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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Sep 06. 2024

이제부턴 일곱이야.

인스브루크에 스왈로브스키 박물관이 있데!

 날이 흐리다. 남편이 처음부터 여행을 같이 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출근을 위해 먼저 돌아간다니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아침부터 구름이 낮게 깔린 잘츠부르크의 하늘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늘도 소시지와 치즈를 파는 트럭이 숙소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시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숙소를 뒤로하고 다시 잘츠부르크 시내로 왔다. 남편은 여기서 12시 기차를 타고 뮌헨으로 가서 6시 비행기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제 돌아갈 그를 위해 어제 보지 못한 모차르트 생가도 가고 구시가지도 한 번 더 걸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속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이 마차를 타고 노래 부르면 돌던 분수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분수 앞에서 이제 곧 헤어질 텐데 다정하게 커플 사진을 찍으라는 주문에 13년 된 찐 부부 케미로 다정과 거리가 먼 충돌 같은 포즈로 사진을 남겼다. 사진에 표정은 세상 뚱하지만 마음은 섭섭하기도 야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를 보내고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잘츠부르크를 뒤로하고 인스브루크로 향했다. 이동시간 2시간 40분가량 차 두대에 형님과 언니가 운전사로 앉았다. 이 여행을 망설였던 장거리 운전 경험부족인 나를 배려해 주셨다. 6시간이나 걸리는 인스브루크에서 비엔나로 돌아가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셋이 돌아가면 운전하기로 했지만 오늘은 그냥 두 분이 하시겠단다. 흩뿌리는 비 사이로 파란 suv 두 대가 나란히 고속도로를 달린다. 언니 옆에서 지루한 운전에 육포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던 때다. 잘츠부크르와 인스브루크의 중간 지점 정도 되었을까. 오스트리아와 맞닿은 독일의 어느 끝자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심각하다.


"왜? 무슨 일인데?"

"저기.. 생각해 보니 집열쇠가 없어..."

"뭐어???"


아. 이렇게 가족이 여행도중 찢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아니, 현실은 둘 다 바보천치인거지.)

각자의 열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아니, 내가 흐릿 하늘 어쩌고 남편이 가서 섭섭하고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어.)

그가 집에 갈 때 내가 챙겨야 하는 건 무엇이었나를 생각했어야 했다.


집을 잠그고 온건 나.

집에 먼저 가야 하는 건 그.

 남편이 지금 우리가 어디인지 묻는다.


"아니,, 우린 지금 인스브루크로 가는 길인데.."


 언니가 옆에서 이야기한다. 저기 앞에 뮌헨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고. 차를 돌리려면 지금이야!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뮌헨으로 북으로 올라가는 기차였다면 우리는 잘츠부르크에서 인스브루크로 동에서 서로 가는 중이었기에 그 중간에 뮌헨으로 빠지는 길이었나 보다. 우리는 헛웃음을 웃었다. 


 "아니에요. 언니,, 우린 그냥 가던 길로 가요."


 차마 차로 뮌헨 공항까지 가자고 할 순 없었다. 남편은 이미 우리가 인스브루크로 가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 앞 호텔에서 머물겠다고 했다. 난 평소 뒷문을 잠그는걸 가끔 깜빡하는 나 자신이 설마 긴 여행에 그런 짖을 했다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질 테지만 일단 집에 가서 혹시 뒷문이 열렸나 확인해 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우리 부부의 민낯을 보인 거 같아 매우 부끄러웠다. 함께 여행하기에 매우 칠칠치 못한 가족이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까. 방금 전까지 조잘거리다가 급 다운된 나를 알아채셨는지 우리도 여행하다가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며 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당했던 썰을 푸신다.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책하게 되고 그런 위로의 말들.


 '아니 언니, 그건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저희는 그냥,, 둘 다 바보천치였던 거잖아요..'속으로만 생각했다. 말로하면 내가 너무 바보같을거같아서.. 하지만 언니의 실수담을 풀어놓으면 나의 머쓱함에 균형을 맞춰주신 덕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되었다. 섭섭하긴 뭐가 섭섭해. 정신 차리고 지금부터 내 앞가림을 잘하자. 남편이 가서 섭섭한 마음은 티끌도 남지 않고 싸악 사라져 버렸다. 




 인스브루크로 가까워질수록 산맥이 높아지고 있었다. 뾰족하고 웅장한 산들이 흰 모자를 쓰고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산맥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는 웅. 장. 하. 다. 였다. 알프스 산맥의 위력인가.


 오늘은 이동이 제일 중요한 일정이긴 했지만 인스브루크 근방에 스왈로브스키 박물관이 있다길래 오후에 스왈로브스키 본사에 위치 안 박물관에 구경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 조금 달리다 보니 스와로브스키 공장이 보인다. 저기가 본사인가 보구나. 조금 더 가니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입구부터 블링블링했다. 어두운 조명에 반짝이는 크리스털의 향연에 눈이 어지럽다. 크리스털과 조명 그리고 거울이 어우러져 반짝임이 극대화되었다. 무수한 거울을 벽면에 붙여 만들어진 거울 돔, 크리스털을 빼곡하게 붙인 의상들, 어마어마한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차례로 구경했다. 이러다간 눈이 멀어버리겠다 싶을 즈음에 통로를 지나면 밝은 조명에 스와로브스키 샵이 나온다. 여자들은 또 한 번 정신을 읽고 반짝이는 것들 중에 뭐가 나랑 제일 잘 어울릴지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 멀리 본사까지 찾아온 이들에게 주는 해택일까. 할인폭이 생각보다 좋다. 둘째가 자그마한 팔찌를 골랐다. 그래 하나 사. 저기서 언니는 귀걸이 목걸이 세트를 골라온다. 오 잘 어울려요. 응 하나 사놓으려고.

 

 여기 실내 놀이터가 있데. 옆건물로 이동해 보니 아이들의 와글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프다. 통유리로 된 5층건물에 아이들 놀이터가 있다. 1층에서 5층까지 그물과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면 층마다 내려서 놀 수 있었다. 트램펄린 한층, 그물 한층, 한 층의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으니 아이들이 밑에서 그물로 올라로면 3층 정도의 높이는 되어 보인다. 오늘은 날이 흐리지만 날씨가 좋은 날은 웅장한 산들을 배경으로 두고 그물 타기를 하면 저 설산을 오르는 기분이겠다. 처음 보는 형태의 놀이터에 아이들은 이미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와르르 뛰어가버렸다. 어른들은 계단으로 올라가 보니 곳곳에 벽면에 붙어 앉아있는 엄빠들이 보인다. 우리도 잠시 앉아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쉬었다. 아이들의 와글거리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때쯤 우리는 아이들을 몰아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는 아기자기한 곳이었어. 내일은 드디어 저 앞에 보이는 설산, 우리를 인스브루크까지 이끌었던 알프스 산맥에 올라간다. 그렇게 우리는 오스트리아 서에서 동으로, 인스브루크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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