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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Dec 16. 2024

도움에서 배움으로


겨울 아침, 5시에 알람이 울리나 이미 정신은 깬 채로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한다. 잠은 자는 듯 하나, 깊지가 않으니 알람보다 몸이 반응하는 것이 더 정확하여 눈을 뜨면 5시에 가깝다. 어느새 5시는 익숙한 시간이 되었는데 추위가 세질수록 몸이 느려지고 정신이 느슨해 진다. 


아무런 생각 없이 벌떡 일어나서 다음 행동을 해야 하는데, 한 겨울이 다가오면서 일어나는 행위에 생각이 붙게 되고, 다음 행동에 이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보다 몇배나 추운 모스크바의 추운 겨울에서도 정신은 뚜렷했고, 행동은 부지런하고 절도가 있었는데 이 정도 추위에 몸과 정신이 움츠러드니, 나를 제외하고 달라진 주변환경에 나쁘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다시 동여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아차린다.    

 

생각만 많은 채, 몸은 새 아침을 거부하고 머뭇머뭇 느리게 일어나지만 하루의 일상은 바쁜 듯 시작된다. 손에 온전히 잡히지 않고 결과가 마무리 되지 않더라도,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일들이 많기에 긍정의 생각으로 시작한다. 아침의 여러 일을 하고 난 뒤, 책상에 앉아 여러 일들을 펼쳐놓고, 하루의 시간을 쪼개어 짜 맞춘다. 금새 하루라는 시간은일정으로 채워지고, 일주일의 시간도 여러일정으로 채워져 업데이트 된다.    




일정에 맞추어 여러 곳을 방문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모습들을 보면, 알 듯 모를 듯 이면의 것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바쁜 듯 하지만 진지하고, 느슨한 듯 하지만 촘촘하고, 가벼운 듯 하지만 진중하고, 많이 가진 듯 하지만 편안함을 좋아하는 모습들이 은근슬쩍 보인다.  


이 모습들은 틀을 갖춘 기업들에서는 볼 수 없다.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신생명체 같지만 눈빛은 맑고 부드러우며, 질서 없이 움직이는 유아들의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들만의 뚜렷한 동선이 있어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다. 분명한 체계, 틀이 있지만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고, 정신의 물질화를 실현하기 위해 실행을 우선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는 기가 넘쳐난다. 이 곳이 스타트업 공간이고, 이들에게서는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면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35년의 기업 경험,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인연이 맺어진 스타트업 몇 군데를 정기적으로 들려 얘기를 나눈다. 경청하다 보면, 이들의 발자취, 과정과 희로애락을 알게 된다. 결코 쉬운 얘기들이 없다. 희로애락을 일찍이 경험한 연유인지 이들만의 표정, 표현, 몸짓,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어린 듯 한데 어리지 않다. 다듬어 지지 않은 듯 한데 다듬어졌다. 스타트업에 어울리지 않은 듯 한데 어울린다. 차가운 듯 한데 따뜻하고, 따뜻한 듯 한데 차갑다. 그 중심에는 맑은 느낌을 주는 눈빛이 있고 선한 느낌을 주는 마음이 있다. 


반면, 이들 주변에서 이들이 쌓아온 기회를 가로채려는 사람들, 이를 위해 잘못된 것을 마치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의 눈빛은 오염되어 혼탁하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흡혈귀 같은 이들은 역시나 세상에 이로운 것을 해보려 하고, 담대한 꿈을 꾸는 젊은 인재들 속에 파고 들어 악마의 속삭임으로 이들을 헤집어 놓는다. 잿빛 어둠의 속삭임은 영역을 넓혀 밝은 기운을 삼켜버리고 껍질만 남긴 채 여유롭게 사라진다. 결국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와 어두운 흔적이 짙게 남는다.


금새 물드는 이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꿈을 향해 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중심잡고 흔들림없이 자신의 역할을 행하고 꿈을 이루도록,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경영의 지혜를 나눠 주고자 한다. 허나, 우려와는 달리 이들은 이미 아픈 경험에서 배우고 있으며, 이들의 소중한 배움은 깊이를 더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영글지 못해서, 야무지지 못해서, 냉정하지 못해서, 그리고 경영을 몰라서 겪어야 했던 배신, 아픔, 좌절, 공황의 감정들에 빠져 힘들어 하고 회사를 잃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 다져지는 중심,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에 대한 성찰은 이들에게 값진 교훈으로서, 선물로서 쌓여간다. 아울러 이들의 얘기는 내게도 교훈이 되고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도움을 주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의 얘기는 상술한 이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이스트 출신 4명이 의기투합하여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그 아이디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고, 비즈니스 모델이 좋아 시작단계에서 약 3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가능성은 점점 커졌지만 사람의 욕심도 같이 커져 개발은 당초 방향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성취 가능성에 취해 경영도 방만해졌다. 유치한 펀드는 곧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좋고 가능성은 높기에 어려움에 처한 회사의 경영권을 갖고자 외부의 유혹이 창업자들을 이간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유혹에 속은 2명의 창업자는 반란을 일으켰고 직원간에 분열마저 생겨 회사는 위기에 처했다. 


창업을 주도한 대표는 창업 동료와 직원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로 인한 아픔, 좌절, 공항은 더욱 힘들었고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은 가능성과 의지로 모인 이들을 갈갈이 헤쳐 놓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맑은 눈빛과 강철 의지는 경험을 승화시켜 교훈으로 만들었고 자기성찰과 성장의 부싯돌 같은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얻는 것은 옥석을 가려 낸 후의 단단히 다져진 회사와 겸허함으로 더 농축된 직원들의 맑은 눈빛이었다.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시작한 일과는 하루 종일 이들과 함께 하면서 이들의 에너지로 농축된 눈빛 속으로 묻어든다. 이들이 모르는 것은 알려주고 이들이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지만, 이들의 뼈아픔 속에서 터득한 지혜와 처절함속에서 거둔 성취는 이들의 자세로, 언어로, 행동으로 내게 전달이 된다. 그래서 이들의 눈빛이 좋고, 열린 마음이 좋고, 하려는 의지가 좋다. 성공하려는 독기와 실행은 더 좋다. 그리고 이들에게 조금 더 나눠주기 위해 내 것도 다시 정리하고, 체계를 갖추려는 나의 모습과 눈빛이 맑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도 좋다. 


이렇게 같이 배워가고 성장한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지만 오히려 이들이 가진 이면의 모습에서, 이들이 겪었던 아픈 경험을 통해 다져진 정신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도 보고 채우게 된다. 내가 도움이 되려는 것도, 좋은 내가 되려는 것도 눈빛이 살아있는 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가능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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