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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Dec 21. 2023

난생처음 쿠데타!
가장, 기업의 수장인 나의 판단은?

기업가 정신 by 터키

 매거진에 나오는 글들은 재미긴장도현실감을 돕기 위한 내용표현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외 각 국가에는 한국 정부를 대신하는 대사관, 영사관과 기업에서 운영하는 법인이 있다. 정부와 기관, 정부공무원과 기업인. 이 둘은 그 기능이 다르고 조직구성원 간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 나눠져 있는데 지금 우리 모두가 맞닥뜨린 쿠데타 상황에서 어떻게 기능을 해야 할까? 어떻게 역할을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어느 정도의 상호연합이 최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당시 쿠데타 발생 직후, 공황이 폐쇄되어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기를 탑승할 예정이었던 승객 500여 명이 당시 공항 건물 내에 갇혀 있었다. 


“다니엘, 공항에 있는 한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는 공항으로 갑니다. 지원이 가능할까요? ” 


평소 친분이 있었던 행정 영사가 다급하게 전화를 해 도움을 청했다. 발이 묶인 이들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업무는 영사관에 있었지만 인력이 제한적이라 공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족과 회사직원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던 가장이자 기업의 수장인 나였지만 답을 미룰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저희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사실 군인들이 점거하고 있는 공항에서는 일반인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인 것을 알았지만 주저할 수 없었다. 아니, 주저해서는 안되었다. 직무의식이 투철한 행정영사와 함께 작은 팀을 꾸려 현장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설명도, 영문도 모른 채 묶여 있던 한국인들은 몹시 두려움에 빠져 있었고 이들에게 쿠데타 발생 상황을 알렸을 때는 패닉 상태에 빠지는 듯했다. 이들도 쿠데타라는 상황을 처음 맞닥뜨리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국 정부와 기업에서 지원하는 모습에 곧이어 안정을 찾는 듯했고 차분히, 일사불란하게 상황 대처에 따라주었다. 


해외에서 예상밖의 긴박한 상황에 처해졌을 때 기업가에게는 개인과 기업인을 너머 더 커다란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기업입장에서도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지만 그보다도 정부 못지않게 자원과 리소스를 가진 기업이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신뢰와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에도 공항에 있던 자국민들은 자국기업의 사람이라는 이유로도 협조에 잘 따라주었다. 




가끔 나는,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니 어쩌면 뿜어지고야 마는 어떤 힘에 놀라곤 한다. 평소의 나라면 가족과 직원들 걱정에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이 나더라도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굴의 의지나 투철한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의지가 아니더라도 어떤 힘에 의해 사람은 자신을 확장시키는 듯하다. 당시 내가 경험한 나는 그랬다. 지극히 감각적인 힘이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당시를 떠올려도 온전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사업가라면 자기도 모르는 야성에 따라 자신을 몰아붙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앞의 성공과 책임을 위해 온몸을 불살라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기업가로서의 이성적 의지가 아니었다.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공동체의식, 기업가로서 지녀야 할 사회적인 책임, 인간으로서 응당 지녀야 하는 종족에 대한 동물적 본능과 같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인간이 아무리 현명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두뇌보다도 훨씬 더 현명한 무엇인가가 깃들어 있다. 즉, 우리는 생애에 있어서의 커다란 움직임, 즉 주요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무엇이 옳은가 하는 확실한 인식에 따라서 행동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본질적인 성격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내면적인 충동과 본능에 따라서 행동한다 [주 1].'


당시에는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알게 되었다. 개념으로 알고 있는 인식과 본능적인 행동가운데 무엇이 더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기업가로서의 책임은 기업의 이윤창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사업하는 기업의 수장으로서의 책임은 현지에서의 매출을 키우고 이윤을 창출하는 장사꾼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업 또한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Shared Value 창출을 위해 역할을 담당하고 사회에 공헌, 기여하는 의사결정과 실행을 해야 한다. 더욱이 쿠데타와 같은 긴박함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기업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 누구가 부여한 것도, 어떠한 규범에 의존한 것도 아닌, 암묵적인 자기 의지에 따른다. 그래서 이때가 어쩌면 개인으로서, 조직으로서 자신의 리더십과 책임의식을 위한 최고의 시험대일지도 모른다. 


제품 판매를 위해 파견된 터키에서 경험하게 된 쿠데타는 나에게 기업가 정신, 역할을 깊이 재고하게 했다. 이는 개인적으로 '나' 한 사람의 영향력에 대해 한층 더 성숙할 기회를 부여한 중요한 동력이었다. 쿠데타 발생 시점부터 가장으로서, 기업가로서 필요한 상황판단을 내려야 했고 해야 할 역할을 망설임 없이 수행해야 했다. 또한 쿠데타 이후의 후유증이 사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를 짜야했으며 각 시나리오별 준비된 전략을 시행하며 기업에도 무리수를 두면 안 되었다. 


모든 판단은 신속하면서도 전체의 균형을 위해 내려져야 했기에 이는 수많은 경험으로 축적된 사업가의 기질과 이를 초월한 본능적인 감각에 나를 의존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민감성'은 사업가의 기업가정신에 필수요건이었음을 나는 이 무지막지한 상황에서 경험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근무했던 터키에서는 이 외에도 독특한 경험을 많이 했다. 부임하자마자 터진 술탄 아흐메트 광장 테러 사건을 시작으로 지진까지도 겪었다. 이러한 어려운 사업 환경은 기업가로서의 내공을 더 탄탄히 할 수 있는 도전터였다. 기업인의 역할, 책임과 아울러 기업가 정신에 대한 여러 각도의 고찰도 할 수 있었다. 자연히 삶의 깊이도 더해졌다. 이러한 전력 때문인지 나에게는 터키와 같은 어려운 시장에서 사업 성과를 만들어 내는 성공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덕분에 2021년 1월 근무지를 터키에서 러시아로 옮기면서 러시아 연방 지역 책임자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쿠데타가 내 인생에서 가장 험한 경험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세상은 쿠데타경험으로 나를 키웠고 키워진 나에게는 더 커다란 위기 속에서 사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나를 데려갔다. 내 인생이 기구한 것인지 기구한 사태들이 날 필요로 하는 것인지... 러시아에 파견되자마자 내 앞에 닥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 초유의 사태에 나는 또 어떻게 사업을 성공시켜야 할까?



[1]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인생론, 2010, 나래북



==> 제노아의 브런치 북 “35년 해외 비즈니스 성공 스토리”에서 또 다른 주제로 곧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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