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은 실패에 취약하다?
이제 벌써 카이스트에 입학한지 1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 학교를 다니면서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유독 실패 관련 대회를 많이 연다는 것이었다. 망한 과제 자랑대회, 실패 에세이 등 끊임없이 학교에 포스터며 전단지며 실패 관련 대회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이 학교는 유독 왜이렇게 실패 관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내가 카이스트에 입학하기 전까지만해도 이 학교에는 천재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그 누구도 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고, 영재고를 졸업해서, 그것도 조기 졸업해서 20살이 되기 전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 마저 조기 졸업을 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는 천재들. 그런 사람들이 발에 채이는 곳이었다.
한때 뉴스에 많이 나올정도로 많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을 하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나름 각자 공부를 잘하다는 (각 학교에서 방귀 좀 꽤나 뀐다는 ) 학생들이 모여 이 학교에 와서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니 좌절하는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내가 어렴풋이 짐작하건데, 그러한 마음에서 이 학교는 실패 대회를 열기 시작한듯 하다.
실패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것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공유하고 자랑하자!
이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더욱 많은 실패를 경험하는 듯 하다. 나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천재여서 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1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느끼는 건, 이 학생들이 천재여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일찍 그리고 더 많이 실패를 해봤기 때문이라고 자신한다.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고 수학을 배우고 과학을 배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많은 올림피아드와 대회를 나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코딩이 잘 되지 않아 수많은 ‘삽질’의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그렇게 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 갓이다. 지금도 내 주변의 연구자들을 보면 논문이 리젝(reject, 논문 게제 거절) 되거나, 연구 결과가 바라던 대로 나오지 않으면 땅만 보고 걷는 날들도 있다.
또는 귀엽게도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소주 한잔 마시자며 울먹거리는 친구, 소개팅을 나갔는데 까였다는 또래에 맞는 실패담도 하기도 한다.
이 천재 친구들은 어떻게 이 감정을 다스리고 있을까 한번 지켜봤다. 내가 느꼈을때는 이 친구들은 실패의 감정을 온 마음을 다해 맞이 하는 기분이었다. 마음껏 슬퍼하는 기분이랄까. 연구에 실패 했을때, 논문이 탈락했을때 누가봐도 그 감정이 밖으로 티가 난다. (이럴땐 굉장히 어린 아이들 같고 귀엽기까지 하다.) 발도 동동 구르고, 온 동네 사람들한테 속상하다며 이야기하고, 그냥 집으로 도망쳐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술고래 같이 술을 퍼먹기도 하며, 하루 종일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카이스트에 보면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이유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매우 이성적인 감정으로 돌변한다. 자신의 연구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끈질겨도 되나 싶을정도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갈아넣는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연구실의 불이 켜져 있다. 이 시간에 출근한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싶어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냐 물으면 퇴근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내가 요즘 빠져있는 강철부대 여군 특집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 팀이랑 우리 팀이랑 똑같은 거 같은데,
왜 자꾸 지지?
그 대결에서 계속 지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 처럼.
그 미묘한 차이. 카이스트에 천재들이 많도록 하는 그 차이는 바로,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