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기숙사에서 만난, 나의 요르단 소울메이트.
하반기 기숙사 배정 발표가 났다. 룸메이트 이름이 어느 국적의 사람인지 모르겠어서 chat gpt에게 룸메이트의 이름을 입력하고, 어느 국적의 친구인것 같은지 추측해 달라고 했다. 이름의 전반적인 구성을 보아 아랍권 국가의 친구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아랍권 국가의 친구라니 ! 지나가면서 아랍권 국가의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본 적은 있지만, 말을 나눠본적이 없던 사람인 나로서는 설레면서도 약간의 긴장이 되는 기숙사 배정 날이었다.
드디어 룸메이트를 처음 만나는 날이 되었다. 아마 룸메이트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어떤 형식으로 첫 인사를 할까 머리속으로 나름 구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룸메이트에게 온 문자는 내 상상 밖이었다.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말투로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스팸 문자인줄 알고 지나치려고 했다가, 내 눈을 씻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틀림없이 룸메이트였다. 요즘 워낙 번역기가 좋으니, 번역기를 돌려서 문자를 보냈나보다 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런 내 예상을 뒤집는 친구였다. 실제로 만나보니 가끔은 나보다도 한국어를 잘하는 듯한 사람이었다. 카이스트에 학부때부터 다녔다고 하니, 어쩌면 나보다도 대전 생활을 잘 알고 있을 듯 하다.
룸메이트는 나에게 요르단에서 자주 먹는 간식을 가끔 나눠주었다. 대추야자부터 한국에 있는 간식과 꽤 비슷한 과자 등등. 어떤 날에는 요르단의 김치 같은 음식이라고 하는 가지를 올리브오일에 절인 것과 같은 음식을 주었었다.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인건 아니었지만, 나에게 그들의 문화를 나누려고 하는 룸메이트의 마음을 먹는 것 같아서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마냥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비스켓을 선물해주었다. 그러고 난 다음날, 룸메이트는 나에게 그 비스켓을 돌려주면서, 마음만 받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뒤에 성분표를 확인해보니 돼지고기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친구가 무슬림인건 알고 있었지만, 그 초콜릿 비스켓에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다. 돼지고기 음식이 아니니 별 생각 없이 고른 내 잘못이었다. 순간 너무 내가 부끄럽고 창피해졌다. 그 친구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선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비스켓 사건 이후로, 나는 룸메이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룸메이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배워보기로 했다. 우선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서 아랍권 국가에 대한 책을 하나 읽어보기로 했다. 거창한 문화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았지만,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싶어서 만화책을 하나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믿고 있는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아랍권 국가들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 양식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 만화책을 읽고 나니, 왜 그들이 하루에 몇번씩이나 기도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종교를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무교인 나로서는 이슬람 종교에 대해서 가지는 그 친구의 마음가짐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대단하기도 했다.
그 이후 만화책을 읽고 나서 룸메이트와 이슬람 종교와 아랍권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기회가 있었다. 룸메이트는 내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편견을 들여다 본 것처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하면 IS 나 테러부터 떠오르는 거 알아요.
그 친구가 나에게 한 이 말이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편견부터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하찮았다. 서양권 사람들이 한국, 중국, 일본을 구분 못하고 묶어버려서 이야기 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면서, 나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런 나의 편견을 그 몇시간 만에 나의 룸메이트가 없애주었다. 어디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친절함과 따스함으로 말이다. 룸메이트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서 나오는 내용에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산다고 했다. 룸메이트와의 이슬람 이야기로 한결 더 가까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출장으로 인해서 아부다비를 방문해야 할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룸메이트에게 SOS를 요청했다. 내가 중동 국가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요르단과 아랍에미레이트가 같은 국가이진 않지만 중동 국가 문화를 좀 알려줄수 있겠냐고 말이다. 룸메이트는 나에게 조심해야 하는 문화와, 맛있는 음식, 사오면 좋을 음식이나 기념품 이야기를 해줬다. 특히 가보면 좋을 곳으로 모스크를 추천해줬다. 그래서 나는 공식적인 일정을 마치고 룸메이트의 추천에 따라서 모스크를 방문해봤다. 그 공간의 향기, 공간이 주는 웅장함, 그리고 그 속에서 들리는 기도 소리 등. 룸메이트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마치 룸메이트의 세계로 내가 걸어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룸메이트에게 모스크에 갔던 경험이 너무 좋았다고,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 분들이 입장할때 꼭 머리를 가려야해서 후드를 쓰거나, 머리를 가릴 수 있는 스카프를 착용해야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했더니, 룸메이트가 나에게 꼭 나중에 선물로 스카프를 주겠다고 말했다.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
어느 날에는 룸메이트와 연구실 일정을 마치고 같이 저녁을 밖에 나가서 먹자고 했다. 룸메이트와 어떤 메뉴를 먹을까부터 사실 고민이 많았다. 나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룸메이트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룸메이트에게 먼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물어봤다. 근데 그 친구의 단골 음식점이 이미 몇개 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단골 음식점이 되었냐고 물어봤는데, 우선 음식이 종교적으로 먹지 못하는 음식이 아니어야 했다. 그래서 국물 음식인 경우에는 육수를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도 다 확인했던 식당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메뉴는 마라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마라탕집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걸어가지 않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되는 한국이지만, 이 친구에게는 가게 마다 어떤 음식이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하는 그런 것들이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생소한 이슬람이니까 말이다.
룸메이트와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밤들이 있다. 그건 바로 룸메이트에게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고, 룸메도 나에게 고민들을 털어놓는 밤이다. 어떤 날에는 내가 퇴근하고 방에 왔는데 룸메이트가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날이 있었다. 룸메이트의 연구실 생활에서 어떤 일로 인해서 속상해서 울고 있던 날이었다. 나도 사실 완벽하게 연구실 생활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위로와 조언으로 그날 밤을 보냈다. 또 어떤 날에는 내가 박사를 진학할지 아니면 취업을 할지 고민으로 가득해서 퇴근을 한 날이 있었다. 룸메이트는 룸메이트 나름대로의 의견을 말해주면서 우리는 또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과 룸메이트의 서투른 한국어 실력이 합쳐지면 우리는 못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고민들 들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룸메이트가 내 고민을 들어줬던 이야기를 연구실 친구에게 하게 되었는데, 그 얘기를 한참 듣더니,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너무 웃겼다.
근데 너.. 룸메이트 요르단 사람이라고 했었지 않아?
근데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
내가 다음 학기에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기숙사를 떠나야 하는 날이 되었다. 룸메이트는 이제 석사를 졸업하고 요르단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같이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퇴근하고 방에 돌아오니, 내 침대에는 선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선물 봉투에는 한글로 꾹꾹 눌러 적은 짧은 편지가 쓰여 있었다.
룸메이트는 내가 항상 룸메이트의 문화와 전통에 관심을 가져줬던 호기심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글을 적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선물은 이전에 내가 너무 멋있고 이쁘다고 했던 스카프가 들어있었다. 정말 내가 스쳐지나가듯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선물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라마 인형이 들어있었는데, 내가 정말 좋다고 했던 룸메이트의 향수를 인형에 뿌려서 선물해주었다.
그리고는 나를 요르단에 초대해주었다. 한번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던 나라지만, 이제는 꼭, 제일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 꼭, 만나 ! 요르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