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매거진에 나오는 글들은 재미, 긴장도, 현실감을 돕기 위한 내용, 표현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
“다니엘! 큰일 났습니다! 보스포루스 2 대교를 군인들이 막아버렸어요!”
“뭐? 무슨 일인데?”
바리시(Baris)의 목소리는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흥분했고 다급했다. 덩달아 내 목소리도 급해져 재차 물었다. 순간 큰일이 터진 것만은 분명하게 느껴졌으니까.
“천천히 말해봐! 바리시! 무슨 일이야?”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총성이다! 이건 분명히 총소리다!
2016년 7월 15일 저녁 8시 30분 무렵, 나는 이 순간을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쿠데타였다!
쿠데타라면 나에겐 아주 낯설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한국의 5.16 혁명 얘기와 함께 들었던 게 처음이었고 아프리카, 동남아 등의 성장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사태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 인생에서 쿠데타를 경험해 본 이가 얼마나 될까? 내 주변엔 없다. 평범한 삶을 살던 나에게 사단이 난 것이다. 쿠데타라니! 그것도 나의 사업터에서 말이다!
당시 언덕 위 집에서 내려본 보스포루스 2교 위는 탱크와 총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에 진을 친 군인들. 그리고 보다 잦아지는 총성. 나는 급해졌고 일단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했다.
거실에서 분재들에 물을 주고 있는 아내를 다급하게 불렀다.
“여보! 여보!”
“잠깐만!” 늘 그렇듯 아내는 자기 일에 열중이다.
나는 아내에게 달려가 양쪽 어깨를 잡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단호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지금 이 소리 들리지? 총소리야. 쿠데타가 난 거야. 당분간 아이와 한국에 가 있는 게 좋겠어. 내일 한국 갈 방법을 찾아볼게”
그리고 아이를 불러 지금 상황을 간단히 설명한 후 짐을 싸라고 일렀다. 아직 이해가 부족한 아이는 겁부터 지레 먹고는 '우리 집에도 총 들고 군인들이 오는 거야?'라며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겁먹은 표정에서 나는 비장한 책임감을 순간 느꼈다. 모든 상황은 바리시의 전화 이후 아주 짧은 시간 벌어진 일이지만 나의 책임감과 비장한 심정은 살면서 극도의 고지까지 치고 올라가 있음을 느꼈다. 내가 정신을 놓아 겁을 먹으면 내 가족에게 위험이 닥친다. 인간의 한계란 무한하다니 말짱 거짓말 같았고 그 순간 나는 신을 찾았다.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고.
21시 42분경, 첫 총성 1시간 경과시점부터 모든 방송사는 군부 쿠데타 내용을 뉴스로 송출했다. 쿠데타 군과 경찰 간 무력 충돌과 교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SNS에서는 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인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쿠데타 군과 대치하는 사진들과 동영상이 돌아다녔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은 우리 가족들의 긴장을 한층 높였다.
터키에서 근무하며 쿠데타를 경험한 것은 인생에서, 삶에서 전혀 예측이 불가했던 충격이었다.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 못할 혼란이었다. 쿠데타가 실지로 발생가능하다는 팩트에 현타가 왔고 그 행위의 살벌함에 동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동요되었다. 그리고 여러 생각들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왜 이 시점에 여기에 있는 거지?
이 상황에서 해야 할 일들이 뭐지?
계속되는 총소리, 헬기 소리와 쏟아지는 쿠데타 얘기에 아내와 아이가 받은 충격도 상당한 모양이었다. 가장으로서 혼돈의 국가에 가족을 데리고 왔다는 미안한 마음이 갑자기, 크게 밀려왔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인데.. 아이가 나중에 이 경험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의 놀란 가슴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걱정이 엄습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의 불부터 꺼야 했다.
“여보, 내일 한국으로 피신하는 것에 대해 아이와 얘기했어. 그리고 우린 당신과 같이 있기로 결정했어”
아내의 모습에는 어느새 의연함과 평정심이 보였다.
“나도 못해 본 경험이라..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겠어. 내겐 당신과 아이의 안전이 우선이야.”
아내와 아이의 마음을 알지만 가족의 안전이란 느낌이 더 또렷이 와닿았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회사의 수장으로서 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지체 없이 회사 비상연락망으로 연락된 임직원들이 온라인화상으로 다 모였다. 다들 서로 간의 안부부터 급하게 나눈 후 회의가 시작됐다.
“우선, 직원들과 가족들은 안전한지 서둘러 확인해 주세요. 지금은 여러분들과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화상에 등장한 주재원과 리더들의 모습에 당황, 혼란, 긴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곧 직원들과 가족들은 안전함을 확인하였고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당분간 외출을 자제하도록 당부했다. 직원들도 당분간 출근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있는 주재원, 리더들에게는 영사관, 대사관과의 연락을 지속하여 도와야 할 일들을 협의토록 했다.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분명 교민들, 여행 중인 한국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긴박한 순간에, 기업의 수장으로서의 균형 있는 생각, 판단과 실행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의식이 솟구쳤다.
가족과 회사,
회사와 회사직원들,
직원과 직원가족들까지.
나는 모든 것에서 책임을 가지고 이 사태를 안전하게 치러낼 수 있을까?
혼잡하고 난잡하기까지 했던 순간의 내 정신이 하나하나의 현실직시에서 날카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 소중한 가족을 비롯한 회사, 직원과 직원가족, 나아가 한국교민들까지 쿠데타에서도 안전했고 또 이를 통해 제가 얻은 경험, 성과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번 글 부터는 브런치북으로 이동하여 연재하겠습니다. 지속 따뜻한 관심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