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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bu Oct 18. 2024

벨베데레에서 클림트 만나기

에곤 쉴레도 함께,

 오늘은 시내 워킹 투어에 합류했다. 투어 이름이 심지어 로맨틱 비엔나. 빈에 온 누구든 로맨틱을 떠올리는구나. 비엔나 시내에서 둘러봐야 하는 장소는 비슷한가 보다. 어제 지나갔던 그라벤 거리, 미하엘 광장, 호프부르크 왕궁을 입담 좋은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이들과 걸었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앞에서는 비포 선라이즈 이야기를, 왕궁 앞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야기를, 왕궁 정원에 세워진 모차르트 동상 앞에서는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벨베데레 궁전에 드디어 도착했다. 실제로 보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클림트의 그림들을 드디어 만난다. 도판에서 보던 작은 그림들이 커다랗게 내 앞에 걸렸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몇 점을 지났다. 도자기 같이 하얀 피부에 까만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옆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이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책에서 보던 클림트의 유디트는 좀 더 큰 그림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금박 장식과 유디트의 표정, 자세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도발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여자가 있나.

 

 그리고 드디어 클림트의 키스다.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서 너도 나도 핸드폰을 한껏 들어 올려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고 있다. 키스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그림이 컸다. 금빛의 네모 세모 원이 두 남녀를 둘러싸고 두 사람의 발아래 꽃밭까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배경이 예상했던 것보단 훨씬 어두웠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두 남녀가 강조되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투어팀과 헤어지면 안 되니 수신기 소리가 끊어지기 전에 따라갔다. 이 방은 클림트의 풍경화를 주로 전시해 두었다. 클림트라 하면 보통 여성성이 극대화된 여자를 그리는 그림이 유명한데 이곳 벨베데레는 다양한 클림트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풍경화에서도 클림트 특유의 화려함과 평면적인 느낌이 더해져 거실에 항상 걸어두고 보면 얼마나 좋을까 프린트라도 사야 하나 싶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에곤 쉴레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둘은 오스트리아 화가에 사랑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실상 표현된 그림은 굉장히 다르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서 사랑의 환희를 느낀다면 에곤 쉴레의 사랑은 괴롭다. 그가 그린 사랑도 아프고 그가 그린 가족도 아프다. 에곤 쉴레 그림이 있는 위층에서 투어가 끝났다. 이제부턴 자유 시간이다. 미술관을 더 봐도 되고 다 본 사람은 나가도 된다. 아이들은 이미 집중력이 떨어졌다. 아래층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중 내가 말을 꺼냈다.


"언니, 저... 한 번만 더 둘러보고 나가도 돼요?"

"어, 그럼 실컷 더 보고 와. 우리 애들이랑 궁전 정원에 가있을게."


 아래층에서 다시 시작했다. 클림트부터 에곤쉴레까지 찬찬히 한번 더 그림들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시간을 보니 금세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얼른 정원으로 나가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전화를 했다. 분수 옆 정원 벤치에 앉아 계시단다. 멀리서 보니 누군가가 언니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우리 첫째였다. 허거덕,


"oo야 일어나. 어머, 언니 무릎에 피 안 통하겠어요."

"아냐 괜찮아. oo가 피곤했나 봐. 내가 여기 누워서 자라고 했어."


 잠이 덜 깬 첫째를 흔들어 깨웠다. 죄송하고 감사했다. 아이들과 미술관 갈 때면 더 보고 싶더라도 아이들 속도에 맞춰야 한다. 그림들을 조금 더 보지 못해 항상 아쉬웠던 나는 벨베데레에서 그 갈증이 좀 사라졌다.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인가. 어른들이랑 같이 오니 좋구나.


클림트_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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