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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3시간전

아름다운 떠남과 떠나보냄

해외 비즈니스 스토리 II

고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기간 포함하여 36년의 대기업 생활을 이제 10여 일 앞두고 있다. 34년 근무 후 퇴임 통보를 받은 감정이 1차의 씁쓸함이었다면, 2년의 고문 생활 후 완전히 떠나면서 생기는 감정은 2차의 씁쓸함 인 듯하다. 같은 듯 다르고, 공허함의 크기도 차이가 있는 듯 차원이 다르다. 이런 감정의 여운은 오랜 기간 깊이 묻은 때가 얼룩으로, 흔적으로 남겨지려는 것일테다. 거참, 왜 자꾸 미련이 남는지, 이 미련만큼은 떨쳐야 하는데...



삶을 표현하는 문구와 문장들은 많은데, 삶의 한 부분을 작별, 떠남의 여정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영혼이 육신을 떠날때까지 떠나는 연습을 한다. 만남과 관계에서, 과정과 결과에서, 영역과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에서, 슬픔과 기쁨에서 그리고 삶에서의 떠남 등 다양한 떠남을 경험한다. 


떠남은 슬플 수도, 고통스러울 수도, 좌절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편안할 수도, 쾌감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는데 그만큼 많은 사연과 함께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관계에서든, 어떤 역할에서든, 아름답고, 따뜻하고, 의미롭고, 깔끔한 떠남이 좋지 않을까?  


매일, 매달, 매해, 떠나거나 떠나보내야 할 일이 많다. 내가 떠날 때도 있고, 나에게서 떠날 때도 있다. 내가 떠나보내기도 하지만 떠남과 떠나보냄은 일상의 일부분임에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해 보면 떠남은 무척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 감성에 남는 것은 아쉬움과 추억이고 가슴속에 남는 것은 상처와 아픔이니 말이다. 그런데 떠난다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 완전한 단절이 아니고, 그 떠남은 다음을 위한 여정이니 떠남과 떠나보냄에 연연해 하기보다는 진정한 마음을 다하고 아름다운 떠남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매년 내게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일부는 내가 떠나보내야 했다. 마치 나 자신은 떠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곳에서 떠나야 하기에 떠남에 대한 마음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회사에서의 떠남은 언젠가 해야 하는 명확한 과정이며 자의든, 타의든 마침이 있는 여정이다. 회사라는 공동체 일원이 되는 순간부터 떠남의 통과의례를 피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빨리 치르고, 어떤 이는 늦게 치를 뿐, 누구든 떠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회사생활 동안, 떠나는 사람에게 잘해주려 했고 떠날 때 좋은 감정을 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른 회사와 연결, 추천서, 보상, 선물, 추억 상자 그리고 떠나며 남기는 말에 경청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정성이며 대표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고 부서장들에게 떠나보낼 때 정성을 다하도록 당부했다. 그런데 2년 전 내가 퇴임을 통보받을 때 알았다. 내가 그동안 정성이고 도리라고 생각했던 그 노력들이 건방을 떤 거였다는 것을... 나의 퇴임을 통보하며 위로하는 말도, 위로의 선물도, 작은 배려들도 떠나야 하는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회사에 큰 공헌을 하셨고 헌신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와 드릴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전화를 통해 굳이 퇴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정중하게 역할을 다 했음을 알려준 최고경영자의 몇마디와 퇴임에 따른 회사의 배려 내용들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를 안했다. 대꾸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들은 말들에 아무런 공감이 안되어 할 말도 없었다. 34년 여정의 마무리를 이렇게 전화 한통화로 매듭을 짓는다. 떠나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정성과 도리도 내가 받은 전화 한통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를 떠날 때, 관계가 끝날 때, 우리는 하늘이 물러나 더 높은 곳으로 아치형(주 1)을 이룬 시선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내 육체와 정서적 고통이 어떠할지라도 이러한 '떠남의 우연'은 필연적이면서도 더 내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어쩌면, 이별을 통한 관계자체가 어떤 질료로 남겨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람을 떠나보내며 했던 나의 노력은 ‘나는 떠날 사람이 아니다’라는 단정을 무의식 속에 담아두고 행한 것이었다. 떠나는 이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지 못한 채, 대표로서의 의무를 성심껏 하는 수준에 불과했고, ‘나는 베풂을 준다’는 따뜻한 배려로 포장한 교만함이었다. 단지, 떠남은 다른 곳에서의 만남이 될 수 있는 여정이라 여겼기에 ‘아름다운 이별’을 실천하려 했을 뿐이었다. 결국 내가 떠나야 하는 당사자가 되어서야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알게 된것이니, 그간의 교만함과 겉치레 노력들을 뻔뻔히 행한 그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다. 그분들이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니 부끄럽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니 임직원들에 대한 회사의 결정이 매우 거칠고, 건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서운함과 우려를 초래한다. 최근에 유독, 떠나보내는 임직원들에 대한 야박한 처사들이 난무하고 마치 회사가 오늘만 생각하는 하루살이를 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전통과 레거시를 덮어버리고 ‘굳이 이렇게 배려할 필요가 있어’라는 지침을 앞세워 우호적인 마음마저 지워버리려 하니, 내가 행했던 어리석은 과정보다 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대주주와 최종의사결정자의 선택이라고 하니 회사에 일생을 바친 바와 진배없고, 회사에 대한 굳은 자긍심을 갖고 있는 선후배 임직원들의 로열티마저 상실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사라져 간 회사들의 스토리를 알기에 최근의 상황은 안타까움을 넘어 큰 우려가 앞선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회사는 소비자 마음을 얻기 이전에 임직원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하듯이 안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데 밖의 마음을 얻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얻어야 하고, 얻었지만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유지해야 그 힘이 시장에서 작용한다. 


떠날 때 아름답게 떠나고, 떠나보낼 때 아름답게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떠날 때는 다음 인연을 위한 여정이란 마음을 갖고, 떠나보낼 때는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겉치레 노력보다 마음을 얻는 떠나보냄을 해보려 한다. 호연이든 악연이든 인연이란 반드시 만남과 헤어짐을 전제하고 다음 만남의 여정이기에...


10여일 앞둔 36년의 종지부를 아름답게 찍으려 한다. 떠남의 공허함과 공감없는 배려의 서운함을 뒤에 두려한다. 지금, 긴 여정의 또 다른 한 점을 지나가고 있기에 다음 여정 준비에 정성을 쏟으려 한다. 떠남이 있기에 또 다른 만남이 생기니 떠남과 만남은 긴 여정에서 바라보면 다른 것이 아니다.


 

(주1) 헨리데이빗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윤규상역, 1996,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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