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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Dec 29. 2024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난 새우깡이 됐다.

해외 비즈니스 스토리 II


연말에 가까운 아침, 밤새 배달된 메시지가 궁금해 메일함을 열어본다. 늘 배달되는 뉴스와 정보 메일이 대다수지만 틈틈이 낯익은 이름의 메일들이 보여 눈길이 간다. 그 메일들은 내가 일했던 여러 나라의 동료들로부터 온 것이며, 연말 행사 사진과 따뜻한 새해 인사로 가득하다. 그들의 사진과 글 속에는 웃음과 행복이 넘치고, 함께했던 시절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어떤 동료는 15년 전에, 어떤 동료는 1년 전에 헤어졌지만, 이들과의 교류는 여전히 며칠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따뜻한 인사가 나를 감동시키고, 소중한 추억은 이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연말 메시지는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복귀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임을 떠올리게 한다.


매트로버스 타기, 교통카드사용법, 포인트적립. 등 해외에서 22년간 살다가 돌아온 내게 한국으로 돌아온 올해 첫해는 말 그대로 적응을 위한 시간이었다. 빠르고 변화무쌍한 한국의 환경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정착 과정을 시행착오로 채운다. 하다 못해 매트로 버스 타는 방법, 대중교통 카드 사용하는 방법, ‘포인터 적립’을 생활 곳곳에서 적용하는 방법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오죽할까..


새우깡. 그래서 내게 별명이 생겼다! 새우깡. 손이 가요 손이 가~~ 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민망하지만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새우깡’이라는 별명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의 변화가 단순히 환경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별명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된다.




혼란과 불편함에 좌충우돌하곤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여유롭게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며, 해외 생활의 흔적이 얼마나 깊이 배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생활 속도는 느릿느릿했던 해외에서의 삶과 대조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선명히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의 변화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해외에서는 계산대를 통해 직원과 대면하며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셀프 계산대가 더 많이 선호되고 있다. 해외 식당에서는 직원이 주문을 받고 계산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테이블 위의 태블릿으로 손님 스스로 주문하고 결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식은 노동력 부족, 인건비 문제와 대면접촉을 싫어하는 소비자의 편리함을 동시에 해결하며 서로에게 이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대면 소통이 점점 줄어드는 또 다른 현상을 암시하기도 하다. 편리함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예기치 못한 파급 효과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새우깡"이라는 느리지만 인간적인 접근법은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기술과 효율성이 점점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우리가 잃게 될 것들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대다수가 사람과의 소통보다는 기계를 통한 편리함을 선택하는 때가 온다면, 과연 그 시대를 환영해야 할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새우깡으로 살아가고 있는 날들 중 하루, 토요일은 한 주 동안 쌓였던 피로를 내려놓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여유롭고 평온한 날이다. 이 날만큼은 조금 게으르게 굴거나 느리게 움직여도, 혹은 산만하게 시간을 보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미루어 두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어 천천히 해보기에 적합한 날이며, 설령 그것이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토요일이라는 시간이 너그럽게 허락해 줄 것만 같다.


바쁜 다섯 평일과 고요한 일요일 사이에 놓인 토요일은, 한 주의 에너지를 조절하고 긴장감을 해소해 주는 중요한 완충 역할을 한다. 마치 명치끝과 배꼽 사이에서 먹은 음식을 온몸으로 보내며 소화의 균형을 잡아주는 췌장처럼 바쁜 5평 일과 고요한 일요일 사이, 토요일은 내게 시간의 췌장과 같다.


이번 토요일 아침은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조금만 더 누워 있어도 괜찮아"라는 속삭임 같은 유혹에 귀를 기울이며 시작된다. 그렇게 한참을 미적거리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집안을 정리하며 식사를 마치는 평범한 아침 루틴을 끝낸다. 진하고 고소한 향이 풍기는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고 밤사이 쌓인 뉴스와 메시지에 시선을 빼앗기며 다짐은 뒤로 미뤄진다. 토요일은 가끔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다. 평일과 주말의 균형을 잡아야 할 녀석이 오히려 다짐했던 내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질서 잡힌 일상의 매듭까지  느슨하게 해 버리니 말이다.


그래도 토요일은 내겐 참 편안한 하루이고 늘 기다리는 요일이다. 3주 뒤 토요일은 더욱 기대된다. 충분히 내 일상의 완충역할을 해줄 중요한 날이 될 듯하여..



# 1/18, 위대한 시간에 초대합니다!

   => 위대한 시간

# [엄마의 유산]

    => https://guhnyul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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