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정치를 더이상 피하지 않아 보기로 했다
우선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은 어떠한 정치적인 색깔을 포함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적인 비방이나 논쟁을 원히지 않으니 답글로 해당 내용은 삼가를 부탁드린다.
나는 올해로 27살이다. 어른이라고 하는 20살을 넘은지 한참 지나버렸다.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수 없이 정치 뉴스에서 멀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뉴스와 기사들을 읽다보면서 느낀 점은 , 내 정치 나이는 과연 몇살인가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법과 정치>과목이 개설되어 있었어서 필수적으로 해당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수업에서 배운 내용은 하나도 지금 기억에 남는게 없었다. 진짜 법과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들었던 수업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내신 점수를 위한 공부였기 때문이다.
몇달 전, 한때 꽤 인기가 있었던 <60일 지정 생존자> 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 드라마는 테러로 인해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사망하고, 환경부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면서 나라를 바꿔나가는 내용이다.
나의 식사 메이트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드라마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우선, 해당 드라마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나에게 메디컬 드라마, 사극 수준이었다. 즉 단어들에 대한 뜻이 담긴 주석이 없으면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거국내각, 거부권 등등 드라마를 보면서 키워드를 검색하기가 바빴다.
그날 그렇게 나는 깨달았다. 나의 정치 나이는 초등학생보다도 못하다고.
그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알음알음 정치에 대한 지식을 키워나가던 중,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는 처음에 내가 정치 드라마를 보면서 하도 검색을 해서,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가짜 뉴스로 도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말한 내용으로 나라 전체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국회로 달려나갔고, 군인 경찰들의 앞에 서있었다.
나는 그 뉴스를 보면서 바로 떠오른 생각은, 내가 만약 지금 당장이라도 국회로 달려나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해도 나는 겁이 나서 못나갔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옛날의 시위 현장에서도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1980년대에서 군인이 사람을 쏘겠어 설마?’하고 말이다. 아마 2024년의 그 여의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 아니면 그것과 무관하게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정말 다행이게도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날 이후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일하면서도, 실시간 뉴스를 계속 들으면서 한시도 눈과 귀를 뗄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오늘날 일어나는 일에,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적어도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많았기 때문에 이 모습이 일어날 수 있었을거 아닌가.
내가 책상에 혼자 앉아 혀를 끌끌 찬다 한들, 세상이 바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 하나의 세상을 바꿀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닥치는 대로 유튜브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뭐든 처음 시작할 때 큰 흐름을 먼저 알기 위해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매체로 시작하곤 하는데, 그게 이번에는 유튜브였다. 유튜브에서 정치에 관련된 강의를 찾은게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제작된 강연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이것으로는 모자라서 넷플리스에 접속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관련된 영화들을 모두 섭렵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지 <서울의 봄>이 인기 영화 순위 1위를 등극한 것을 보면, 나만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었나 보다. 극장에서 봤던 <서울의 봄>과 <1987>을 다시 보니, 이런 내용이었구나, 이게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지금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구나 하면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내가 원래 옛날 영화들은 해상도가 떨어지는 그 화면을 보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스타일이라 10년만 전의 영화여도 보지 않는 스타일 인데, <화려한 휴가>를 보지 않는 것은 왜인지모를 죄책감이 들어 보기 시작했다. 그 영화에 앞서 내가 말했던 장면들이 연출 되어 있었다. 연출인지 고증인지 모를 장면이었다. 시위대 맨 앞줄의 사람이 반대편에 서있는 군인들에게 농담따먹기를 한다. 군인도 그 이야기가 웃겼는지 피식 웃는다. 그러고는 시위대들이 애국가를 제창했다. 그 시위대들도 내가 앞서 말한것 처럼 그 군인들이, 그 시대의 군인들이 본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안일한 마음을 잔인하게 짓밟아 버리면서 바로 총격 장면이 나온다. 원래라면 잔인한 장면을 넘겨버리거나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데 그 장면은 도저히 그럴 수 가 없었다.
이제는 티빙에 접속했다.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알쓸신잡>과 <알쓸법잡>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재미난 이야기들 사이로 중간중간 우리의 근현대사 사건들을 다루곤 했는데, 그때는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이야기들이 이번엔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낭독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교수님이 낭독하시는 그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평소에 노벨문학상 수상 뉴스를 보고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었는데, 그 낭독하는 목소리에 나는 서점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한강 작가의 책들이 모여있는 섹터도 있었다. 그리고 소설 부분 베스트 셀러 코너를 한강 작가의 책들로 줄이 세워져 있었다. 그 책을 고르려 다가가니, 나처럼 그 책을 집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서보니, 다들 손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들고 있었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 사람들 모두 나와 비슷한 나이었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출출해서 아메리카도 한잔과 샌드위치를 하나 시켜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강 작가의 세세한 서술들로 인해, 해당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한 감정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유튜브로, 넷플릭스로 봤던 장면들이 그 책의 모습들과 겹쳐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두껍지 않은 책이었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으면서도 두리번 두리번 사람들을 자꾸만 둘러보게 만들었다. 그 책속의 장면들과, 이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가족모임이 있어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원래 우리 가족들의 모임에서는 정치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모두들 같은 정치 성향을 가졌었더라면 대화주제로 선택된적이 몇번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기 떄문에, 정치로 인해 말다툼을 벌이게 되는 것이 싫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 누구도 얼굴을 붉히면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면 모두 안전하고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불안불안한 정치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을 나누는 건설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마디 거들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이전에는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서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야 하면서 넘겼을 거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다.
나의 정치 나이가 떡국을 몇그릇은 먹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