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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n 20. 2024

뒤늦은 도둑질, 25년 만의 대학 생활 첫 종강

매일 아침 5시 30분, 알람 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알람과 함께 3가지 늦깎이 도둑질이 시작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 꾸준히 이어온 기상 습관 덕분에 이제는 이 시간이 익숙하다. 어두운 겨울의 새벽부터 태양과 함께 맞이하는 여름의 새벽까지, 아침의 모습은 매일 다르게 다가온다. 가끔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때로는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는 그 순간에, 그리고 햇살이 찬란히 비치는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알람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책상 앞에 앉는 이 모든 과정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매일의 루틴과 예약 일정, 번개 일정이 이어지면서 여명에서 자정 사이에 쉴 틈도 그리 많지 않다. ‘하루가 참 빠르구나’ 인식하는 순간 벌써 내일이 된다. 이렇게 20년 해외 생활 후의 한국 적응이 어느덧 6개월을 지나가고, 늦깎이 도둑질도 첫 학기를 마쳐간다.  


한국적응의 시간과 같이 시작해서 허겁지겁 달려온 3가지 도둑질_없어도 되는데 가지고 싶어 훔치고야 마는 도전들_의 지난 4개월을 차분히 돌아보면, 느끼는 바가 많다. 내가 나를 몰고 왔고, 내가 나를 떠밀었다는 생각이기에 그 느낌을 담백하게 얘기하고, 다가오는 가을 시즌을 더 알차게 채우기 위해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첫 번째 도둑질인 아침 독서 모임은 하루의 시작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6시에 시작되는 이 모임은 나에게 새로운 지적 자극을 주고,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게 해 준다. 철학서의 어려운 구절을 쉽게 해석해 주는 좌장의 말은 마치 정신을 깨우는 아침의 첫 햇살처럼 다가오고 미간을 관통해 뇌리에 새겨진다. 우주의 기운, 그 기운의 흐름, 그 흐름의 결과를 아는 듯, 큰 그림의 틀에서 현상들을 이해하고 얽혀있는 현상들의 원인을 짚어내는 좌장의 깊이에 크게 놀라고 그 지혜로운 처방전을 받아 들면 마치 나의 하루, 일주, 한 달이 맑아지는 듯하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되는 책 이야기와 서로의 생각들은 일상 속의 지혜가 되고 행동의 기준이 된다.


이 모임을 통해 더 책을 읽어 지식의 깊이를 심화시키려는 욕구가 샘솟는다. 그런데 어찌하랴, 게으른 천성은 욕구를 채우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고, 간사한 악마의 속삭임은 무지한 나를 흔들어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욕구만큼 책을 읽지 못했고, 얕은 지식의 깊이를 더 깊고, 넓게 파질 못했다. 아침 독서라는 늦깎이 도전의 시작은 좋았으나 인문학적 수준과 지적 깊이를 더하지 못했으니 첫 학기 도전 성적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아침 6시, 성찰자들과 함께 하는 독서 모임은 내 영혼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메마르지 않은 샘물과 같다.   


나의 두 번째 도둑질은 독서 모임 후, 오전 시간에 집중하는 글쓰기이다. 브런치에 올릴 글, 학교에 제출할 글, 그리고 여러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카톡으로 소통하는 일들은 나의 시간을 사유로 채워준다. 브런치 글을 쓸 때도,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할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더 잘 쓰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고, 진솔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통하려 한다.


매주 올리는 세 개의 글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더해서, 지식을 실어서, 지혜를 나누는 마음을 담고자 한다.   첫 줄을 쓰는 것은 늘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주지만, 그 과정에서 교차하는 실망감과 성취감 또한 독려의 힘을 안겨준다. 


나는 늘 말하고 살았는데, 나름 말 잘한다 싶었는데 말하기부터 골치아팠고
말 그대로 첫 문장 쓰는데 일생이 걸리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현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나 행복을 인내의 납덩이로 바꾸도록 나는 늘 나에게 강요했으며
책상앞에 나를 붙이고서는 출구도 방향도 다 가로막아버린,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미로속을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는 늘 사랑하고 사랑받는 줄 알았는데
'사랑'이라는 단어의 깊이에 대해 이제서야 알게 되는....(주1)


이렇듯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깊이 있는 사유로 이끌어준다. 인풋이 많을수록, 많이 쓸수록, 자주 쓸수록 스스로 성장을 발견할 수 있으니 글쓰기를 통해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를 몰랐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을 하면서…


세 번째 도둑질은 뒤늦은 박사 과정 도전이다. 한때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가 다시 대학의 교정을 밟게 된 것이다. 그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오랜만에 느껴본 설렘과 긴장감은 마치 어린 시절 첫 등교 날의 그것과도 같았다. 25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다는 것은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강의실의 낯선 공기와 새롭게 마주한 자리는 나에게 새로운 시작의 신호였다.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한 박사 과정은 나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였다. 12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었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지나가는 시간인데 그 모든 시간이 소모되지 않고 투자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나이에 학교에서 뭘 배우려 하냐'는 주변의 시선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첫 학기, 새로운 교과목과 과제를 접하며 느낀 부담감은 오히려 더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로 바뀌었고, 팀원들과의 만남과 토론은 그동안 막혀 있었던 지식을 갈구하는 향의 감각이 열려 천연 지식의 향에 흠뻑 취하게 하였다. 매 강의 시간마다 느끼는 배움의 즐거움,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의 희열은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상기시켜 주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교육이 필요한 때가 있다.
질투는 어리석음이고 모방은 멸망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신의 몫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드넓은 우주는 좋은 것들로 가득하지만 자기몫으로 주어진 땅에서 그저 밭을 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는 옥수수 낟알 하나도 절대 얻을 수 없다는 확신에 이를 때가 바로 그 때이다. (주2)




그렇게 첫 학기 동안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며, 배움의 재미를 다시, 그리고 듬뿍 느꼈다. 새로운 내용과 이론을 배우는 과정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만족감을 주었다. 과제와 읽어야 할 책들이 쌓일 때면 부담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를 해내면서 은근히 올라가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의 경험과 학문적 이론을 연결시키는 과정은 나의 감각을 자극시켰고 아는 것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흥분은 충분히 컸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주변의 시선도 여전히 있지만, 굳이 반응할 이유가 없다. 도전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은 오히려 주변의 지인들을 학교로 끌어들이게 한다. 나는 확신한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박사 과정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진화된 지식을 습득하고 학문적 깊이를 더하며, 앞으로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더 단단히 다지는 것이니 나를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첫 학기를 마친 지금, 나는 즐거움, 열정, 욕구를 크게 얻었다. 학문적 성취와 함께,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알고, 배우는 것이 많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사유의 세계를 탐구하며, 박사 과정을 통해 학문적 깊이를 더하면서 나의 행보는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나는 더 큰 목표를 세웠다. 학문적 성취뿐만 아니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얻은 지식을 나누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앞으로도 계속 배움의 길을 걷고, 나의 경험과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매일 아침,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이 여정이, 그리고 언젠가 100세가 되어 돌아봤을 때, 지금의 내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니엘, 너 참 잘했어!"


“배움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생각의 전환과 확장을 의미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주1) 말테의 수기, 라이너마리아 릴케, 1999, 문예출판사

(주2) 자기 신뢰 철학 / 영웅이란 무엇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 2020, 동서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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