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II - 8 편
저의 해외 비즈니스 이야기는 브런치 작가 지담과의 공저로 출간을 준비 중입니다. 지담은 브런치 작가이자 교수이며, 5년간 꾸준히 새벽독서를 이끌어 오고 있고, 지난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인문학의 깊이 있는 내용의 글을 브런치에 올려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와 지담과의 공저는 개인의 경험이 불안과 급변의 사회에 사업을 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게 전해져 그들의 삶에 유익한 경험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 주제의 글은 새롭게 만들 저의 브런치북으로 매주 일요일, 지담브런치북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매주 토요일 5:00A.M. 발행됩니다.
사업재건이 목표인데 쿠데타라니
“다니엘! 큰일 났습니다! 보스포루스 2 대교를 군인들이 막아버렸어요!”
“뭐? 무슨 일인데?”
분명 뭔가 큰일이 터진 것이다. 바리시(Baris)의 목소리가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몹시 다급했고 흥분되어 있다.
“천천히 말해봐! 바리시! 무슨 일이야?”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총성이었다! 분명히 총소리였다!
2016년 7월 15일 저녁 8시 30분 무렵, 나는 이 순간을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쿠데타! 쿠데타라니! 그것도 나의 사업터에서 말이다!
당시 언덕 위 집에서 내려다본 보스포루스 2교 위는 탱크와 총을 들고 바리케이드 앞에 진을 친 군인들. 계속 잦아지는 총성. 나는 급해졌고 일단 가족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거실에서 분재들에 물을 주고 있는 아내를 다급하게 불렀다.
“여보! 여보!”,
“잠깐만!”
늘 그렇듯 아내는 자기 일에 열중이다. 나는 아내에게 달려가 양쪽 어깨를 잡고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단호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주저 없이 말했다.
“지금 이 소리 들리지? 총소리야. 쿠데타가 난 것 같아. 당분간 아이와 한국에 가 있는 게 좋겠어. 내일 한국 갈 방법을 찾아볼게”
그리고 아이들을 불러 지금 상황을 간단히 설명한 후 짐을 싸라고 일렀다. 아직 이해가 부족한 아이는 겁이 났는지 '우리 집에도 총 들고 군인들이 오는 거야?'라며 울먹거리며 물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겁먹은 표정에서 나는 비장한 책임감을 순간 느꼈다. 모든 상황은 바리시의 전화 이후 아주 짧은 시간 벌어진 일이지만 나의 책임감과 비장한 심정은 지금껏 살면서 느낀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극도의 고지까지 치고 올라가 있음을 느꼈다. 내가 정신을 놓아 겁을 먹으면 내 가족에게 위험이 닥친다. 인간의 한계란 무한하다는 말도 말짱 거짓말 같았고 그 순간 나는 신을 찾았다.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고.
21시 42분경, 처음 총성이 울린 지 1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모든 방송사는 쿠데타군과 경찰의 무력충돌과 교전이 발생했다는 군부 쿠데타 내용을 뉴스로 송출하기 시작했다. SNS에서도 친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인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쿠데타군과 대치하는 사진과 동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수없이 올라왔다.
솔직히 당시의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TV와 SNS를 접한 아내와 딸의 불안한 표정을 담을 정도로 내 그릇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도 아마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여성은 강한 것도 그때 알았다. 아내의 모습에서는 의연함과 평정심이 보였다. “여보, 내일 한국으로 피신하지 않고 당신과 같이 있기로 아이들과 얘기했어.” 당장 한국으로 피신하길 권하는 나와 함께 이 위기를 넘어보자는 아내. 몇 차례 실랑이 끝에 결국 아내의 뜻을 따르기로 하자 아내는 다급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안심시킬 테니 당신은 회사직원들부터 얼른 챙기세요.” 아차, 나는 회사의 수장이었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회사의 비상연락망으로 모든 임직원이 온라인 화상으로 모여 있었다. 화상에 등장한 주재원과 리더들의 모습에 당황, 혼란, 긴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선, 직원들과 가족들의 안전부터 서둘러 확인해 주세요. 지금은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안전을 확인한 후 당분간 외출을 삼가도록 당부하고 출근도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보류되었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으로서, 회사의 전 직원과 그들 가족들을 지켜야 하는 회사의 수장으로서, 나는 무한의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심적으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분명 공항은 폐쇄되었을 것이고 우리 교민들, 여행 중인 한국인들은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물을 여유도 없었다. 해외에서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지 '기업인'으로서가 아니라 그 지역의 우리 국민들에게 '힘'이 되어줘야 할 역할과 책임까지 주어져 있다고 나는 늘 명심해 왔다. 한국교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도왔듯 분명 이러한 사태에서는 힘 있는 우리가 교민들을 도와야 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당장 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있는 주재원, 리더들에게는 영사관, 대사관과 연락하여 도와야 할 일들을 협의토록 했다.
터키에서 겪은 쿠데타는 해외에서 근무를 시작한 12년 만에 겪은 최고로 혼란했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시작했을 때부터 쿠데타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쿠데타는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그래선지 이 상황이 당시의 필자에게는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혼란이었다. 쿠데타가 실제로 발생가능하다는 팩트에 현타가 왔고 그 행위의 살벌함에 동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심적으로 심하게 동요되었었다. 그리고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지? 내 가족은 무슨 이유로 여기서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지? 나중에 아이들에게 이 사태가 트라우마로 남으면 어쩌지?'와 같은 불안이 급습했고 잇따르는 현실적인 원망과 피하고 싶은 간절함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계속되는 총소리, 헬기소리에 나도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충격에 빠져 버렸다.
필자에게 쿠데타는 아주 낯선 사태다. 물론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한국의 5.16에 대한 얘기도 들었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의 성장국가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뉴스로 접한 적도 있고 대학시절 겪은 우리나라의 군부쿠데타의 간접적인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 내게 가장 현실적이었던 당시 광주에서의 사건조차도 그 현장에 내가 없었기에 일상과 육체적인 혼란이라기보다 정치적이고 정신적인 혼란이었지 지금 터키의 현장에서 벌어진 현상처럼 육체와 일상이 무너지는 혼란은 아니었다. 총성이 울리고 헬기가 날아다니는 소음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강타했지만 이 긴박한 순간, 가족의 가장으로서, 기업의 수장으로서, 한국교민에게 힘이 되어줘야 할 기업인으로서 나는 서둘러 판단해야 했고 그 어떤 순간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가장 우선적으로 나는 나 자신부터 믿기로 했다. 모든 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최우선, 사업에 타격이 올 것도 대비해야 했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모두 안다면, 실제 방생한 현상에 대해 단 하나의 사실이나 한 가지 얘기만으로도 그 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결과 모두를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주 1)
하지만 필자는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와 법칙, 그리고 이러한 대혼란의 불규칙성을 추론하여 현실에서 대응해 나가는 것에는 경험도 없고 지성도 부족했다. '보이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 같더라도 실제로는 일치하는 수많은 법칙들,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법칙들에서 비롯되는 조화(주 2)'로서 경이롭게 움직인다는데 당시의 다급함과 흥분상태에서는 어디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나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업을 할 때 사업가라면 반드시 경험하길 바라는 것이 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야성에 자신의 의지가 지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했던 범주보다 더 위험한 위기상황에서 이 용감한 내면의 야성은 힘을 발휘한다. 이때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의 잠재된 힘을 믿는다면 분명 벌어진 사태는 꼬리를 내리고 서둘러 자취를 감추는 신비로움을 경험할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현명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두뇌보다 훨씬 더 현명한 무엇인가가 깃들어 있다. 즉, 우리는 생애에 있어서의 커다란 움직임, 즉 주요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무엇이 옳은가 하는 확실한 인식에 따라서 행동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본질적인 성격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내면적인 충동과 본능에 따라서 행동한다. (주 3)
당시에는 몰랐다. 지나고 나서 알았다. 기업가로서의 방대한 책임에 대해, 내면의 나에게 숨겨져 있는 위대한 힘에 대해. 이론으로 알고 있는 인식의 한계와 겪어보지 않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찰나의 판단의 위대함에 대해. 본능적인 행동이 얼마나 옳은 결과를 도출하는지에 대해. 당시에는 몰랐지만 증명된 결과를 통해 기업인의 책임과 위대함이 무한하다는 것을 실제 경험했던 것이다.
기업가로서의 책임은 기업의 이윤창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지에서 사업하는 기업의 수장으로서의 책임은 현지에서의 매출을 키우고 이윤을 창출하는 장사꾼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기업 또한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도록 Shared Value 창출을 위해 역할을 담당하고 사회에 공헌, 기여하는 의사결정과 실행을 해야 한다. 쿠데타와 같은 긴박함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기업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 누구가 부여한 것도, 어떠한 규범에 의존한 것도 아닌, 암묵적인 자기 의지에 따른다. 그래서 이때가 어쩌면 개인으로서, 조직으로서 자신의 리더십과 책임의식을 위한 최고의 시험대일지도 모른다.
쿠데타 발생 시점부터 가장으로서, 기업가로서 필요한 상황판단을 내려야 했고 해야 할 역할을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수행해야 했다. 또한 쿠데타 이후의 후유증이 사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도 짜야했으며 각 시나리오별 준비된 전략을 시행하며 상황 반전을 꾀해야 했다. 모든 판단은 신속하면서도 전체의 균형을 위해 내려져야 했기에 이는 수많은 경험으로 축적된 사업가의 기질과 이를 초월한 본능적인 감각에 나를 의존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민감성'은 사업가의 기업가정신에 필수요건이었음을 나는 이 무지막지한 상황에서 경험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부임하자마자 터진 술탄 아흐메트 광장 테러 사건을 시작으로 지진에 쿠데타까지 글로벌 현장에서 겪는 어려운 사업 환경은 기업가로서의 내공을 더 탄탄히 할 수 있는 도전터로 여겨야만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상황들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면서 자연히 삶의 깊이도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분명히 기회가 된다. 나는 사업가로서, 리더로서, 개인으로서 수많은 위기에 봉착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모든 위기는 다음에 더 큰 위치로 나를 세우기 위한 신의 훈련이었다. 사태가 내게 닥쳤을 때 기업가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을 향하면서도 더 큰 시선으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 나아가 일의 끝지점에 머물게 해야만 한다. 자신과 자신의 비즈니스, 이를 둘러싼 환경을 감지하는 것은 기업가로서 무척 유능한 고지로 당신을 세워둘 것이다.
(주 1) 헨리데이비드소로우, 월든에서 발췌
(주 2) 헨리데이비드소로우, 월든에서 발췌
(주 3)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인생론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