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다시 창밖을 봐도 눈앞을 딱 가로막고 하늘가까이 닿아있는 산이 신기하기만 하다.
4월이어서 눈이 저렇게 많은 걸까. 아니면 일 년 내내 저렇게 쌓여있는 걸까.
노르트케테산은 알프스 산맥 북동부에 위치해서 인스브루크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알프스 산맥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려고 서 있는데 우리를 제외하곤 모두 스키를 짊어지고 있다. 스키부츠까지 신고서 리프트를 타는 복장으로 온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가 스키장이기도 하구나 깨달았다.
말로만 듣던 알프스에서 스키 타기군.
스키 장비를 든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케이블카에서 내렸다. 정상은 4월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겨울이었다. 우리가 운동화로 눈을 밟고 밖으로 나가는 동안 스키어들은 스키부츠로 어그적 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이정표 앞에서 한 남자가 멈췄다. 스키어 무리를 지켜보던 우리는 그가 왜 멈췄지라며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스키 슬레이트를 어깨에서 내려 착착 끼우고는 입가에 미세한 미소를 머금었다. 짙은 색 고글 뒤로 우리를 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치 나 한번 볼래?라는 표정이었다. 순식간에 뒤를 돌아 가파른 절벽에 가까운 비탈길을 스키 에지로 내려가버렸다. 입이 떡 벌어졌다. 작은 팻말은 알고 보니 스키 코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순간 모두 경악했다. " 스키날로 내려갔어!" 놀라서 다시 한번 경사를 내다봤다. 그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너무 놀라 서로 감탄사만 주고받았다.
산은 높디높았고 눈은 미끄러웠다. 우리는 구름 속에 있었다. 구름이 지나가면 앞이 보이고 구름 속에 들어가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절벽 앞에서 여긴 어떤가 궁금해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이 떨어질라 내려다보지 말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짧디 짧은 마치 나막신처럼 생긴 생전 처음 보는 무언가를 스키부츠 밑에 깔고 오는 젊은이 세 명이 우리가 내려다보던 절벽 앞에 앉았다. 세상에. 절벽이 아니었어. 여기도 스키코스야!
나도 모르게 젊은이들에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네 여기 그 스키로 내려갈 거야?"
"응 여기 내려갈 거야. 우리도 어제 이거 첨 타봤어."
"어어,, 살아서 돌아와!!"
우리의 응원을 들으며 젊은이 셋이 출발했다. 처음엔 거의 엉덩이로 슬금슬금 내려가다가 조금 경사가 덜해진 곳에서 한 명이 일어선다. 드드드득.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우리가 절벽이라 여겼던 모든 곳이 스키코스라니. 정상을 구경하러 올라온 우리에겐 그들이 마치 목숨을 내어 놓고 스키를 타는 거처럼 보였다. 아무리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보는 것이 죽기 전 버킷리스트라도 이들을 보고서는 탈 용기가 더욱 생기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패기란.
우리는 구름이 지나간 틈을 타 웅장한 설산들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었다. 형님의 특기가 나왔다. 얘들아! 저기 정상 가볼 사람! 둘째가 나에게 자기는 발이 너무 미끄러워서 한 발도 앞으로 못 나가겠다고 엄살을 부렸다. 엄살도 정도껏이어야지. 줄을 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 딸에게 그럼 신발을 한쪽씩 갈아 신자고 제안했다. 한쪽씩 신발을 신은 나는 깜짝 놀랐다. 딸의 신발창은 스케이트나 다름없었다. 러닝화는 이렇게 미끄럽구나. 내 신발은 방한화여서 발밑이 미끄럽지 않은 것이었다. 애들 둘 다 색깔만 다르지 같은 신발인데?
저기 앞에서 장갑도 끼지 않은 두 손을 발처럼 사용해서 엉금엉금 정상을 향해 고군분투하면서 올라가는 아들이 보였다. 쟤가 갈 수 없는 신발로 올라가고 있구나. 다급해진 나는 소리쳤다. 내려와!! 그 신발로 못가!! 앞으로 가지도 뒤로 오지도 못하는 아들이 눈앞에 보인다. 네발로 나아가는 아들은 뒤로 돌아오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내려와! 내려와! 다급한 엄마의 외침이 닿는지 닿지 않는지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리쳤다. 천성이 겁이 많은 나는 순발력도 운동신경도 떨어진다. 스케이트 같은 신발로 어디를 올라간단 말이더냐. 화가 났다. 얼른 뒤로 돌아서 내려오라고!! 하지만 한참 동안 옆으로 서서 두 손 두 발로 땅을 짚고 있던 아들은 결국 앞으로 나가기를 선택했다. 눈앞에서 멀어지는 아들을 보며 이제 저 녀석은 내 손을 떠난 거야. 기어이 엄마 말을 안 듣고 마음대로 하는구나. 어쩔 수 없지. 허세 가득 사춘기 소년이구만. 나는 알려줬다. 갈 수 없는 신발이란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내가 이 노르테케 정상에서 너무 소리소리 질렀구나 깨달았다. 신발 한쪽씩 나눠 신은 딸과 나, 언니만 남겨두고 나머지들이 정상을 향해 떠났다. 남겨진 멤버는 잘츠부르크 산 정상에서 바람과 사투할 때도 뒤쳐졌던 멤버였다. 언니도 언니네 아이들을 걱정하고 나도 아들이 걱정되었다. 형님은 왜 애들한테 자꾸 끝까지 올라가 보자고 하는 건가 싶은 원망이 들었다. 아니 그리고 이제 아들은 엄마말은 귓등으로 안 듣는구먼. 사춘기네 사춘기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셋이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멀어져서 정상을 넘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4명이 다시 시야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건 올라가는 거보단 쉬운가 보다. 말도 안 되는 러닝화를 신고 올라간 아들은 역시나 엉거주춤 네발로 내려오는 중이다. 다녀온 이들에게 해줄 말이 무엇인가. 잘했다. 대단하다. 정상을 정복했구나?!
네 발로 힘겹게 내려오던 아들의 표정은 의외로 의기양양했다. 형님이 칭찬해주셨나 보다. 정상을 정복한 자. 영혼없이 우리 집 대표로 네가 정상을 정복하고 왔구나라고 말했다. 아들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에 남긴 인스브루크 정상 팻말을 보여줬다. 아들의 허세가 살짝 가미된 그 표정이 목이 쉬어라 내려오라고 소리치던 엄마의 말을 외면한 거 같아 얄미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게 근데 왜 내려오라는데 안 내려왔냐고 말해버렸다. 발끈하며 엄마는 내가 대단하지 않냐고 받아치는 아들을 보자니 아차. 지금은 가만히 있어야겠다.
정상에 다녀온 아이들은 바지며 신발이 꽤 젖어서 일단 숙소로 다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오후 일정을 나가기로 했다. 분에 넘치게 짜릿한 노르트케테 정상을 뒤로하고 우리는 일단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장관을 보러 간 곳에서 자연에 도전하는 스키어들을 마주한 충격과 공포, 정상을 가겠다는 아들을 향해 걱정과 분노를 쏟아낸 나는 숙소에 들어가자 모든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침 일찍 나섰는데 숙소에 오자 이미 오후였다. 시간이 꽤 지난 것이다. 들어오는 길에 사 온 햄버거로 점심을 먹고 있으니 한없이 노곤해졌다. 게임하는 아들 옆에 가서 조용히 물었다.
"너 엄마가 내려오라고 하는 거 안 들렸어?"
"들렸어."
"근데 왜 올라갔어? 신발 진짜 미끄럽지 않았어?"
"...내려올 수가 없었어..."
"아..... 너무 미끄러워서?"
"어.. 그 자리에서 한참 생각했는데 거기서 내려가는 거보단 올라가는 게 더 쉬웠어."
미안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있었구나. 고민하느라.
알지도 못하면서 내려오라고 한 내가 부끄러웠다.
"고생했어. 진짜 네가 정상에 다녀와서 얼마나 다행이야~ 정말로 우리 집 대표였네~"
그제야 아들 표정이 편안해졌다.
노곤한 기분으로 쉬고 있는데 계획성 있는 언니가 말한다. 인스브루크 시내를 보려면 3시 전엔 나가야지. 정신이 번쩍 든다. 30분만 더 있다가 나가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럽시다.
아담한 인스브루크 시내는 빙하수 흘러내려온 하천과 높다란 알프스 산에 둘러싸여 있다. 알록달록 길쭉한 모양의 건물 뒤로 뾰족한 설산이 파라마운트 영화의 인트로를 연상시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쭉한 건물보단 산이 더 높이 있다. 한적한 공원에 앉아 멋진 산을 배경으로 들꽃을 뜯어 서로의 귀에 꽂아주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다시 한번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나라에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찔한 스키부터 노란 계란꽃까지 그렇게 또 하루 여행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