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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Oct 04. 2024

다시 비엔나로

크루즈 모드로 운전하기

 떠나려는 우리를 아쉬움 하나 없이 보내주려는 듯 인스브루크의 아침이 흐리다.

오늘은 이 여행을 망설이게 했던 바로 그날이다. 인스브루크에서 비엔나까지 이동이 대부분인 날. 40이 되도록 운전할 일이 많지 않아 장거리 운전에 나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이야기에 괜찮을까 라며 함께 여행 가자는 제안을 더욱 망설이게 했던 그. 날.


 일곱이 된 우리 어른 셋은 여덟일때와 마찬가지로 매일 저녁 숙소에 돌아와서 아이들이 게임이나 유튜브를 보는 동안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 숙소에서도 셋은 맥주 한 캔 씩을 앞에 두고 하루를 돌아봤다.


 내일은 이제 비엔나로 가는 날이네. 셋이서 차 두대를 어떻게 운전할지 정해보자.

언니가 어느새 종이와 볼펜을 맥주캔 앞에 내려뒀다. 두 차를 셋이서 운전하려면 언니차 한 대, 형님차 한 대로 가고 내가 각 차에 깍두기처럼 등장해서 한 시간가량 차를 몰아야 했다. 내가 연속해서 두 시간 이상 운전하지 않도록 언니는 나의 자리를 요리조리 바꾸고 있었다. 흰 종이 위에 인스브르크점 과 비엔나점 사이를 잊는 직선을 주욱 긋고선 셋의 이름이 배치되었다. 6시간 거리를 언니가 4시간 형님이 4시간 반 내가 2시간 1시간 반을 운전하는 그림이다. 나는 40이 되도록 뭘 했을까. 왜 운전할 일이 없었나. 아마 얼굴에서 초조한 기색이 드러났을 테지만 좋아요! 해볼게요. 보탬이 되어보겠습니다!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긴장되고 초조하다.


 비엔나 4시 도착을 목표로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항공사가 파업하면서 바뀐 비행기표 때문에 뒤로 미뤄야 했던 음악회가 저녁 6시다. 4시 전후로 비엔나에 도착해야만 했다.


 어제부터 자동차 크루즈 모드가 장거리 운전에 얼마나 유용한지 설파하던 이 둘은 엑셀과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운전하는 건 상상도 못 해본 나에게 이 크루즈 모드를 알려주실 참이다.


 언니차에 먼저 탔다. 긴장은 되었지만 언니랑 떠들다 보니 긴장도 풀어지고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할 때쯤 우리는 운전자를 바꿨다. 렌트한 차는 새 차여서 감이 좋았다. 그리고 길도 반질거리는 아우토반답게 운전하기에 좋은 길이었다.


 자 그럼 크루즈 모드를 한 번 해볼까? 긴 운전에 발을 편하게 하는 게 얼마나 피로도를 줄이는지 몰라.

배워두면 나중에 여행할 때 좋을 거야. 그리고 남편한테 oo씨 이제 크루즈 모드도 할 줄 아는 여자라고 이야기해.


 언니는 차분하게 크루즈 모드 사용법을 알려준다. 조작법이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발을 떼고 있다는 것이 매우 어색할 따름이다. 발을 편하게 두는 게 아니라 뒤꿈치는 바닥에 닿고 앞꿈치는 공중에 떠있다. 언제 어느 페달을 눌러야 할지 대기상태다. 어색해하는 나를 보더니 언니는 불편하면 크루즈모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2시간 가까이 달려 오스트리아 어느 휴게소에 들어갔다. 제일 만만한 슈니젤을 시켜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번엔 형님차에 탔다. 일단 조수석에 타서 또 좀 떠들었다. 한 시간가량 지나서 운전자를 바꿨다.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운전석에 앉자마자 형님이 이야기한다.


크루즈 모드로 운전해봤어?

네 언니가 알려줘서 해봤어요.

또 한 번 해볼 테야?

네. 편한 점이 있더라고요. (사실은 페달을 밟지 못한 발이 공중에 떠 있었어요..!)  

그려 배워두면 장거리 운전 때 좋아. 확실히 피로도가 덜해.


 언니와 복붙 하듯 똑같은 말을 하시며 다시 한번 크루즈 모드 강의에 들어갔다. 아직 비엔나는 몇 시간 가야 하지만 고속도로에 확실히 차가 많아졌다. 시골 고속도로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서일까. 큰 화물차가 앞뒤로 있거나 추월차선 없는 일 차선에선 앞 뒤 차량 속도까지 신경 써야 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그렇다고 손바닥을 닦기 위해 한 손을 떼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겨우 타이밍을 맞춰 바지 허벅지에 땀을 닦았다.


 달달거리는 나를 아셨을까? 잠깐 졸다 일어난 형님이 조금만 더 가서 바꾸자고 하신다. 주어진 분량을 해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숙제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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