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5월 중순의 기록
본격적인 봄!
추적추적 봄비가 왔다.
그 사이 폈던 앞서 폈던 꽃들은 지고 푸른 잎사귀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밤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게 퍼져온다.
일주일 사이 집 정원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겨울에 처음 봤을 때 을씨년스럽다고 생각했던 큰 나무는
나뭇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곤 듬직한 모습으로 변했다.
담장이라고 보기엔 빈약한
나무막대를 꽂아서 길과 집 사이를 구분하던 담장은
담장 옆 나무들에서 돋아난 잎으로 모조리 가려졌다.
길에 지나가던 사람이 항상 보였는데
이제 더 이상 누가 지나가는지 자세히 보고 있지 않고선 잘 보이지 않는다.
날씨는 갑자기 20도를 넘나 든다.
반팔에 얇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스웨덴 패션이다.
반팔과 얇은 패딩조끼라니
일교차를 실감할 수 있는 실용성을 추구하는 패션이다.
더운 낮에는 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끈 나시를 입고 있다.
흠. 그렇게까지 따뜻하진 않은데.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다니는 아저씨를 몇이나 봤다.
왜? 아저씨들이 웃통을 벗고 산책을 하는가.
이게 그들의 햇볕을 쬐는 방식이라고?
비타민D가 축척이 되는 거였나?
난 아직 얇은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여름옷을 입고 있다.
봄여름에 비타민D를 축척해서 겨울에 사용하려고 하는 거 같다.
마당엔 잔디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새벽 4시 반이면 밝게 해가 떠서 인지
쑥쑥 자라 올라오는 게 눈에 보인다.
이젠 마당 잔디를 밟으면 푹신하다.
여하튼 따뜻해지니 모든 게 좋다.
초록은 아름답다.
꽃이 막 피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과 마당에 나가 구경을 했다.
나무에 핀 꽃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향기를 맡아보고
바닥에 핀 꽃에도 코를 박고 향기를 맡았다.
작디작은 꽃이지만 희미하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비가 온 다음이라 촉촉이 물방울을 머금은 잔디 사이에서 발견한 달팽이도 만져봤다.
금세 껍질 안으로 몸을 숨겨서 다시 곱게 놓아주어야 했다.
아이들은 튤립은 해를 보면 꽃봉오리를 활짝 열고
해가 없어지면 꽃봉오리를 굳게 닫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민들레는 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머리를 트는 게 눈에 보였다.
민들레가 많으면 잔디가 자라게 어렵단 사실을 알게 되어
민들레가 번지지 않게 올라오는 꽃을 꺾어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어제 꺾은 만큼의 민들레 꽃이 다시 펴서 모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마당의 변화를 볼 때마다 아이들에게 공유하니
아이들이 날 마당 가이드라고 불러줬다.
주말엔 한국에서 한강 가서 쓰던 야외용 의자를 내어 놓고
앉아서 햇볕을 쬐며 책을 읽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책을 읽는 것이 꽤나 즐겁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물론 벌레가 싫은 둘째 아이는 조그만 벌레라도 보인다 싶으면
호들갑을 떨며 집으로 들어왔다. 한
강공원에서 사람들과 공유하던 마당에서
나만의 마당이 생겼다는 것에 꽤나 부자가 된듯하다.
덕분에 꽃도 보고 달팽이도 보고 나무도 보고 오래간만에 날씨 덕분에 행복한 날들이다.
지금 6월 25일의 기록
그동안 바빴다.
5월 말부터는 아이들의 학기 마무리로 학교 행사가 많았다.
스포츠 데이며 피크닉이며 이틀이 멀다 하고
챙겨가야 할 것들 참석해야 할 일들에 분주하게 보냈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셋이 떠나는 여행을 떠났다.
학기 마무리와 여행 준비로 매일이 바빴더니
한숨 돌리니 이미 미드소마가 지난 오늘이다.
집집마다 담장에 라일락이 피어 라일락 향기가 진동하던 시기가 지나가고
그 사이 스웨덴은 완전히 여름이었다.
쨍하고 뜬 해는 하루 종일 강하게 내리쬐어 눈이 부시고
아이들과 나는 점점 까맣게 탔다.
매일이 날이 길어져 밤 10시에도 밝을 때 잠을 청해야 하더니
23일인 미드 소마 날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어두워지고 3시쯤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당은 잔디가 무럭무럭 자라 잔디를 주기적으로 깎아줘야 했다.
잔디 깎는 기계로 다 밀리지 않은 마당 끄트머리에 잔디들이 길게 자랐는데
마치 청보리 같은 느낌이다.
잔디의 새로운 발견.
날씨가 좋은 건 참 좋은 일이지만
비다운 비가 오지 않은지는 꽤 된 느낌이다.
5월부터 따지더라도
비가 온 날은 5일도 되지 않는 거 같다.
잘은 모르지만 가뭄일 것이다.
한 달 사이 미친 듯이 번식하던 민들레는 다 지나가고
자잘한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블루베리도 꽃이 피고 라벤더같이 생겼지만
전혀 향이 나지 않는 보라색 꽃을 피운 식물도 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한 달에 미드 소마까지 지나고 보니
좋았던 시간이 후딱 지나간 것 같아 아쉽다.
미드 소마가 지났다는 건 이제 낮은 짧아지고 겨울이 다가온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지난겨울 끝나지 않던 추위가 생각나 조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추워지기 전까진 스웨덴의 해를 즐겨야 한다.
매일 글 쓰는 브런치 작가님들에 경의를 표하며 나도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