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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Oct 11. 2024

로맨틱 비엔나

여기가 비포 선라이즈!

 나에게 비엔나하면 제일 먼저 비포 선라이즈가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설레는 설정 만으로도 이미 로맨틱 과다. 게다가 에단호크는 얼마나 귀여운가. 한참을 잊고 지냈던 그 영화가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생각났다. 반듯한 상아색 건물에 간결하지만 고풍스러운 창문 장식, 세월의 색이 한 겹 입혀진 청동색 조각상과 지붕 그리고 거기에 마지막 한 끗을 더하는 금빛 장식. 왕가의 세월이 도시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에서 사랑에 빠지는 20대 청춘이라니.


 혼자서 한껏 비엔나의 매력에 빠져 있는데 아이들이 저기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자고 팔을 이끈다. 우리는 아침부터 나와서 링안쪽 시내를 어슬렁 거리며 앞 뒤 두 그룹으로 나눠져서 걷고 있었다. 구경하며 걷다 보니 상아색 건물들 사이에서 삐쭉 솟 슈테판 대성당이 눈앞에 보인다. 바늘 저리 가라 할만한 뾰족한 지붕을 자랑하는 거대한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카메라는 성당을 다 넣으려니 요리조리 돌려야만 했다. 성당 지붕은 타일로 흰색 회색 초록 검정을 사용해서 지그재그 문양이 수 놓여 있어 인상적이다. 컬러풀한 성당 지붕이라니. 성당 안은 더 화려했다.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각상에 영혼을 불어넣은 듯 천사가 잠시 조각상 안에 들어갔다 나간 걸까 싶다. 기다란 창문에 색색깔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아마 시절 미사를 보러 오면 웅장함에 압도되어 마치 천국에 들어오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기 초를 꽂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겠단다. 아 저게 단순히 소원 비는 초는 아닌데... 각자 초를 꽂겠다고 돈을 달란다. 망설이는 나를 보고 그럼 하나만 꽂게 해 달란다. 결국 초를 하나 얻어내곤 넷이서 초 앞에 서서 각자 소원을 빈다. 진지한 그 모습에 수백 년 전에 누군가도 초를 꽂고 저리 간절히 신께 요청했겠지.


 보통의 소녀가 기도하는 순수한 모습의 친구 옆에 내 딸을 보아하니 귀엽기도 하고 기가차기도 하고. 제발 초를 꽂게 해달라고 가장 간절히 애원했던 우리 둘째는 두 손을 깍지껴 꽈악 쥐고는 이마에 턱 하니 갖다 붙였다. 너무 꽉쥔 두 손은 두 주먹 불끈 느낌이고 눈은 또 어찌나 질끈 감았는지 너무 심각해서 내 입가에 피식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항상 입으로만 하는 자신의 다이어트 성공을 기원하는 게 아닐까. 우리 가족 아무도 모르는 줄 알지만 다 알고 있는 둘째의 항상 같은 소원.


 어른들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쉬이고 아이들은 기도를 한답시고 잠깐 떨어져 있었나. 어른들 쪽으로 아이들이 온다. 신나는 목소리로 어떤 할머니가 자기들에게 칭찬을 했단다. 잠시 안 본 사이 꽂아놓은 촛불을 건드려서 할머니께 한소리 들은 건 아닌지 싶어 무슨 소린지 들어본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들이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닌듯하다. 촛불 앞에 두 손 모은 아이들이 귀여우셨는지 축복해 주신 말들이었다. 지나다가 다시 종알거리는 아이들을 알아본 온화한 인상의 할머니는 나와 눈을 맞추시더니 아이들이 참 천사 같다고 해 주시며 '바이" 하고 가신다.


 성당을 나와 교회를 구경했다. 교회도 화려하긴 매 한 가지. 교회를 나왔더니 이때다 싶게 다그닥 다그닥 마차도 한대 지나간다. 그래 비엔나, 고풍스럽고 화려한 도시라고 인정해 줄게.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고풍스러움을 알까.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아까부터 카페를 지날 때마다 잔뜩 탑을 쌓아 진열해 놓은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커다란 머랭과자다. 또 시작이다. 카페를 지날 때마다 사줄 건지 물어본다. 꼭 하나씩 맛보고 싶단다. 형님과 언니는 못 들은 척 앞으로 가신다.


 그래 먹어라. 분명 맛도 별로 없을 거고 심지어 달아서 다 먹지도 못하고 결국에 반은 버려질 거 같지만 혹시나 여기서 말곤 또 못 볼지도 모르니 이 왕머랭의 맛을 보자. 결국엔 나마저도 자꾸 보이는 이 과자의 유혹에 넘어갔다. 흰색 하나 노란색 하나 커다란 머랭을 들고 맛을 봤다. 역시나 맛은 그냥 그렇다. 이놈의 식탐이 항상 문제다. 심지어 아이들이 각자 들고 좀 뜯어먹더니 다시 내 손으로 다 돌아왔다. 버리지도 먹지도 못한 채 애들에게 내쳐진 머랭을 한참이나 들고 다녔다.



 오스트리아가 사랑하는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가운데 두고 양 옆에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워낙 방대한 양의 왕가 수집품이 있는 곳이라 아이들과 다 둘러보기엔 역부족이어서 주요 코스만 족집게로 찍어주는 투어를 신청해 뒀다. 방대한 조각과 명화 사이에서 미술사의 흐름을 알려주실 가이드님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오기 전부터 기대하던 브뤼헐의 바벨탑을 봤다. 바벨탑 속에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이 작지만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져 언젠간 무너져버릴 거 같은 바벨탑에 인간들의 사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 이야긴 이 하나뿐인 듯 하지만.


 아이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한참이나 미술사 역사의 맥을 짚던 유식한 가이드님이 갑자기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신다. 자, 여러분 여기서 볼일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찾아보세요. 갑자기 고도의 집중력으로 그림을 탐색하던 아이들이 찾았어요! 여기요 여기! 꺄르르르! 아 정말이네! 뭐야 왜 그림에 이런 거까지 그려 넣었어! 자자 잘했어요. 다시 집중하고 다음 그림을 봅시다.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질 때마다 특별처방을 내어 놓으신다. 아르침볼도에 바다생물과 과일로 구성된 인간의 얼굴에서도 아이들은 서로 자신이 아는 과일과 물고기를 찾는데 열을 올렸다. 오늘 투어에 참석한 어린 친구들이 잘 집중해 줘서 너무 대견하다는 가이드님의 칭찬으로 투어가 끝이 났다. 노련한 가이드님이시다.


 미술사 박물관에 가면 꼭 들리라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카페에 앉아서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다. 종일 화려함에 취한 듯 카페 천장과 기둥을 둘러보는데 이젠 약간 눈이 어질어질하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화려한 이곳에서는 이미 나도 화려한 장식의 중세시대 옷이라고 입고 있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아한 미소의 웨이터가 하얀 우유 거품이 올라간 커피를 건넨다. 한 모금 마시자 아차, 난 40대 아주미였지! 정신을 차려본다. 그나저나 비엔나는 커피도 맛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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