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여행 전 주말 저녁, 아이들과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빼놓고 어찌 잘츠부르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족히 본지 이십 년은 지난 거 같은데 그때도 클래식 영화였는데 이젠 동화 속 이야기처럼 오래된 영화가 되었다. 도레미송을 필두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들로 아이들은 즐겁게 영화를 감상했다.
조기 교육의 효과인지 여행하는 내내 차 안에서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도레미송부터 좋아하는 몇몇 노래를 끊임없이 부른다. 여러 명이 함께 갔으니 나중엔 서로 화성까지 넣어가며 불렀는데 그 실력이 놀라웠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화음을 넣는 모습에 웃을 수도 없어 그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봐야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신청해 둔 가이드님과 아침 일찍 미라벨 궁전에서 만났다. 강력 추천으로 잘츠부르크 카드를 구매했다. 잘츠부르크는 이 카드 한 장이면 아래 주요 관광지와 교통이 커버된다. 8명이 미라벨 궁전으로 향하니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느낌이 난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멤버가 가능하다. 궁전 정원 곳곳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장소였다. 형님이 장소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장면을 떠올려 아이들을 이끌었다. 알고 보니 콘셉트사진을 좀 찍을 줄 아시는 분이었네. 아이들이 넷이나 되니 어른 둘만 더 들어가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장면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궁전 입구 계단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 장면을 재현해 봤다. 그런데 잘 안된다. 다들 자기 맘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까르르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잘츠부르크 시티 카드에도 케이블카가 포함되어 있었다. 헬브룬 궁전이나 동물원을 가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우리는 케이블카를 한번 더 타기로 했다. 운터스베르크 케이블카는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어제 바람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채 가시기 전에 탄 케이블카는 생각보다 잔잔했다. 정상에 오르니 이곳 역시 눈이 쌓여있었지만 바람이 불진 않았다. 저 멀리까지 오스트리아의 모습이 펼쳐졌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비록 거센 바람이 정신을 쏙 빼놓았지만 올라가는 길에 호수도 보이고 호수옆의 마을도 이뻤던 어제 케이블카가 더 아기자기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아침에 미라벨 궁전에서 저 멀리 언덕 꼭대기를 차지하고 서 있던 호엔잘츠부르크성으로 갔다.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면 요새에 금세 도착한다. 요새에는 처음엔 작은 성에 불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크게 확장되어 요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와 그 시절 요새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둘러보다가 아이들이 재미난 스토리를 하나 발견했다. '블랙카우'였나. 전쟁 중에 잘츠부르크 사람들이 요새로 피했다고 한다. 침략한 적은 요새의 식량이 다 떨어지면 결국엔 항복하겠지라며 고사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요새에 남은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소의 색깔을 바꿔서 칠해가며 적이 볼 수 있게 세워뒀다고 한다. 색깔이 달라지는 소를 보고 적들은 저들에게 아직 식량이 충분하구나 생각했고 결국 요새가 쉽게 항복하지 않겠구나 생각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영리한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거냐며 즐거워했다. 요새에서 내려다본 잘츠부르크 시내는 고풍스러운 마을과 그 마을을 둘러싼 잘자흐강이 아름다웠다.
이제 멀리 보이던 잘자흐강을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자. 시티 크루즈는 사랑의 증표로 자물쇠를 잔뜩 매달아 둔 마카르드 다리 근처 매표소에서 시간 예약을 미리 해두어야 한다. 낮에 타려고 봤더니 이미 저녁 6시부터 예약만 가능한 상태여서 우리는 요새를 먼저 다녀왔다. 잘츠부르크 가운데를 관통하는 아담한 강을 크루즈로 한 바퀴 돌았다. 종일 바삐 움직인 다리를 잠깐 쉬어가는 느낌이다. 어른들은 이제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둘둘 서로 장난치기에 여념이 없다.
오스트리아에선 슈니첼이지. 중정이 아주 커다란 식당에서 아이들 테이블 어른들 테이블 나눠 저녁을 먹었다. 다시 힘을 내서 마지막 일정인 묀히스베르크 전망대로 갔다. 잘츠부르크 시내는 자그마해서 소화도 시킬 겸 식당에서 전망대까지 걸어갔다. 찾기가 조금 애매해서 현대미술관을 찍고 찾아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가장 빨리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일정에 넣지 않았던 곳인데 가이드님의 강력 추천을 믿고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밖으로 나가자 우리 8명은 동시에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전혀 검색 없이 가서 더 감탄했으리라. 요새에서도 내려다본 잘츠부르크 풍경이었건만 야경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까만 하늘 아래 저 멀리 오른쪽 언덕 위에 우뚝 솥은 호엔잘츠부르크성을 두고 꼬불꼬불 구시가지 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시가지를 감싸고 잘자흐강이 흐른다. 구시가지 건물의 지붕은 까맣고 게트라이데 길은 노란 불빛으로 대조되어 동화 속 어느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 같다. 하루의 피로가 이 멋진 풍경 하나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서로 자기가 본 가장 멋진 야경 중에 하나라며 흥분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 많이 다닌 언니네가 체코보다 아담하지만 잘츠부르크 야경도 인정할 만 하다했다. 아무리 사진으로 담아보려 해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의 감동이 전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사진 찍길 멈추고 눈에 담자며 모두 아름다운 잘츠부르크를 내려다봤다. 알고 보면 우리 8명이 한 번에 내뱉은 그 감탄사가 야경을 더 멋지게 만들어 준 걸지도 모른다. 다 같이 느끼는 이 감탄이 감동을 배가 되게 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