았다.


이벤트, 마케팅, 온라인, 언론, 홍보, HR, 물류 등 당사의 활동에 관련된 에이전시들이 다양했고 각 부분의 매출 규모가 컸기에, 당사와의 거래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키울 수 있는 기회였고 반면에 거래 단절은 큰 타격이었다. 그렇기에 거래 단절을 피하려 당시 직원에게 부정, 비리의 수단을 제공하거나, 당사 직원의 비리 요구를 들어주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부정, 비리의 고리는 단호히 끊어야 했다. 이를 위해, 당사에서 발생했던 부정사건의 세부 내용, 당사의 빠른 의사결정과 조치내용을 지역 언론에 과감하게 노출시켰고 부정, 비리에 대해 당사가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렸다. 다소의 이미지 손상이 있었지만, 당사가 지향하는 바를 시장이 명확히 알 수 있게 하였다.  



비리와 부정은 욕심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 끝이 없다는 표현이 항상 같이 붙는 욕심,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조 단위 재산을 가진 사람도 수백억 욕심에 횡령을 하고, 돈이 넘치는 재벌가도 돈 때문에 형제들이 싸우다 가족이 원수가 된다. 회사에서 돈을 충분히 받아도 이처럼 돈의 유혹에 빠진다. 왜 돈을 추구하고 욕심이 앞설까? 돈을 위해 갑질을 하고, 남을 누르고, 비리와 부정을 일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일까? 혹은 나약함 때문일까?


비리. 이치가 아닌 것. 이치가 아닌 역행을 선호하는 자는 분명 조직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혜안이 부족하다면, 그 역행선호자에 의해 전체가 해를 입는다. 조직의 비리를 들어내고 정의에 가까이 가기 위해 경영자는 본인이 검증한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 신뢰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 대해 더 세밀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안다는 것과 신뢰하는 것에 대해선 더 신중해야 한다.


부정, 비리는 내 코밑에서, 신뢰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고, 아무리 예방교육을 해도 부정, 비리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으며 그 순간부터 부정, 비리의 전염성은 강해진다. 범죄의 시작 길목을 차단하듯이 부정, 비리 처벌에 대한 단호함을 공론화시켜 시도를 못하게 하거나, 부정과 비리 발생 시에는 조금의 주저함 없이 대상자들에 대한 조치를 신속하게 하고 시장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해야 주변으로의 오염을 막는다. 조직에서의 부정과 비리는 신체에서의 암과 같으니 조기발견과 조기제거가 필요하다. 조기 발견을 위해 비용을 많이 집행하는 부서의 정기적인 점검과 부서장의 교환 근무, 2인자 육성을 통한 건전한 견제 등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암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시 건강하고 투명한 조직철학과 조직문화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 에머슨


‘욕심이 작으면 작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이 말은 낡았지만 결코 모든 사람이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는 진리이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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