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문자가 왔는데 오스트리아 출발표가 취소됐어
잠시 후 지잉 지잉 지잉 여행단톡방이 소란스럽다.
항공사 파업으로 이틀간 항공편 400건이 취소되는데 우리 출발표가 딱 걸렸다.
항공사로 연락하면 챗봇이 같은 답변만 반복하고 예약사이트는 항공사의 지시를 따르라고 한다.
몇 시간 후 항공사에서 대체표를 보내왔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 다음날 출발표와 출발일은 같은데 터키를 경유하는 표다. 가까운 오스트리아를 이렇게 가야 하나. 다른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출발일 변경 없이 가려면 표값이 1.5배다. 선뜻 표를 사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네 명이서 대체표를 타면 스케줄을 어떻게 변경해야 할지 의논하던 중에 표가 사라졌다.
한번 더 패닉.
두 분이 먼저 짧은 일정을 여행하고 오는 남편을 위해 비싸지만 원래 출발 일정에 맞는 표를 사자고 하신다.
언니가 이야기한다
결제를 누릅니다.
형님이 이야기한다
고고! 하시죠.
나중에 들어보니 두 분은 표가 취소되자 이번 여행은 글렀다고 생각하셨단다.
형님이 갑작스러운 일로 한국에 급하게 다녀와서 출발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는데
항공사 파업으로 출발표까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표는 저리 선뜻 의연하게 결제하셨다.
첫째 날 비엔나에서 음악회 일정을 뒤로 미뤘다. 반나절 정도를 날리게 되었지만 호텔, 렌트, 투어는 변경이 없다. 폭풍 같은 이틀이 지나갔다. 표가 취소되고 대체표도 없어지고 다시 보내준 대체표는 출발 일정이 더 늦다. 표는 이미 샀으니 보상금 신청이나 비행기표 환불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챗봇이나 메일 아니면 전화통화로 저녁이면 진이 빠졌다.
유럽의 항공사는 파업도 자주 하고 지연도 잘돼서 누구나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모두 빨리 왔는지 라스트콜을 당기고 사람들을 태운 다음 보딩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냥 날아다니는 버스다.
여행 시작 전부터 멘탈이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하고 드디어 출발날이다.
우리는 공항에서 만나 무사히 출발함을 서로 안도했다.
실은 8명이어서 출발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서로를 배려하다 보니 계획된 여행은 일단 추진하는 걸로.
8명이서 탑승수속을 했다. 짐이며 인원이며 누군가 선두에 서서 깃발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경유하는 우리 표는 환승시간 30분이다. 짧은 환승 시간에 놀랐지만 그때는 이 표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30안에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기로 했다. 형님이 찾아보더니 리가 공항은 활주로가 하나뿐이라며 갈아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겠어 하신다. 그래도 처음 가는 공항의 상황은 알 수 없으니 요이땅 뛸 준비를 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런데 웬걸, 비행기 연결 계단에서 내려와 게이트로 들어섰다. 환승 게이트 넘버를 확인하고 보니 환승 게이트가 바로 옆에 있다. 비행기에서 내린 모두가 다시 오스트리아행 게이트 앞에 줄을 섰다. 정말 시외버스 터미널 같네.
자, 이젠 정말 비엔나에 도착할 수 있다. 거의 다 왔어. 한시름 놓고 있을 때 옆에서 남편이 조용히 속삭인다.
"비엔나에서 저녁 먹고 잠깐 놀이공원에 가는 게 어때? 비포 선라이즈 촬영지래. 잘츠부르크 가는 길이야."
"응? 갑자기 놀이공원을 가자고?"
"애들이 좋아할 거 같아."
"그런데 우리 차 렌트해서 바로 잘츠부르크 근처까지 가야 해. 세 시간 반은 걸려.
공항에서 저녁 먹고 출발해도 도착하면 12시 다될 텐데? 형님 한국 갔다 오셔서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라 늦게까지 운전하기 힘들실 텐데?"
"나 오스트리아 야경이 보고 싶다고."
아,,, 그의 위시리스트인가 보다.
일정이 짧으니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앞쪽에 넣어주겠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말 괜찮다고 하더니,,,
비행기 일정 때문에 첫날에 하려던 음악회 일정이 뒤로 밀려서 어쪄냐고 그래도 자긴 정말 괜찮다더니,,,
지금 비엔나의 놀이공원에서 대관람차를 타고 야경을 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가 비엔나를 전혀 못 보게 된 건 사실이라 깊게 숨 한번 들이쉬고 대답했다.
"정 그러면 언니한테 놀이공원 들렀다 가자고 이야기해 봐."
남편이 최대한 낮은 자세로 뒤에 앉은 누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급하게 놀이공원 근처로 저녁 먹을 곳을 찾아본다.
프라터 놀이공원 저녁 9시 도착. 놀이공원의 밤은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대관람차를 탔다. 총천연색 알록달록 놀이공원의 야경이 보인다.
이 관람차가 풋풋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탄 관람차란거지.
우리는 애들 넷을 데리고 바글바글 왁작지껄하며 타고 있는 거지.
형님을 쳐다봤다. 형님은 피곤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대관람차에서 내리면 하늘 그네는 한 번만 타고 출발이다라고 이야기 중이다.
꺄악 꺄악 하늘그네에 탄 우리 딸이 꺄악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 넷이 우르르 뛰어오면 하늘그네를 한 번만 더 타겠단다. 줄도 없는데 한 번으로 끝날 리가 없지.
다시 한번 아이들이 꺄악 거리고 까르르거리면 뛰어온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타고 싶단다.
안돼 이젠 정말 출발해야 해. 아이들을 양 떼 몰듯 몰아서 놀이공원을 빠져나왔다.
비엔나로 돌아오면 꼭 여길 다시 오자고 아이들끼리 다짐하고 있다.
몇 번의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아이들은 여행 일정 중에 놀이공원을 제일 좋아한다.
이제 우린 고속도로를 타고 잘츠부르크 인근까지 가야 한다. 도착 예정 시간은 1시다.
비엔나를 빠져나와 본격적인 고속도로가 시작되자 네비에 A1 아우토반이라고 찍혔다.
차량 헤드라이터 빛에 비친 고속도로가 반짝거린다. 요철도 없고 매끈하다. 이 길이 직선으로 200킬로 정도 이어진다. 장거리 운전이 두려워 오스트리아 여행이 부담이었던 나도 이 직선 구간은 용기를 내어볼 수 있을 정도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이구나. 인스브루크에서 비엔나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리는 반질거리는 찐 회색 아우토반을 쉼 없이 달려
잘츠부르크 인근 아담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