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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Dec 24. 2023

유대인은 멋진 사업파트너
: 5년의 틈 ! 한번의 식사

- 인간 관계 by Armenia

사업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된다. 사람을 통해 일과 돈이 오가니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신뢰는 금과 같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아주 중요한 거래선임에도 불구하고 5년간 불편했던 관계가 있었는데 23년 10월 중순 단 한 번의 식사, 이 날의 특별한 경험은 관계의 늪에서 날 빠져나오게 한 날이었다. 



사업 때문에 아르메니아 유대인 거래선의 집에 갔었다. 이 집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대문을 통과해 차로 한참을 들어가 현관에 도착하는 대저택이었다. 5년 전, 우리 사업으로는 비중이 제일 컸던 DCS라는 거래선이 초대한 저녁 식사였는데... 5년간 나는 이 거래선과 아주 불편한 관계에 서 있었다. 


당시 함께 식사 후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위스키 바 사진이 연말에 본사로 투서가 들어가면서 날 곤경에 빠뜨린 것이다. 난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당시 회사의 수장인 나는 아르메니아 시장 사업을 이 거래선에 너무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에 비중을 줄여 3개의 거래선 구조로 균형을 잡아가고자 했었다. 그러자 DCS는 사업규모 조정을 용납하지 못했고 악의적인 투서를 통해 본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처사로 날 곤란에 빠뜨린 것이다. 


항상 문제는 현상을 기다렸다는 듯이 드러난다. 본사에 투서를 넣은, 어쩌면 단순한 현상으로 인해 나에게는 무서운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어쩌면 신뢰가 그만큼 약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 사건을 계기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사업 관행에 대해 나는 '이들은 손해 보는 상황이 생길 경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기득권을 챙기는 것을 우선시한다'라고 인식해 버렸다. 또한 ‘미래는 불투명하기에 멀리 보고 사업확장성을 키우거나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기득권유지를 위해 상도덕도 어기는 마인드를 가졌다'라고 판단했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 비즈니스 프로세스[1]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환경이라 평가한 것이다. 그 결과, 이 거래선과의 사업규모를 과감히 축소시켜 버렸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 이후 이 거래선은 약 3년간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3년간의 어려운 사업적 난관, 그리고 그렇게 다시 2년을 보낸 후 우리는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은 것이니 얼마나 이 식사자리가 어색했겠는가. 


“어서 오세요, 다니엘. 참 오랜만입니다.”


평범한 인사말 뒤로 70세 중반의 강한 포스를 풍기시는 거래선 오너_Arman의 어머니, 50대 초반의 아내와 누이, 그리고 2명의 아들이 환대를 해주었다. 대 저택에서 같이 사는 대 가족의 핵심 멤버들인 듯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대가족을 이끈 여장부의 기개가 느껴졌다. 잠시의 어색함에서 우리는 서로 과거 기억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서로는 짧은 순간에 인지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5년의 시간 동안 절치부심 노력한 것이 있기에 감정보다 이성이 개입하여 어색함을 돌리고 밝은 모습으로 감정을 다시 돌리려 애썼다. 

우리는 '오랜만입니다.'라고 습관처럼 말을 하지만 이 날의 '오랜만입니다'에 나는 한 번의 어긋남이 얼마나 오랜 회복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명심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건넸다. 내 속내를 알아차린 듯, Arman 어머니는 저녁 내내 감사의 표현을 계속했다. 5년 전 사건을 지우고 싶은 듯,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손님에게는 과할 정도로 음식을 권하는 게 풍습이고 마음의 표현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그리곤 석식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벨루가 보드카 병은 빠른 속도로 비워지고 있었다. 


“다니엘, 그때 사업의 규모를 줄이려 했을 때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다니엘 입장에서는 여러 거래선들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나는 내 사업이 축소되는 것만 생각했었다.”


당장 손해 보는 것을 수용하지 못해 선택한 투서 사건에 대해 자신도 받은 교훈이 크다고 했다. 글로벌 회사와는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지, 작은 시장에서 통용되었던 오래된 관습의 사업 관행을 어떻게 진화시켜야 할지를 절실히 깨달았다면서 말이다. 약간의 취기가 돌자, Arman은 지난 5년간의 얘기를 풀기 시작했고 그는 식사할 때의 가벼운 표정과는 달리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마디 한마디에 진중한 무게를 담아 자신의 솔직함을 표현했다.


“3년간 어려움을 겪었지만 절치부심하여 다시 일어섰다. 대대로 이어온 사업에 대한 자부심과 탄력적 수용성, 자신감이 있었기에 어려운 상황도 극복이 가능하였다”


Arman의 얘기에 가족들은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지지한다고 표정으로 화답을 했다. 나와 함께 초대된 DSC 실무 사장인 다비드(davit)도 그의 진지한 눈빛과 저음의 뚜렷한 목소리의 무게에 눌린 듯했다. 이들이 결코 우리와의 사업을 가볍게 또는 적당히 하려는 것이 아님이 확연이 느껴졌다.




5년간의 거리가 단 한 번의 식사로 좁혀졌다. 어쩌면 우리의 관계라는 것이 사업이라는 연줄로 이어져 있다지만 그의 사업수완이나 우리를 대하는 것이 크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 눈빛, 우리를 대하는 손짓. 이 작은 변화들이 '신뢰'에 묻어나면서 관계는 갑자기 급반전의 물살을 타게 된다. 5년. 고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대학교 졸업을 하게 되는 긴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도대체 무엇이 Arman을 변화시킨 것일까. 당시 원망과 분노에 차 있던 그가 어떻게 지금 이리도 신뢰의 옷을 단단히 입고 우리 앞에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변화 못지않게 나 역시 이번 만남으로 나의 편견과 선입견은 크게 박살 났다. 역시 절대 키우면 안 되는 개 2마리가 편견과 선입견이라더니 나에게 Arman 거래선이 그랬다. 5년 전 사례를 보편화시킨 탓에 부정적으로 입력된 선입견이 닻을 내렸다. 작은 나라, 소득이 낮은 나라, 크기가 작은 시장이라는 규모에 한정된 지배 우위적 인지가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커다란 정신, 문화, 역사를 보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이다. 아무튼 부분을 전체로 해석하고, 글로벌을 내세웠지만 결코 깊게도 멀리도 보지 못했던 협소한 인식으로 그들을 판단해 버린 오류를 이번 만남으로 지워냈다. 

3-4시간 남짓한 5년 만의 식사, 서로 주고받은 진솔한 대화. 그도 나도. 사업얘기가 아닌 자신의 과오에 대해 솔직했고 상대의 진심을 들으려 진지했던 것 말고 우리는 사업적인 이해관계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 단 한 번의 식사가 어떻게 사업파트너로서 다시 신뢰로운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의 사업적 사고를 확장시켰는지, 항상 사업은, 그 관계에서 만나는 이들은 나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긴다.

        


[1] 중장기를 바탕으로 상호 신뢰, 상호 win-win을 위한 Business Norm



==> 단 한 번의 식사로 어떻게 다시 사업을 이어나가고 확장시켰는지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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