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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라나시에서 목욕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때 나는 도망치듯 떠났다

얼마 전 블로그에 적었던 글을 우연히 보았다. 2010년.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인도 여행 후 쓴 글이었다. 당시 론니플래닛 여행잡지에 투고하여 상품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받았던 글(?)이었다. 지금 읽으면 살짝 유치했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몇 년째 중요한 국가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노력은 했지만 결과는 늘 간만의 차이로 떨어졌다. "열심히 해봐. 내년에는 꼭 합격할 거야"라는 위로의 말이 있었지만, “아직도 시험을 준비하나?" 주변의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나이는 계속 먹고 어느덧 20대 후반으로 가고 있었다. 이대로 나는 패배하여 잉여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나 깊은 좌절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연애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대로 계속 삶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아주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 처음에는 동유럽을 생각했다. 프라하의 오래된 건물과 다뉴브 강,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다리를 걷는 모습을 상상했다. 발칸 반도의 작은 마을과 구불구불한 길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계획은 바뀌었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 생각났다. 책 속에서는 인도에서 만난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당시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고, 한국 사회에는 ‘자기 찾기’라는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도로 향했다. 게다가 영화 한 편이 그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2010년, 임수정과 공유가 출연한 영화 『김종욱 찾기』의 첫 만남 장면이 인도 조드푸르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도로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것들을 보고 떠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책은 순전히 뻥이었어"라고 말을 했다. 그 책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여행지는 동유럽에서 인도로 바뀌었다. 예산도 큰 이유였다. 동유럽 여행은 인도 여행보다 약 두 배 반이나 비쌌다. 물가와 숙소, 이동비를 따져보니 현실적으로 부담이 컸다. 어차피 여행의 목적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인생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굳이 비싼 곳일 필요는 없었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낯선 문화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인도 쪽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지 챗gpt
당시 많은 사람을 인도로 떠나게 했던 문제의 화제작



바라나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강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섬유 공장에서 2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모은 200만 원으로 50만 원은 또다시 공부를 위해 노트북을 샀고, 나머지 150만 원으로 여행 준비를 했다. 50만 원은 비행기 티켓, 100만 원은 한 달 동안 여행경비이다. 지금은 꽤 비용이 올랐지만 당시로서는 저 정도였다. 그때는 지금 보다는 저렴했다. 총 35일간의 배낭여행. 꽤 긴 기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인도라는 그 거대한 아대륙을 여행하기에는 사실상 아주 기본적인 시간일 뿐이었다. '인도를 조금 맛봤다'라고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90일 여행이 필요하다. 이렇게 약간의 자금과 가이드북 하나만을 믿은 채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지금이야 겁도 많아지고 함부로 행동하기 힘들지만 그때는 아직 철없던 20대였기에.


첫 행선지는 수도 델리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특유의 카레 냄새가 났다. 다행히 첫날은 무사히 동행을 만나서 여행을 잘 마쳤고 아그라-우다이푸르-자이푸르 등등 북유럽을 위주로 여행을 했다. 인도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아직도 시골 한 구석에서는 19세기처럼 소를 몰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MIT 공대를 나와서 최첨단 테크 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인도라는 나라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정말 세상은 넓구나.


내가 갔던 시기는 10월, 방학 기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성수기도 아니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 시기에 오는 인도 여행자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5년 동안 다니던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고 인생을 전환점을 맞이하고 싶었던 누나, 30살이 되기 전에 마지막 20대를 해외에서 지내려는 김해에서 왔다는 사람, 새로운 직장을 찾기 전에 머리 식히려 온 사람 등등 다양했다.


여행을 한 지 얼마쯤 되었을까? 아마도 20일쯤이다. 다음 목적지는 신성한 갠지스 강이 있는 바라나시였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이 성지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어머니의 젖줄'이라고 불린다. 이슬람 신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찾듯이, 힌두교 신자들은 바라나시를 찾는다. 모든 인도인들이 일생에 꼭 한 번은 찾아야 하는 순례지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삶의 끝을 바라나시에서 맞이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상여를 멘 사람들이 “냠냠 싸떼!”와 같은 힌디어가 울려 퍼진다. 아마도 죽은 자를 기리는 말인가 보다.


이 도시에서는 죽음이 일상적이다. 화장터에 가면 시체를 태우고 있다. 태우고 난 재는 강에 뿌린다고 한다. 가끔씩은 타다 남은 시체가 강물에 둥둥 떠다닌다고(?)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를 뿌렸는지 이미 강은 무척 오염되었다. 그런데도 강 상류에서는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중간 지점에서는 시신을 화장하고 뿌리며, 하류에서는 “신성하다”며 사람들이 몸을 씻고 심지어 물을 마시기도 한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물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껴야 할지, 두려움을 느껴야 할지. 종교란 믿음의 영역이니까.

바라나시의 전경 (출처 istockphoto.com)



새벽 6시 반, 강물 속으로 들어가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여행자들은 새벽의 갠지스 강 보트 투어를 한다. 어스름한 새벽빛, 불타는 화장터의 연기, 그리고 물 위로 부유하는 작은 등불과 뿌자들이 보인다. 정말 이국적인 모습이다.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새벽에 보트 투어를 마친 나는 숙소에서 간단한 세면도구만 챙겼다. 바라나시에는 수십 개의 가트(화장터)가 있다. 가장 유명한 메인 가트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가트를 찾았다. 다행히 그곳은 외국인은 없고 현지인들만 두세 명 있었다. 설렁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양에서 온 남자인 나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도 없다. 가방을 잘 숨겨둔 뒤, 천천히 강물에 발을 담갔다. 그 물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냄새는 없었고, 물빛은 탁했고, 바닥은 진흙처럼 미끌거렸다. 피부병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뭐 살짝 들어갔다가 올 건데 뭘.


전신을 담그기 전 천천히 두 손을 모아서 합창을 했다. 이후 천천히 몸을 담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이 다음에는 가슴, 그다음에는 머리까지 완전히. 물에 들어간 뒤 1분쯤 지나자 마침내 전신을 담갔다. 나는 세 번 물속에 잠수했다. 그러면서 기도했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신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었다. 사바신이든, 비슈누든, 코끼리 얼굴의 가네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제발, 내년 시험에는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거룩한 의식(?)이 마치고 나서 몸을 물밖으로 꺼냈다. 생각보다 기분이 상쾌했다. 가슴속에 뭉쳐진 뭔가가 뚫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처럼 속옷만 입고 강물 속에 몸을 넣는 인도인들이 몇몇 보였다. 다들 그들 모두 뭔가를 소망하고 있겠지. 그들 모두 표정이 진지하다. 이 순간이 신과 합치되는 순간이다.

신성한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면서 기도하는 인도인(2010년 촬영)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고요?

의식이 마친 후 숙소에서 간단히 샤워 후, 근처의 유명한 라씨 가게에서 라씨 한 잔을 마셨다. 달콤하고 시원한 그 맛은 그날따라 유독 깊었다. 이 맛있는 라씨를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을까. 어느덧 해가 밝아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인도에서 며칠, 혹은 몇 주 여행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말만 번지르한 사기꾼이거나 혹은 그 사람은 부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사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세상에 나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


다음 해, 나는 국가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답답했던 내 마음이 뭔가 뚫어지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서 소원을 빌었다고 시험에 합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뀐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나는 사람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인생이 풀리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어딘가에 도망치고 싶다면 인도로 가라고. 그래서 갠지스 강에 목욕까지는 아니더라도 강가에 손을 담가봐라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라고.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인생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이후로 나는 10년에 걸쳐 갠지스 강을 2번 더 찾았다. 또다시 목욕을 하고, 각기 다른 소원을 빌면서, 그 소원들이 진짜 이루어졌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아닐까. 앞으로도 아마 삶에 답답한 때가 온다면, 한 두 번은 더 바라나시에 갈 듯싶다.


“인도는 깨달음의 나라라기보다 모순의 나라다.

신과 거지가 같은 거리에 있고, 고요와 혼돈이 공존한다.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진짜 여행이다.”

- 류시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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