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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리듬이 엇나갈 때

재즈와 결혼생활의 공통점

by 펭귄 박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서로 박자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연주자들이 악보에 있는 음을 정확히 연주하더라도 결코 좋은 음악이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휘자가 존재한다. 지휘자는 아무 음도 내지 않고 모두 앞에서 팔만 휘저을 뿐이지만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팔을 보고 박자를 맞춘다.


나는 결혼생활을 한 곡의 음악에 비유하고 싶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생활이라는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다.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연주하는 연주자. 그런데 이 연주에는 지휘자가 없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음악이라면 그 음악은 재즈일 것이다. 재즈 연주자들은 최소한의 약속된 멜로디 위에서 즉흥적인 연주를 펼친다. 멋진 재즈 연주를 들으면 이런 즉흥적인 연주가 서로를 보완하며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되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와이프는 연애하면서 참 많이도 싸웠다.


우리의 연애 생활을 곰곰이 되짚어보니 많은 경우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할 때 일상적인 대화가 싸움으로 번진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전화나 카톡으로 대화를 할 때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오해가 생기곤 했고, 오해는 싸움을 낳았다.


신기한 것은 운전 중에 대화를 할 때도 싸움이 자주 발생했다는 점이다. 운전자와 동승자는 바로 옆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운전자(대부분 나)는 전방을 주시하느라 상대방을 살피지 못한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도 보통 앞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다가 토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싸움은 결혼 후에 많이 줄어들었다. 더 많은 시간 서로 붙어 지내다 보니 오해의 소지를 줄어들기도 했거니와 오해의 불씨를 조기에 꺼트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에는 결혼생활 나름의 역경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

'띠링~' 농구팀 단체 카톡방에서 알림음이 울린다.

'오늘 8시까지 ㅇㅇ체육관입니다. 유니폼 블랙 챙기세요~!'


그와 거의 동시에 와이프한테도 카톡이 날아온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래?'


아뿔싸. 오늘 농구하기로 한 것을 와이프한테 말하는 것을 깜빡했다.

와이프에게 조심스럽게 농구 얘기를 꺼낸다. 와이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다음 카톡이 ‘오랜만에 치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와이프에게 사과하고 저녁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한다.


2.

나는 퇴근하면서 와이프에게 연락한다.


'퇴근했어? 오늘은 저녁 집에서 먹게 먼저 들어가서 저녁 준비할게.'


저녁을 집에서 먹는 날이면 와이프보다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는 내가 먼저 도착해 음식을 준비하는 편이다. 그때 와이프에게 답장이 온다. '응, 근데 조금 늦을 거 같아,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


나는 와이프에게 알겠다는 답장을 보낸 후, 집에 도착하여 음식을 준비하며 와이프의 퇴근 여부를 재차 확인한다. 와이프는 그제야 야근을 해야 될 거 같다며,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한다.




위의 시나리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함께 살다 보면 이렇듯 리듬이 엇나갈 때가 있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은 나에게나 와이프에게나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결혼생활과 재즈의 비유로 돌아가보자. 재즈 연주자들은 지휘자에 의존해서 박자를 맞추는 대신, 서로를 살피며 연주를 한다. 오랜 연애와 신혼의 기간을 거치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혼생활 또한 서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와 와이프는 이런 경험을 통해 서로를 살피며 리듬을 맞추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회식으로 인해 저녁을 밖에서 먹게 되면 상대방은 밥을 어떻게 챙겨 먹을지 살피는 것. 주말에 친구와의 약속을 잡게 되면 상대방도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사전에 알려주는 것. 같은 맥락에서 당일 약속은 웬만하면 잡지 않는 것. 혹자는 결혼생활하면서 눈치를 본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것은 서로와 리듬을 맞추는 것이다.


나와 와이프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대화를 할 때 싸움이 일어났듯이, 서로를 살피지 않고 연주를 하는 연주자들은 서로 리듬이 엇나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리듬이 엇나갈 때, 연주는 음악이 아닌 소음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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